ⓒ연합뉴스5월28일 인천 계양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아온 시민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구선영씨(45·가명)는 만성기침 증상 때문에 직장 근처 내과 의원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진료실 풍경은 낯설었다. 의사의 책상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환자가 앉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담당 의사는 멀찌감치에서 큰 소리로 구씨에게 증상을 물었다. 구씨가 담당 의사를 가까이에서 본 건 등에 청진기를 대기 위해 다가온 몇 초 동안이 전부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이해했지만, 구씨가 느끼기에 진료 과정은 무척 사무적이었고 충분히 진단을 받았다는 만족감도 들지 않았다. 이런 형식이라면 굳이 대면 진료의 의미도 떨어진다고 느꼈다.

구씨만 겪은 유별난 현상은 아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 이후 일상적인 의료 현장에서 사람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의료 행위를 경험하고 있다. 구씨가 찾은 병원처럼 감염에 취약한 일선 동네 병의원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지난 2월부터는 한시적으로 전화상담을 통한 진단과 처방도 허용되었다.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자에 대한 제한적 허용이었지만 의료계 전반에선 처음 겪는 지각변동에 가까웠다. 대면 진료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자 20년 가까이 의료계 안팎에서 논란이 되어온 ‘원격의료’에 관한 논쟁도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원격의료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인끼리 원격으로 의료 행위(협진 등)를 하는 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환자와 의사 간 원격의료 행위는 불가능하다. 제18대 국회부터 의사와 환자 간에도 원격의료를 허용하자는 법안이 매번 제출되었으나 그때마다 논쟁만 가열될 뿐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특히 영리병원(의료영리화), 의료민영화 문제와 결부되어 공공의료 체계를 위협하는 시도로 지목받았다. 그러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물리적인 차단이 필요한 코로나19 대규모 확산 사태가 일어났고, 원격의료 도입에 적극적인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연합뉴스무상의료운동본부 회원들이 5월27일 원격의료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찬성 측, 의료 시스템 마비 대비해야

반대 논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원격의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많은 의료인들은 회의를 표한다. 의료 행위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이나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야 하는데, 원격의료에서는 이를 충분히 대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가령 감기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경우, 항생제 처방 등을 결정하기 위해 편도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증상이 심할 경우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서 폐렴 여부를 판단하고, 배가 아프다고 찾아온 환자가 혹시라도 맹장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살피려면 환자의 배를 직접 눌러봐야 한다. 이처럼 아무리 다양한 기기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들, 현 기술 수준으로 문진·진단·치료라는 기본적인 대면 의료 행위를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준전시 수준으로 예외를 만들었을 뿐 의료 행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획재정부나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부처 일각에서는 ‘비대면 진료 인프라 구축’이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을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의료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3월, 문경 생활치료시설에 격리된 환자를 살피기 위해 서울에서 화상 문진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도 있다. 일부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도 감염이 의심되는 검진자들에 대한 화상 원격진료가 시도되기도 했다. 여러 ‘실험’에서 가능성을 보았다는 설명이다.

과거 논쟁과 달리 최근에는 찬반 양측이 서로 다른 개념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진료’라는 개념을 동원한다. 코로나19 전염 우려를 막기 위해 대면 접촉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야당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 역시 원격의료 대신 ‘비대면 진료’라는 용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원격의료 도입에 반발하는 측에서는 ‘비대면 진료’라는 말이 용어만 바꾸었을 뿐 원격의료와 본질적으로 같은 의도를 지녔다고 주장한다. 정부 정책의 초점이 원격의료 유관 산업을 키우는 데 쏠려 있고, 결국 의료영리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비대면이든 원격이든 결국 소규모 병의원과 환자에게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현 정부에서 강조하는 ‘명분’이 주로 경제 활성화와 산업 육성 측면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으로 인해 생긴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언택트(비대면) 산업 육성이 대두되었고, 여기에 원격의료 인프라 산업과 의료 빅데이터 산업 등이 함께 언급된다.

청와대와 정부의 메시지도 굳이 산업적 효과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천명하며 “의료, 교육, 유통 등 비대면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도 5월13일 제21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원격의료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라는 말을 남겨 사실상 공론화 순서를 밟았다. 특히 이날 강연에서 김 수석은 지난 2월부터 시행한 한시적 전화상담 건수가 대폭 늘었고 그 성과가 긍정적이었다고 자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의료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이런 접근이 환자로부터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5월27일 민주노총 등 40여 개 단체가 함께하는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비대면 의료’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원격의료를 추진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같은 위기 국면에서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허용되어야 할 뿐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김 사회수석이 강조한 ‘한시적 전화상담 허용’이 실제로 효과적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당장 현장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백재중 녹색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은 “원래 병원을 다니고 그 환자의 증세를 의사가 알고 있는 만성질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새로운 환자를 의사가 대면 없이 진찰하고 치료하기란 어렵다. 원격의료가 사망률이나 유병률을 낮추거나 치료 효과를 높인다는 신뢰할 만한 연구보고도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최근 움직임과 연이은 발표는 원격의료 유관 업계를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그토록 원격의료 유관 산업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의료 접근성이 높은 한국과 달리 전 세계적으로 최근 원격의료가 주목받는 건 사실이다. 물리적으로 넓은 땅에 인구가 듬성듬성 떨어져 살고 있어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게 쉽지 않은 나라도 많다. 대면 의료비가 너무 비싸서 원격의료로 ‘수가를 낮출 필요’가 있는 나라도 있다.

이 와중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산업 측면에서 각종 유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이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는다. 미국과 같이 의료 인프라가 모자란 경우는 텔레닥스 같은 의료 플랫폼 서비스 산업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유관 업계 처지에서는 한국 기업이 원격의료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하기 위해 결국 내수 생태계가 필요하고, 이는 곧 신성장 동력을 찾는 정부의 최근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시급한 건 원격의료가 아니다”

현 정부가 원격의료를 신성장 산업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2년 차인 2018년 8월, “지나치게 의료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도 가능하다”라고 언급하며 원격의료 확대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시사IN〉 제573호 ‘다시 불붙은 원격의료 논란’ 참조). 후보 시절 의료영리화·의료민영화 논리에 반대했던 시각과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제기되었다.

원격의료 정책에 대한 고민과 논박이 의료설비 분야에만 치중될 경우, 현 의료 시스템의 기형적인 모순을 더 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도 지방에서 ‘당일치기 외래’를 위해 서울 주요 대형병원을 찾는 상황에서 원격의료까지 고삐를 풀 경우 대형병원만 혜택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원격의료 유관 산업은 결국 IT 산업이 중심에 설 터인데, 고령층이나 장애인의 디지털 정보 접근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원격의료 장비를 직접 다루기 어려운 계층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는 것보다는 방문 진료를 확대하는 등 아날로그식 접근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원격의료 설비 산업은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 지역 돌봄 시스템, 주치의 제도 등 공공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상태라면 원격의료 인프라는 얼마든지 보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령 지역사회에서 환자와 의사가 장기적으로 관계를 맺는 환경에서는 전화든, 메일이든, 웨어러블 장치(심박계 등)든 충분히 원격으로 의료 행위를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오히려 공공의료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원격의료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4개 단체) 정책위원장은 5월25일 KBS 라디오에서 “주치의 제도가 도입된다면 논쟁이 이렇게 격화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시스템과 프로세스 보완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망이라는 설명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 역시 5월27일 “지금 시급한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다.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상과 중환자 병상을 확충하고, 숙련된 간호 인력을 확보하며, 국가장학생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육성해 공공의료기관에 의무복무토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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