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먹고살기 힘든 것은 사진업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카메라 등장으로 대거 사라졌던 필름 현상소가 한때나마 반짝하고 다시 생긴 건 레트로 붐 때문이었다. 인기 연예인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와 비슷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필름 사업을 접은 코닥이 필름을 재생산하기도 했고, 필름 값이 뛰기도 했다.
레트로 붐 덕에 우후죽순 충무로에 들어섰던 현상소들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촬영을 할 수 없으니 현상할 필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 필름 카메라 유행은 기형적이다. 필름 카메라로 찍는데 필름만 현상하고 스캔한다. 스캔 사진을 SNS에 올린다. 즉 프린트(인화)라는 과정은 생략된다. 사실 옛 현상소의 수익 대부분은 프린트에서 나왔다.
사진이라면 원래 프린트를 가리키는 것이다. 필름은 프린트를 만들기 위한 이미지다. 하지만 이제 사진은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제구실을 한다. 수많은 모니터와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다. 디지털 모니터로 만든 액자도 있다. 프린트의 종말을 맞은 것만 같다.
사진의 실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미술시장에서는 어떨까? 디지털보다는 당연히 종이 위에 이미지가 새겨진 프린트가 더 값이 나간다.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같은 작가들의 대형 사진이 나타나기 전까지 20세기 초반 전통적인 은염 프린트들이 가장 고가로 거래됐다.
현재 가장 비싼 사진 리스트에서 현대 작가를 제외하면 10위 안에 에드워드 웨스턴과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등 고전 사진가들이 있다. 특히 프린트 완성도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에드워드 웨스턴의 1925년 작 〈누드〉가 소더비 경매에서 20억원에 팔렸다. 작품이 크지 않다. 왜 이렇게 비싸게 팔릴까?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다. 여기에 웨스턴이 대형 카메라를 정교하게 조작해 매우 품질이 뛰어난 노출 상태의 네거티브 필름을 만들고, 이를 다시 은염 인화지 위에 아름답게 옮겼다. 일종의 공예를 하는 장인의 자세다. 그는 완성된 인화지 위에 왁스를 두껍게 바르고 광을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요즘처럼 찍은 다음에 바로 감상하는 디지털 세대는 도저히 이해 못할 수고일 수 있다.
사진을 유일무이한 공예품으로 만들기
예전에는 대학에 사진학과가 많이 있었다. 지금은 영상학부의 하위 전공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가르치던 서구와 일본은 장식예술과나 공예과 밑에 두곤 했다. 이제 사진은 갈림길에 섰다. 디지털 사진처럼 무궁무진하게 복제되는 사진은 발터 베냐민의 예언대로 민주사회의 도구로 권력을 감시하거나, ‘n번방 사건’에서처럼 범죄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심란하다.
그럼에도 사진이 가야 할 또 한 방향이 있다. 사진 본연으로 돌아가 프린트로 남기는 것이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검토하고 선택해 프린트로 정성스럽게 만든다. 그 사진에 사인을 넣어 유일무이한 공예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좀 더 상업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면 에디션을 정해 한정된 복제 제작을 하면 된다. 물론 이런 공예품을 만드는 길은 험난하다. 광학을 공부하고, 화학을 익혀야 하며, 탁월한 미학을 숙련해야 한다. 이제 인구의 99%가 사진을 찍는 세상에서 사진가로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공예적 접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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