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뺑이’로 대학에 가자
  • 김소희 (학부모∙칼럼리스트)
  • 호수 628
  • 승인 2019.10.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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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밤 11시. 아이의 카카오톡이 위잉, 위잉 울려댄다. 어지간한 어른도 잠자리에 들 시간에 아이들의 사교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대부분 학원 마치고 집에 와서 한숨 돌리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짬이 맞는 때다. 수다 떨고 바로 자면 모르겠으나, 일부는 그러고 또 눈 비비며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 고작 중학교 1학년생이 이렇다. 자유학년제 기간이라 학교 시험 부담은 없지만 이참에 ‘바짝 달려놔야’ 하는 것이다. 상당수는 초등 고학년부터 이런 일과를 이어오고 있다.

미용 관련업에 종사하는 그이는 아이를 동남아시아의 한 국제학교로 보낸 뒤 주 7일 ‘바짝 벌고’ 있다. 근무처가 쉬는 날에는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우리나라 학원비를 생각하면 물가 싼 나라의 국제학교에 보낼 만하다며, 영어라도 제대로 배울 테고 무엇보다 여기서는 바빠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 홈스테이에서 ‘따순 밥’ 먹고 또래와 어울리니 좋다고 역설했다. 큰애 적응하는 것 봐서 둘째도 데리고 갈 생각이란다. 부모가 외국에 함께 거주해야 하는 대학 특례입학 요건을 고려한 듯했다.

교육은 더 이상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다. 오히려 계층 간 넘나듦을 허락하지 않는, 계급적 차이를 공고히 하는 콘크리트 천장으로 작동한다. 좋은 대학 나와서 떵떵거리고 잘살라고, 잘살려고 너나없이 이렇게 고된 건 아니다. 불안해서 그렇다.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라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수록 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벌 자본’이 마지막 동아줄인 것이다.

수시 덕분에 그나마 학교가 입시학원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수시는 수상하고 정시는 정직하다’는 주장도, 균형점을 찾으려는 교육 당국의 여러 시도도 저마다 일리가 있다. 가능한 다수에게 좋은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제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라도 대학 입시라는 ‘깔때기’를 통과하는 이상 아수라장을 거쳐 엉망으로 수렴돼버리기 때문이다.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보았다. 재벌 개혁보다 사학 개혁이 어렵고, 부동산 규제보다 사교육 규제가 힘들다는 것도 절감했다. 학교 선택권은 사실상 없고 학생 선발권도 포장이라는 걸 모두 안다. 그 결과 전쟁 같은 경쟁을 채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이 매일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생의 평균 학습시간이 대학생보다 길다. 사회 전체가 아이들을 학대하는 꼴이다. 미친 짓이다. 차라리 경쟁 없는 ‘대학 평준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멀쩡하고 현실적이라고 본다.

합리적이고 정교한 ‘대입 추첨’ 시스템 가능

국공립대 통합이나 공영형 사립대 같은 방안도 이미 나와 있다. 심화시키면 길이 보인다. 지원 뒤 무작위 추첨이라는 기본 얼개를 기반으로 공정한 장치를 갖추면 ‘뺑뺑이’로 대학 가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50년 전 중학교 무시험 배정에 쓰인 은행알 뽑던 물레를 누구도 불공정하다고 하지 않았다. 연이어, 고교 평준화 정책을 시행했고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학력 수준이 떨어진다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입증됐다. 게다가 지금은 수십, 수백만 건의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에 쓰인 문장의 유사성을 탈탈 털어내고 학교별 수상 실적의 난이도까지 비교해내는 프로그램 기술을 지닌 시대이다. 합리적이고 정교한 대입 추첨 시스템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등교육 제대로 받은 아이들을 부모 배경 없이, 차별 없이, 편견 없이 뽑아 고등교육은 대학이 책임지자. 못 따라가면 유급이나 낙제시키고 따라가면 잘 가르쳐 졸업시키면 된다. 여기서 또 다른 경쟁이 일겠지만, 적어도 그건 성인기 이후 제 깜냥과 선택에 따른 게 아니겠는가. ‘뺑뺑이’로 대학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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