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보면 한숨 나오는 당신 잘 키우고 계신 거다
  •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 호수 649
  • 승인 2020.02.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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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분리수거를 하는데 한 아이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안 타. 엄마가 태워다준대.” “코로나 위험하다고.” “그래도 빠지지 말래.” “몰라. 문 닫았으면 좋겠어.”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된 어느 부모가 학원 버스는 태우지 않고 그래도 학원에는 가게 하는 모양이다. 친구와 나누는 대화 같은데 짜증이 잔뜩 묻어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방학 준비로 혹은 신학기 준비로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학원 스케줄이다. 학원이 주는 효능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불안을 잠재운다. 학습이 부진하면 나아지리라, 그럭저럭 괜찮으면 그대로 죽 괜찮으리라 여긴다. 학원에서 레벨이 높은 반이면 대학도 레벨 높은 곳으로 가리라 믿는다. 딱히 근거는 없다. 돈값은 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이다.

두 번째는 편리함이다. “게임만 하고 뒹굴대는 꼴 보지 않아 속 편하다”는 것이다. 늘어지기 쉬운 방학 때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는 것도 좋다, 레벨 올리는 성취가 쌓여 성공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 있다 등 여러 의미가 부여되지만, 대체로는 아이나 양육자나 서로 편하려고 보낸다. 숙제까지 잔뜩 내주니 공부하네 마네 씨름할 일도 없다.

입시 불안증은 일종의 바이러스성 질병 같다.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 감염된다. 실제 입시를 치르거나 앞두게 되면 그 많은 학원이 별무소용이라는 것을 대부분 처절하게 깨닫는다. 나는 학원에 보내는 게 편리하다 못해 당연해진 모습을 더 주목한다. 사실상 학원으로 ‘양육의 외주화’가 이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년 전만 해도 아이들을 빽빽하게 학원 보내는 것에 나름 변명이나 이유라도 대는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굳이 설명도 하지 않는 필수 일과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골라 보내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긴 시간 아이들을 붙잡아두는 학원을 선호한다. 적당히 끼니도 해결되면 좋다. 시간 때문에, 이동 편의상, 친구랑 같이, 근처 편의점이나 분식집 등에서 때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방학인 아이들이 놀이공원 한번 가기 힘든 건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다. 학원마다 ‘두 달 완성’ ‘2월 완성’ 특강들이 식사나 간식을 제공하며 주말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다.

학원 스케줄을 관리하고 ‘라이딩(태워주고 데려오기)’하려면 양육자는 어지간한 회사의 영업 책임자를 능가하는 판단과 동선을 소화해야 한다. 그 덕분에 주요 학원가에는 반드시 호황인 반찬 가게들이 있다. 바쁜 양육자들이 주 고객이다. 한번 ‘학원 뺑뺑이’에 올라탄 양육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내려오기 힘들다. 학원 안 보내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중학생만 되어도 ‘번아웃’ 상태에 빠지는 아이들

초등학생 때부터 ‘달리다가’ 중학교 2~3학년만 되어도 번아웃 상태에 놓인 이웃 아이들을 여럿 본다. 종일 학원에 있다 돌아와 지친 몸으로 드러누워 스마트폰만 본다. 뭘 먹을 때에도 손에서 폰을 놓지 않고 꼭 필요한 대화 외에는 하려 들지 않는다. 숙제까지 하고 자야 하니 씻으러 가는 뒷모습이 천근만근이다. 등골이 빠지고 휘는 모습이다. 많은 가정에서 한창때의 청소년들이 이렇게 산다. 우리는 대체 애를 왜 낳은 걸까.

방학이라 쌀이 푹푹 줄고 삼시 세끼 먹일 장 봐다 나르느라 어깨가 뻐근한 당신, 해가 중천에 뜰 때 일어나서는 머리에 헤어롤부터 말거나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구레나룻 뜨지 않게 붙이는 아이를 보며 절로 한숨이 나오는 당신, 그 와중에 지들끼리 싸우기라도 하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당신, 잘 키우고 계시는 거다. 적어도 내 품에서 부대끼니 말이다. 남의 손, 특히 학원 손에 맡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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