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6일 밤 시리아 모처에 은신 중이던 ‘이슬람국가(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자살했다.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레인저가 합동으로 급습하자 알바그다디는 자식 3명과 함께 터널에서 자폭했다. 여러 명이 사살됐으며 1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 이 작전명은 ‘케일라 뮬러’였다. 인권운동가인 뮬러는 국제구호단체에 속해 난민을 돕던 중 IS에 납치되어 포로가 됐다가 살해당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작전의 실체를 모른다. 전투행위를 한 당사자들 외에는 목격자도 없고 기록사진도 없다. 작전 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알바그다디의 은신처 사진만 접할 수 있다. 이것을 과연 전쟁사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전쟁사진가는 1855년 크림전쟁을 기록한 영국인 로저 팬턴이다. 당시에는 장비가 무겁고 이동이 어려워서 정적이고 인물 중심으로 전쟁사진을 찍었다. 전투 현장을 찍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사진은 전쟁을 증명했고 사람들은 이 정보에 만족했다.
20세기 초 35㎜ 소형 카메라의 등장으로 전쟁사진은 치열한 전투 현장과 비극을 포착했다. 대표적인 사진가는 스페인 내전을 촬영해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이다. 그는 스페인 병사의 죽음,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굵직한 특종을 내며 ‘자신이 현장에 존재하며 전쟁은 실체다’라는 점을 증명해냈다. 이 같은 사진가들의 현장주의 전쟁사진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미디어를 장악했고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분쟁 지역 사진가 뤼크 들라예의 예를 살펴보면 현대 전쟁사진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해 찍은 대형 사진을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에 전시했다. 이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일었다. 첫째, 전투 현장은 없고 흔적만 존재하는 풍경사진도 전쟁사진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둘째, 전쟁사진이 고급스러운 예술작품이 되어 미술관에 걸려도, ‘전쟁 반대’라는 전쟁사진의 본질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전쟁 후의 사진으로 전쟁의 본질 묻다
들라예는 원래 〈뉴스위크〉 사진기자였다. 그는 분쟁 지역에서 밀착 사진으로 유명했다. 들라예가 〈매그넘〉 소속 작가가 되면서 전쟁사진의 방향이 바뀌었다. 즉 그는 전쟁 후의 흔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물었다. 형식만 바꾼 게 아니라 발표 공간도 대중이 보는 매거진에서 소수가 감상하는 전시장으로 전환했다.
들라예의 논리라면 알바그다디가 숨진 은신처의 폐허 사진도 훌륭한 예술작품이 되어 미술관에 걸릴 자격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가 은폐되어 있다. 바로 현대 전쟁에서 사진가들을 배제하는 상황이다. 대부분 군대는 전쟁 현실을 전하는 사진기자들을 싫어한다. 사진가들 때문에 작전 수행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라크전쟁부터 미군은 기자들의 참여를 방해하고 금지했다. 오직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자들을 선택해 병사들처럼 운용했다. 예전 종군기자와 같은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전투 후 흔적을 찾아 헤매면서 그 본질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전쟁의 실체와 그 흔적은 다르며 대중에게도 다르게 읽힌다. 이는 폭로와 예술 사이에 놓인 루비콘강처럼 멀다. 전쟁사진의 본질은 각성과 극복이다. ‘전쟁 무용’을 논파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지금 사진가들은 그 본질에 대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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