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 수도, 국적도, 하다못해 활동 연차도 다른 아이돌 그룹들이 공유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멤버들에게 부여된 확실한 포지션이다. 아이돌이 한국 가요계의 상수로 자리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20년. 지금이 3세대니 4세대니 하는 와중에도 이것 하나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믿고 고음을 맡기는 튼튼한 성대를 가진 메인 보컬, 곡의 포인트 안무를 설명할 때 말없이 나가 묵묵히 춤을 추는 메인 댄서 등을 기본으로 한 포지션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제는 연기나 예능, 진행 담당 같은 부업에 가까운 역할이나 리더나 막내 등 그룹 내 서열까지 모두가 포지션이다.
7인조 그룹 오마이걸의 유아에게 주어진 첫 포지션은 보컬이었다. 데뷔 초 녹음기처럼 반복해야 하는 자기소개에서 그는 자신을 “보컬을 맡고 있는 큐피드 요정”이라고 설명했다. 소속사에서 부여한 역할값이겠지만 실제로 유아는 노래를 꽤 잘하는 보컬리스트다. 같은 그룹 멤버인 승희나 효정이 메인 보컬로 노래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면, 유아의 목소리는 새털처럼 날아오르는 오마이걸의 노래에 몽환적인 목소리로 복잡한 레이어를 더한다. 촉촉한 음색에 중저음 모두에 능한 넓은 음역이 만드는 매력적인 입체감이다.
그 입체감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그의 퍼포먼스다. 실제로 무용을 전공하기도 한 유아는 노래만큼 춤에도 능숙하다. 특히 나비가 날아오르거나 꽃이 피어나는 듯한 특유의 유려한 동선과 그에 따른 우아한 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오마이걸의 안무에서, 유아가 돋보이는 순간은 그대로 오마이걸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현재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 소속 안무가로 활약하고 있는 친오빠와 함께 브레이크 댄스에서 스트리트 댄스까지 다양한 춤을 접하며 가수가 아닌 안무가를 꿈꿨던 그의 어린 시절은 이 결정적 순간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숨겨져 있던 유아의 역량이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엠넷(Mnet) 〈힛 더 스테이지〉(2016)와 〈퀸덤〉(2019)의 영향이 컸다. 〈힛 더 스테이지〉에서 선보인 듀엣 무대를 통해 경연의 주인공이었던 블락비의 유권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3년 후 선보인 〈퀸덤〉의 퍼포먼스 유닛 무대를 통해 지난 기억이 단순한 느낌적인 느낌이 아닌 탄탄한 실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했다. 어린 시절부터 롤 모델로 꿈꿔온 마이클 잭슨의 ‘스무스 크리미널(Smooth Criminal)’을 경연곡으로 택한 그는 결국 최종 순위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춤과 노래를 사랑해온 오랜 노력의 시간에 수도꼭지가 열린 셈이었다.
서서히 성장한 그룹만큼 서서히 증명해온 유아의 포지션은 오마이걸 그 자체가 되었다.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한없이 추상적이고 그래서 영원히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그룹의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좋은 시청각 자료는 바로 유아의 클로즈업이다. 오마이걸의 유아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우리는 오마이걸이라는 그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오마이걸의 7분의 1이자 오마이걸 그 자체가 된 사람. 유아는 오늘도 오마이걸을 연기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완벽에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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