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여왕 CL의 도전
  •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 호수 648
  • 승인 2020.02.2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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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양한모

씨엘(CL)은 군림하는 아이돌이다.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사실 비문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케이팝 사전 제1장 1절에 따르면 ‘아이돌은 팬들의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재미없는 농담이지만 이 농담은 반쪽짜리 진실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아이돌을 만드는 건 기획사이지만 아이돌을 성장시키는 건 팬들의 아가페적 사랑과 희생에 가까운 헌신이다. ‘팬 없는 아이돌’은 실질적으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명제다. 팬에 죽고 팬에 사는 특수한 생태계 안에서 태어난 CL의 생존방식은 여느 아이돌과는 달랐다. 그는 팬들의 사랑을 넘어 대중 앞에 군림하는 아이돌이었다.

구구절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2009년 5월, 열여덟 나이에 발표한 그룹 투애니원(2NE1)의 정식 데뷔 싱글 ‘Fire’의 음악방송 무대는 왜 그가 대중 앞에 군림하는 아이돌일 수밖에 없는지를 말해주는 더없이 훌륭한 시청각 자료다. 2NE1은 당시만 해도 ‘걸 그룹’ 하면 떠올리던 청순이나 섹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뛰고 싶은 대로 뛰고, 미치고 싶은 대로 미치며 지금을 즐기는 폭발하는 젊음의 에너지였다. 걸 그룹 최초로 음원차트 전곡 줄 세우기, 걸 그룹 최초의 트리플 타이틀 등 걸 그룹의 이름 아래 전무후무한 기록들을 세워나간 이들의 활약에 화답한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2NE1은 ‘내가 제일 잘나가’를 발표한 2011년 케이팝 그룹 최초로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MTV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펼쳤고, 2014년에는 걸 그룹 최초로 13개 도시, 17회 공연을 아우르는 두 번째 월드투어 ‘All or Nothing’을 개최했다.

그 역사의 한가운데 CL이 있었다. 1991년생으로 막내 공민지를 제외하면 그룹의 ‘동생 라인’에 속한 그는 팀의 메인 래퍼이자 리더였다. 흔히 연장자가 리더를 맡게 되는 케이팝의 공식에 어긋나는 설정이었지만 그의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납득되었다.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2NE1의 독보적인 무대들 속에서, CL은 식상하지만 정말 ‘타고났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무대를 부수거나 뒤집어놓았다.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독특한 발성에서 랩과 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뛰어난 곡 소화력, 무대와 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넘치는 끼까지. CL이 가진 모든 것은 지금까지도 비교할 대상을 찾기 힘든 놀라운 재능이었다. 주차장에서 소속사 대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몇 번이나 거절당했던 데모 CD를 직접 건넨 중학생의 패기는 이렇듯 실력을 바탕으로 한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안타깝게도 시련은 화려한 시절만큼이나 길고 고되었다. 2014년 멤버 박봄의 마약류 밀수 사건을 기점으로 국내 활동을 중단한 2NE1은 실질적인 해체 순서에 들어갔다. 2016년 공식 그룹 해산 후 CL은 산다라박과 함께 YG엔터테인먼트에 남았지만 솔로 활동도 해외 진출도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싱글 ‘나쁜 기집애’와 ‘헬로 비치스(Hello Bitches)’ ‘리프티드(Lifted)’ 발매, 블랙 아이드 피스 앨범 수록곡 ‘도프니스(DOPENESS)’ 참여 등으로 근근이 소식을 전하던 그가 2019년 말 YG와의 계약 해지와 거의 동시에 가지고 돌아온 테마는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CL의 첫 앨범 〈사랑의 이름으로〉는 그 안에 담긴 음악과 관련 영상까지 ‘누군가가 선택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CL로 돌아가 하나씩 스스로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누구도 이견 없는 케이팝 여왕이 비로소 자신의 의지만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무엇이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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