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아이가 어느 대학을 다니는데···”라는 말버릇
  •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 호수 637
  • 승인 2019.12.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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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누구나 ‘장수생’ 한 명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수능만 내리 몇 년째 보고 있는 젊은이들 말이다. 지인의 아들은 삼수 끝에 붙은 대학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군에 입대하고도 휴가 기간을 맞춰서 계속 수능을 보았다. 보면 볼수록 성적이 조금씩은 오르니 말릴 재간이 없다고 한다. 제대하고는 집중해서 한 번만 더 보겠다고 한단다. 또 다른 지인은 성적이 안 좋은 아이에게 전문대학을 권했으나 아이가 곧 죽어도 알 만한 4년제 대학을 가겠다고 우기고 있어서 난감하다고 한다. 두 집 아이들 모두 ‘시야각’이 지나치게 좁은 탓이다.

아이는 부모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짐작해본다. 장수생 아들을 둔 지인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의사 집안 부러워하며 의대 타령을 했고, 대학 눈높이만 높은 아이를 둔 지인은 누군가를 설명할 때 “그 사람은 큰딸이 어느 대학을 다니는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언제까지 입시 레이스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속은 좀 쓰려도 ‘다른 길’이 있다고 아이를 설득해보지만, 정작 아이들은 선뜻 눈을 돌리지 못한다. 대학을 향한 좁디좁은 예각으로만 시야가 고정돼 있다. 후회막급이라도 할 수 없다. 그조차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의 몫이니까. 다만 여건이 될 때 그 부모가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는 했으면 좋겠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일찍이 알려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사실상 고교 서열화를 보여주는 13개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가 드러나고, 정부가 정시 확대를 추진하며 저마다의 가치와 이해가 충돌하는 시간을 보냈다.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나, 답답하고 심란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교육’을 내세우지만 결국 ‘입시’를 둘러싼 샅바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느 방안이건 현실과 맞으려면 모든 학교의 수준, 특히 교사들의 능력과 자질이 균질해야 하고, 어떤 아이도 ‘부모 찬스’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충족돼야 성립되는 게임의 규칙이랄까 방정식이다.

학교는 20이 아니라 80을 향해야

대학을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하거나 아니면 좀 있다 가려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중등교육은 무엇일까. 가령, 운동을 좋아하는 내 아이에게 학교는 체육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며 배구며 다양한 생활체육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날씨 정보에 민감하고 아침마다 일희일비한다. 어떤 아이에게는 밥이다. 어떤 아이에게는 친구다. 어떤 아이에게는 집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입시’를 향한 예각으로 중등교육을 대할 때 정책 입안자나 현장의 교사들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는 둔각 지대의 수많은 아이들이 있다. 가정에서도 성취를 보이는 아이에게 한정된 자원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데, 교사인들 별수 있을까(물론 그렇다고 사랑을 주지 않는 건 아닐 터이다. 아무렴. 그리 믿는다).

최근의 논란은 상위 20% 성적인 학생들과 상위 20% 소득수준을 가진 학부모들이 초미의 관심을 둘 주제였다. 그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차피 학종으로도 대학 가고 정시로도 대학 간다. 많은 학생들이 상위 20% 성적을 기대하며 성장기를 갈아넣고, 어지간한 학부모라면 상위 20% 소득수준 가구의 아이들과 비슷한 지원이나마 해주려고 흉내라도 내느라 아등바등 쥐어짠다. 그런데도 입시 결과는 결국 부모의 소득수준과 비례해서 나온다. 이후 취업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적어도 학교는 20이 아니라 80을 끌어안고 지지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안을 찾는 데 간절히 지혜와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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