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의 유수한 천문학자뿐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학도들까지 하나의 별을 주목하고 있다. 요즘 같은 겨울에 잘 보이는 오리온자리의 알파별(특정 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베텔게우스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베텔게우스는 밤하늘에서 아홉 번째로 밝은, 인기 있는 별이었다. 그런데 최근 3개월 사이에 이전 밝기의 3분의 1 정도로 희미해졌다. 〈뉴욕타임스〉는 베텔게우스 연구자인 에드워드 기넌 교수의 말을 인용해 “기절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텔게우스가 별의 인생을 끝내고 폭발을 앞두고 있다는 의미다.
베텔게우스의 질량은 태양의 11배, 지름은 800배다. 나이는 730만 년 내외로 추정되는 젊은 별이다. 그러나 베텔게우스는 무거운 질량 때문에 에너지 소모도 빨라 조만간(그래도 수십만~수백만 년) 진화의 최종 단계인 폭발에 이를 전망이다. 별들의 공통된 운명이지만, 예측 수명이 100억여 년에 이르는 태양에 비하면 요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별의 폭발은 우주에서 가장 큰 불꽃놀이다. 그러고는 블랙홀이 되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베텔게우스는 인류 초기부터 잘 알려지고 관찰된 별이다. 동양에서는 ‘청룡의 거대한 뿔’이란 의미로 대각성(大角星)이라고 불렸다. 조선 초기의 발명가이며 천문학자인 장영실도 이 별을 보았을 것이다. 베텔게우스는 고대 중동에서 ‘야드 알 자우자’로 발음되었다. ‘오리온의 손’이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유럽인들이 아라비아어를 라틴어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야드 알 자우자’의 앞부분을 잘못 읽는 바람에 베텔게우스로 굳어졌다. 미국인들은 ‘비틀쥬스’로 읽기도 한다.
1880년, 미국인 천문학자 헨리 드래퍼가 베텔게우스를 최초로 사진에 담았다. 망원경에 단 덩치 큰 유리건판 카메라로 51분간 오리온성운을 추적하며 촬영했다. 사진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망원경의 수준이나 사진의 감광도로 볼 때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을 듯하다.
언젠가 베텔게우스가 ‘초신성(超新星) 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별의 폭발은 우주에 흔한 현상이지만 너무 멀어서 관측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베텔게우스의 경우는 다르다. 폭발한 지 3시간 뒤부터 보름달의 대략 100배에 달하는 광도로 지구의 밤을 3개월 동안 밝힌다. 대낮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의 빛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초신성 폭발의 감마선이 지구의 지표를 홀랑 벗겨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베텔게우스는 지구로부터 650광년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베텔게우스는 자그마치 650년 전에 베텔게우스로부터 출발한 빛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650년 전 고려시대 신안 앞바다에 무역선이 침몰할 때의 베텔게우스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미 폭발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지금은 베텔게우스의 지금이 아니다. 이는 우주의 한계속도인 광속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한계다. 요즘 한국 문단이 사랑하게 된 SF 소설가 김초엽은 썼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카메라 파인더 안에 들어온 베텔게우스의 빛 또한 고향에서 탈출해 650년 동안 홀로 날아왔으니 어찌 외롭지 않았겠느냐고. 그러나 빛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외로운 존재는 별을 바라보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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