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에이핑크 보미를 일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린 건 프로야구 시구였다. 그의 시구는 속칭 ‘개념 시구’로 불리며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속내가 뻔한 이유로 여성 아이돌을 마운드 위에 자주 올리던 프로야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운드 앞의 잔디나 최소한 선수가 밟는 투수판 훨씬 앞에서 하는 연예인 시구의 관행을 깨고, 보미는 투수판을 지그시 밟은 뒤 포수 글러브 정중앙으로 묵직한 볼을 던졌다. 특히 화제를 모았던 2015년 시구 영상은 단시간에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며 이후 보미에게 투수 매디슨 범가너의 이름을 딴 ‘뽐가너’라는 별명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보미의 활약은 그룹 밖에서, 의외의 타이밍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팀 내 주목받는 포지션이거나 뛰어난 입담을 가진 멤버는 아니지만, 보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커다란 배포가 있었다. 흥이 나면 나는 대로 온 얼굴을 우그러뜨리며 목젖이 보일 정도로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그 에너지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보미가 전하는 유쾌함은 단지 웃는 모습에만 그치지 않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외모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쯤 일도 아니라는 듯한 배짱은 그를 〈주간 아이돌〉 고정 MC에서 〈우리 동네 예체능〉 〈런닝맨〉 〈배틀트립〉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이끌었다.

시원시원한 성품은 운동과 ‘먹방’으로 이어졌다.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이름을 날렸고, 씨름·양궁·탁구·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 종목들이 보미의 실력과 예능감을 원했다. 커다란 웃음만큼이나 호쾌하게 잘 먹는 모습은 음식 전문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이고 2018년 오픈한 보미의 개인 유튜브 채널 ‘뽐뽐뽐’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기도 했다. 타이완 야시장 먹방에서 라면·떡볶이·피자·청국장 등 국경을 넘나드는 각종 메뉴로 이어진 먹음직스러운 영상에 자연스러운 일상이 더해진 그의 유튜브 채널은 4월 현재 77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인기 그룹 엑소의 백현과 첸, 아이돌 유튜브계의 선구자 에프엑스의 앰버, 소녀시대 태연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 채널이다.

이렇듯 다채로운 활약에 정점을 찍는 건 보미의 무대다. 에이핑크의 메인 댄서로 무대 위에서 유독 커 보이는 그의 존재감은 팀이 180° 이미지를 바꾼 ‘1도 없어’(2018)를 기점으로 더욱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응원단 단장 경력과 뛰어난 춤 실력으로 연습생이 될 수 있었던 그는 타고난 힘과 유연성, 무르익은 무대 연기를 바탕으로 자칫 흔하디흔한 섹시함으로 빠질 수 있었던 에이핑크의 변신에 활동 10년 차를 채운 장수 여성 걸그룹의 무게감을 더했다. ‘덤더럼(Dumhdurum)’에서 “잘된 거야 쩜쩜쩜(…)”이라는, 괴팍한 케이팝 역사 안에서도 전대미문의 가사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이토록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건 아마 근성과 시간을 바탕으로 가능했을 터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보다는 그동안 이룬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다(〈그라치아〉 인터뷰, 2019)’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10년 차 아이돌. 음악 안팎으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 타고난 재능이 앞으로 10년도 빛날 수 있기를 빈다.

※이번 호로 ‘주간 아이돌 & 캐리돌’ 연재를 마칩니다. 조만간 새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다시 찾을 예정입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