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태권도학과 연습장이었던 시범단 도장의 모습.

학생생활관 329호에 들어선 김다훈씨(22)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2층 침대, 그 끝에 걸린 태권도 도복, 바닥에 널브러진 양말, 남성용 화장품, 벽에 붙여놓은 단체 사진, 문을 닫은 대학교의 기숙사.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생활의 흔적과 기억의 단편이 뒤섞여 나뒹굴었다. 찍은 사진을 ‘17학번’ 단톡방에 공유하자 곧바로 메시지가 올라왔다. ‘추억 돋는다.’ ‘부럽다 나도 가보고 싶은데!’ ‘올해 2월에는 다 같이 가자.’ 2020년 1월1일, 한중대가 문을 닫은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학교가 문을 닫아도 학생은 남는다. 2020년 대한민국은 대학 정원이 입학 가능 학생 수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인구절벽의 여파다. 2024년까지 12만여 명이 줄어드는 이 ‘예고된 재앙’ 앞에서 지방대학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한중대는 그 시점이 조금 빨랐다. 폐교된 대학은 피해자를 남긴다. 한중대는 2018년 2월 문을 닫기 전까지 2017학번 신입생을 모집했다. 남겨진 학생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시사IN〉은 폐교 직전까지 한중대 태권도학과에 재학한 35명의 궤적을 전수조사했다. 울타리를 잃은 지 2년, 가족처럼 지낸 이들은 어느새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시사IN 김연희 나경희 최예린
ⓒ시사IN 김연희 나경희 최예린

새해 해맞이를 보러 가는 차량들로 꽉 막힌 영동고속도로에서 김다훈씨는 2017년 3월6일을 떠올렸다. 그날도 오늘처럼 고향 인천에서 한중대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로 향했다. 부모 차에 짐을 싣고 갔다. 한중대 태권도학과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학교의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건물이 너무 낡아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도 곧 적응했다. 2017년 한중대 태권도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 35명은 모두 고향이 달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낯선 타지에 모인 이들은 금세 각별해졌다. 빡빡한 훈련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동해 시내에 있는 ‘미소준 두 마리 치킨’은 특히 잊을 수 없다. 매일 밤마다 기숙사에서 치킨을 시켜먹었다.

태권도에 눈을 뜬 건 한중대에 진학하면서 부터였다. 유치원 때 태권도를 시작했지만 진지하지는 않았다. 도장에서 만난 친구들을 따라 지원했고 함께 합격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진학한 한중대는 알고 보니 태권도계의 신흥 명문이었다. 2008년 태권도학과가 신설돼 역사는 짧았지만 제법 명성이 있었다. 2015년 한중대 태권도학과 시범단은 국기원이 주최하는 ‘세계태권도한마당’ 대회에 출전해 2위를 했다. 태권도학과에 대한 학교의 지원도 나쁘지 않았다. 간호학과와 태권도학과 학생들은 우선적으로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40만원이었다. 태권도 도장은 2개였는데, 시범단이 사용하는 400평짜리 실내 도장은 몇 바퀴만 뛰어도 숨이 찼다.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서 그는 처음으로 삶의 목표를 세웠다. ‘국가대표 시범단 들어가기.’ 실제 국가대표인 태권도학과 학생회장을 따라다니며 기술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태권도가 그 무엇보다도 재밌어졌다.  

전 총장, 교비 277억원 횡령

1월1일 다훈씨가 찾은 한중대 태권도학과 사무실 벽에는 2017년 재학생 전체의 사진과 개개인의 목표가 적힌 종이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김다훈씨는 3년 전 자신이 쓴 목표인 ‘국기원 시범단’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저런 것도 쓴 적이 있네요.” 하지만 한중대 태권도학과 17학번 새내기들의 캠퍼스 생활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교육부의 폐쇄 명령에 따라 2018년 2월28일 한중대는 폐교됐다. 학교가 사라진 후 그는 태권도에서 점점 멀어졌다. 다른 학교로 편입해 태권도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김다훈씨는 현재 육군3사관학교 입학을 준비 중이다.

ⓒ시사IN 신선영태권도학과 17학번 김다훈씨가 1월1일 자신이 생활했던 기숙사를 둘러보고 있다.

대학교가 문을 닫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재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다훈씨처럼 반짝이던 꿈을 접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중대는 동해시의 유일한 4년제 종합대학교였다. 2017년 폐교 시점 재적생 수가 972명이었다. 2020년은 인구 감소로 인해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보다 적어지는 첫해이다. 앞으로 사라지는 학교, 남겨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폐교에도 단계가 있다. 우선 학교가 문을 닫을 거라는 소문이 퍼진다. 이 소문은 안개처럼 자욱하게 수년간 학교를 맴돈다. 2017년 4학년으로 태권도학과 학생회장을 맡았던 정용문씨(25)가 입학할 때도 그랬다. 2013년부터 한중대는 정부지원 제한대학 및 경영부실 대학으로 선정됐다. 용문씨는 2014년 대입 수시 전형에서 경희대와 한중대 태권도학과에 동시에 합격했다. 이름이 알려진 경희대 대신 한중대를 택했다.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한 수상 경력 덕분에 한중대에 진학하면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실대학으로 지정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해마다 대학교 수십 개가 부실대학으로 선정됐다. 그 가운데 폐교되는 학교는 없었다. 2학년이 되던 2016년, 용문씨는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 소속 국가대표가 되었다.

한중대가 겪는 위기의 발단은 설립자인 홍희표 전 총장이 불법적으로 교비를 횡령한 탓이었다. 2004년 종합감사에서 교육부는 홍 전 총장이 불법으로 교비 277억원을 사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재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학 관계자들은 학교를 인수할 대상을 찾아다녔다. 한번은 학교를 보러온 중국 투자자 앞에서 태권도 시범을 했다. “‘잘하자, 잘하자’ 하고 보여드렸는데 학교가 너무 낡았는지 보고 그냥 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위치를 문제 삼았다고 하더라고요.” 40명이었던 동기는 2학년 때 20명, 3학년 때는 8명으로 줄었다.

ⓒ시사IN 신선영한중대는 1991년 동해전문대학으로 개교해 2005년 한중대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5개 단과대 26개 학과로 구성 된 종합대학이었다.

꼭 폐교를 예상해 학교를 옮긴 건 아니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훈련이 너무 고돼서, 그리고 체육학과 특유의 ‘똥군기’를 견딜 수 없어 떠나는 동기들이 많았다. 3학년 2학기 학생회장이 되면서 이런 문화를 바꾸자고 결심했다. ‘다나까’ 말투를 없애고 호칭도 선배 대신 형·누나로 변경했다. 실력 있고 탈권위적인 그를 후배들은 잘 따랐다. 군기가 심했지만 선후배, 동기 사이에 유대감도 못지않았다. 부실대학으로 지정되면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고 국가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다. 등록금 부담 때문에 휴학하려는 후배에게 한 선배는 등록금을 대신 내줬다. “후배들을 잘 지켜서 좋은 학과를 만들고 졸업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폐교가 될 거라는 소문이 아닌, 실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건 2017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생회 회의에서 총학생회장이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거짓말하지 마라, 장난치지 마라’ 했는데 진짜더라고요.” 2016년 교육부 특별종합감사 결과 교직원 체불임금이 333억원에 달했다. 2017년 5월29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광희학원(한중대)이 횡령액 반환과 체불임금 시정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학교 폐쇄를 예고했다. 결국 2004년 설립자가 저지른 비리를 13년 동안 바로잡지 못해 발생한 피해는 학생들의 몫이 됐다.

화도 나지 않았다. 후배들이 갈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폐교가 확실시되자 원래 제구실을 못했던 학교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학생들에게 폐교한다는 공지를 전달하는 것부터 학생회에서 도맡아야 했다. 용문씨는 밤잠을 줄여가며 후배들이 편입할 수 있는 학교를 알아봤다. 국가대표를 하며 쌓은 인맥을 통해 각 지역에 있는 태권도학과에 대한 정보를 구했다. 무작정 교수를 따라가려는 후배들은 막았다.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에 편입생들을 데려가면 교수의 실적으로 잡힌다. 그러지 말고 내실 있는 대학, 원래 가고 싶었던 대학에 편입을 준비하라고 설득했다. 2017년 8월에는 한중대를 살려달라고 전교생 500명이 모여 강원도청 앞에서 시위도 했다.

ⓒ시사IN 신선영학교 기숙사에는 아직도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2017년 10월27일 교육부는 예정대로 한중대학교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재학생들은 강원 지역의 다른 대학으로 특별 편입을 할 수 있다는 한 줄짜리 대책이 제시됐다. 특별 편입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상담할 창구는 대학 학생회 차원에서 마련했다. 용문씨는 끝까지 인수자가 나와 학교를 되살려주기를 바랐다. 2018년 1월 태권도학과 4학년 9명이 학사모를 썼다. 한중대 마지막 졸업생이었다. 용문씨는 지원한 대학원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이듬해 군에 입대했다. 4학년 학생들을 제외한 재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 다른 대학교 태권도학과에 편입했지만 한중대가 문을 닫으며 아예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도 있었다.

1년을 못 넘긴 유원대 태권도 시범단

2학년 정예성씨(23)는 유원대학교 경찰소방행정학부로 편입했다. 교수 한 명이 이곳으로 옮기면서 자리를 마련했다. 유원대에는 태권도학과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았다면, 정용문씨에 이어 학생회장을 맡았을 동기 조은호씨(23)가 “유원대에서 한중대의 명맥을 잇는 태권도학과를 신설해보자, 흩어지지 말자, 다시 할 수 있다”라며 동기와 후배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한중대 태권도학과 6명은 강원도 동해시에서 유원대가 있는 충청북도 영동군으로 왔다. 1학년 김다훈씨도 포함돼 있었다.

유원대에는 태권도를 지도해줄 교수도, 시설도 없었다. 무도관이라는 체육관에서 정규 수업이 없을 때 훈련을 했다. 학과를 새로 만들려면 신입생을 받든, 재학생을 유치하든 인원을 늘려야 하니 홍보를 열심히 했다. 학교 주변 행사를 다니며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유·태·시(유원대 태권도 시범단)’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2018년 유원대 태권도 시범단이 전남 영광에서 열린 ‘전국대학태권도대회’에 출전했던 일화는 태권도계에서 유명하다. “‘열정 가지고, 실격인데도 나와서 대회를 뛰었던 애들’ 하면서 알아주는 게 있어요.” 대회 출전이 가능한 최소 인원은 10명이었다. 휴학생을 끌어오고, 경찰소방행정학부 학생을 겨우 데려왔는데도 10명이 채워지지 않았다. 대회 진행팀에 실격이더라도, 뛰고 싶다고 사정했다. 그렇게 출전한 대회에서 유원대 태권도 시범단은 실수를 연발했다. 7분30초짜리 시범의 피날레는 ‘세 바퀴’라는 고난이도 기술이었다. 라스트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뛰어오른 주장 은호씨는 착지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연습할 때도 성공률은 50% 정도였지만 이 기술을 고집했다. 성공시키면 그만큼 팀을 알릴 수 있었다. 넘어진 은호씨가 매트에 자빠진 채로 울음을 터뜨렸다. 팀원 중 한 명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연합뉴스2017년 8월 ‘한중대 공립화 촉구 결의대회’에서 한중대 태권도학과 정예성씨(왼쪽)가 팻말을 들고 있다.

유원대 태권도 시범단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해체했다. 정예성씨는 2018년을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는 해”로 기억한다. “결과가 되게 안 좋았어요. 지금은 다시 잘 지내지만, 중간에 저희들끼리 불화도 많았고 교수님과 커뮤니케이션도 잘 안 되었고요.” 유원대로 간 한중대 학생들은 2019년을 앞두고 다시 한번 편입을 준비했다. 태권도학과를 찾아 정예성씨는 전주대로, 조은호씨는 한국체육대학교로 갔다. 유원대를 자퇴했기 때문에 3학년을 한 번 더 다녔다. 유원대에 남은 건 이지훈씨(가명)가 유일하지만 그도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 취업계를 내고 고향에 있는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한다.

유원대 태권도 시범단 주장과 부주장으로, 한중대 태권도학과를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은호씨와 예성씨는 이제 대회에서 경쟁 상대로 마주친다. 그래도 여전히 끈끈한 사이다. 2017년을 한중대 태권도학과에서 보낸 35명 대부분이 돈독하게 지낸다. 본인들이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가 문을 닫은 뒤, 도움을 요청해야 할 곳도 알지 못했던 학생들은 서로 어깨를 겯고 위태로운 시간을 헤쳐 나왔다. 그만큼 성숙했고, 더 나은 기회를 얻게 된 학생들도 있다. 전주대 태권도학과 시범단은 2019년 대학 리그 5개 대회를 모조리 우승하며 전관왕에 올랐다. 그 자리에는 항상 예성씨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한중대학교가 폐교된 지 2년이 지났잖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지금까지도 저희는 학교가 왜 문을 닫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들은 적이 없어요.”

기자명 동해/김동인·김연희·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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