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분노’만 남은 고졸 청년들
  • 변진경 기자
  • 호수 643
  • 승인 2020.01.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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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청년들의 각종 지표가 추락하고 있지만, 사회는 무관심하다. 청년 정책에서도 고졸 청년은 소외됐고, 이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차별을 내재화한 채 차가운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시사IN 이정현

문재인 정부 들어 고졸 청년들의 지표는 확실히 나빠졌다. 고졸 취업률이 최근 2년 사이 눈에 띄게 추락했다(〈그림 1〉 참조). 대학에 진학하지도 군에 입대하지도 않은 고졸 청년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청년 비율은 2019년 24.9%밖에 안 된다.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취업을 목표로 삼고 3년 동안 교육과정을 마친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더 가파른 하락세를 그렸다(〈그림 2〉).

거꾸로 대학 진학률은 올라갔다. 대학 진학률 그래프가 곧 대학 졸업장의 필요성을 절감한 청년 비율의 추이라고 보았을 때, ‘고졸이어도 괜찮아’라는 인식이 최근 2년 사이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고졸 취업 지표상으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가 지금보다 나았다.

지표가 이렇게 나빠졌는데도 그에 걸맞게 사회적 관심이 올라가지도 않았다. ‘학력 차별’ ‘학력 격차’를 키워드로 한 언론 보도 건수를 보면 이명박 정부 시절 치솟았다가 지금까지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그림 3〉). 차별이 해소돼서가 아니다. 여전히 ‘학력 및 학벌 차별’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로 꼽힌다(〈그림 4〉).

문재인 정부 들어 청년 세대 전반의 취약성과 지원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정책 대상 범주에 고졸 청년도 들어가지만, 이들은 중심이 아니다. 많은 청년 관련 논의와 정책이 ‘4년제 대졸 청년’을 중심으로 짜인다. 출발선, 임금, 처우 등 모든 부분이 대졸 청년에 비해 ‘특별’하지만 고졸 청년을 위한 ‘특화’된 정책은 없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없다. 대학 학자금 지원책이 청년층 경제정책으로 대표되고 수시·정시 논쟁이 청년들의 공정성 요구를 대변하는, 편협한 우리 사회 청년 공론장 안에서 고졸 청년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발화되지도 않는다.

청년오늘연구소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은 취업자, 무당파 기준 안에서 20대 고졸 남성 8명, 20대 고졸 여성 8명을 표적 집단으로, 20대 대졸 남녀 8명을 비교 집단으로 선정해 2019년 10월2~10일 FGI (Focus Group Interview)를 진행했다. 고졸 20대는 어떤 사람들일까?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분노할까? 기사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연합뉴스2018년 11월 ‘삼성 협력사 채용한마당’에서 취업을 원하는 고교생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 정책 바뀔 때마다 격랑 속 고졸 일자리

통계수치는 실제 고졸 20대도 체감하고 있었다. “제가 2017년도 졸업을 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선택권이 있었는데 지금 학교 후배한테 들어보면 학교에서도 자리가 별로 없어서 자가 취업을 해야 하는 애들이 굉장히 많고, 자가 취업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최수정·21·콜센터 비정규직).” “올해 6~7월에 모교를 방문했는데 그때는 보통 상반기 공채, 즉 국내 이름 있는 기업에 몇 명은 뽑히는데 한 명도 취업자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진학반을 9개 반 중 2개 정도에서 3~4개로 늘렸다고 하더라고요. 대학 진학이 늘어서(남세희·21·중소기업 사무직).”

이들이 주요하게 꼽는 고졸 취업률 감소의 원인은 정부 정책 변화다. 작고 불안정한 고졸 취업 시장에서 고졸 채용할당제 같은 정부 정책 하나가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제가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공공기관에서 고졸을 채용하는 비중이 높았는데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에서 고졸 채용 비율이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인원만큼 대졸을 채용을 해버리니까 저희 고졸이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 티오가 많이 줄었어요(이민효·21·공공기관 정규직).”

몇몇 고졸 20대는 이번 정부가 서민층을 위해 추진한 노동·경제 정책이 고졸 취업 시장에 의도치 않게 튀긴 불똥을 맞거나 목격하기도 했다. “농협 계열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비정규직 철폐가 나왔어요. 군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그 후에 그쪽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까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신입을 거의 안 뽑는대요. 예전보다 사람은 없는데 티오가 줄었다고 했어요. 비정규직 철폐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보니까 구멍을 작게 만든 느낌. 계약직은 가서 경력이라도 쌓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들어가서 뿌리를 박아야 하니까. 경력이 없으면 어디 가서 알바를 할 수밖에 없어서(김정식·24·대기업 콜센터).” “작년에 후배들을 뽑으려고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고3 10월부터 취업이 가능했거든요. 근데 무슨 법 때문에 20살부터 취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 대표님도 그러면 차라리 고졸 말고 대졸을 뽑는 게 어떻겠느냐고(송예나·22·중소기업 회계직).”

■ ‘은연중에’ ‘은근하게’ ‘뒤에서’ 차별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고졸로서 겪는 차별을 물어봤을 때 김주원씨(21·중소기업 사무직)는 답했다. 취업 시장에서 학력 차별이 완화되고 있는 걸까? 주원씨 대답의 전체 문장을 살려보자. “대졸 사원들은 아무리 낮아도 3급부터 올라가요. 근데 고졸이나 초대졸은 1, 2급부터 올라가는, 그것에 따른 연봉 차이 말고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몇몇 고졸 20대는 ‘예외적인 몇 가지’ 말고는 일터에서 큰 학력 차별을 겪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예외적인 몇 가지’란 급여체계, 직급체계, 승진제도이다. 노동조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너네는 학창 시절에 뭘 해서, 학교를 어떻게 나왔기에 그런 걸 앉아서 하느냐”라는 소리를 듣는 콜센터 직원 김정식씨 사례처럼 면전에서 대놓고 학력 차별의 언어를 내뱉는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다만 ‘은연중에’ ‘은근하게’ ‘뒤에서’ 속삭인다. “고졸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 조별 과제 같은 걸 안 해봐서 불편한 점이 있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닌데 소통이 안 된다고(정원석·23·주점 서빙).” “승진을 4년 늦게 한다 해도 들어오는 것 자체에서 너희는 혜택을 받았다고 은연중에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앞에서는 많이 안 하고 뒤에서 얘기를 많이 하세요(이민효·21).” “(고졸 전형으로 취업한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서 은근히 안 좋은 소문을 흘리거나 뒤에서 약간 안 좋은 그런 걸 하거나(최수정·21).”

수정씨는 또래 대졸 자녀를 둔 직장 상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집 애들은 대학 나와서 독립도 안 하고 알바도 안 하려고 해. 취업 시장도 너무 작아서 차라리 너처럼 특성화고를 가서 일찍 취업하는 게 나았을 것 같아.” 그런데 후에 다시 만나면 그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나중에 네가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대학은 꼭 가라. 대학은 꼭 가야지 네가 결혼을 하든 나중에 일을 하든 대학을 안 가면 되는 게 없다. 꼭 대학을 가라.”

ⓒ연합뉴스2019년 2월26일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총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그림의 떡’인 청년 정책

“대학을 안 가면 되는 게 없다”라는 조언 때문에라도 주경야독을 계획해보려던 고졸 취업자들은 또다시 벽에 부딪힌다. “대학교 수업 시간이 오후 6시인데 퇴근 시간도 6시라서 맞출 수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고(김주원·21)” “본인 월급도 가산되기 때문에 가계소득이 높게 나와서 국가장학금 신청이 안 되는데 직장 월급만으로 대학 학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운 친구들도 많다(이민효·21).” 특성화고 정책 등에서 장려하고 있는 ‘선취업 후진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대표적인 청년 정책도 고졸 20대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채지영씨(20·편의점 파트타임)는 직업훈련을 위해 ‘취업성공패키지’를 신청했다가 구체적인 자격 요건을 보고 포기했다. 한 달 30만원의 지원금으로 교통비 포함 모든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교육을 받는 대신 다른 돈을 버는 일은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불안정 노동이라도 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20대 초반부터 계속 ‘일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고졸 청년들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직업교육만 받는 기간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청년내일채움공제, 근로자휴가지원 사업 등 중소기업 재직 청년들을 위한 정책도 고졸 청년들에게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회사도 돈을 납부해야 하는 부분이다 보니까 회사한테 얘기를 해서 OK 하면 쓸 수 있는 거고 안 되면 못하는 걸로 알고 있고(송예나·22)” “정책은 만들어놓고 하는 회사는 없다 보니까 정책 있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박미정·26·중소기업 사무직)”이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있어도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고졸 남성 그룹의 FGI 과정에서 한 참석자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언급하자 나머지 7명이 “처음 듣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정책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홍보를 잘 해주면 좋겠어요. 내가 직접 찾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찾기 편하게 해줘야 하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요(정원석·23)”라는 요구가 나왔다. 적극 홍보되지 않은 청년 정책은 오히려 불신으로도 이어졌다. “기껏 청년수당이나 뭐나 좋은 그런 건 해주니까 아는 사람만 받고 모르는 사람은 다 놓치니까 불만도 생기고 없애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고. 그럴 바엔 차라리 없애는 것도 나쁘지 않고 안 하느니만 못한 거죠(백흥수·28·중소기업 사무직).”

■ 우리는 차별에 반대한다, 일부만 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의롭다고 느끼는 노동 소득분배의 기준은 ‘근무 태도’ ‘노력’ ‘업무 성과’ 등이다(〈그림 5〉). ‘학력’은 정의롭지 못한 기준이다. 세대별로도 큰 이견이 없다(〈그림 6〉). FGI 참석자들 의견도 크게 갈리지 않았다. “(대졸이 고졸보다) 1.5배 월급이 높은 거 같은데 그건 불합리해요. 일 해보고 잘하면 올려주면 되잖아요”라는 고졸 장한솔씨(24·행사장 프리랜서)나 “고졸이 일을 더 잘하고 능력이 있으면 확실히 그 사람을 더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대졸 배진주씨(26·디자인 계열 정규직)처럼 고졸·대졸 가리지 않고 대부분 ‘능력주의’의 당위성에 공감했다.

다만 고졸 20대 그룹은 고졸의 업무 능력이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할 때 스스로 그 영역을 꼭 ‘실무 능력’으로 구분해 한정지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론적인 지식은 대학 나온 분들이 세세하게 더 잘 알고 계신데 실무 쪽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고졸들이 경험이나 그런 부분이 많아서(최수정·21)”, “이론은 아무래도 더 많이 배우신 분이 할 텐데 실무는 그렇게 차이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송예나·22)”라는 식이다. 아예 “배움 차이로 당연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김하성·19·공공기관 비정규직)”라며 학력에 따른 임금·승진의 차등에 수긍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학력에 따른 차별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반대했다. 반면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에는 대부분이 동의했다. 〈시사IN〉과 한국리서치의 ‘20대 남자’ 설문조사에서 ‘같은 업무를 한다면 정규직을 비정규직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줄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일을 잘 해온 비정규직이면, 시험을 치지 않고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에 대해 찬반을 물었다. 다른 세대보다 20대 청년일수록 동일업무 동일임금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다(〈그림 7〉 〈그림 8〉).

FGI에서도 확인됐다. 대졸 청년 신미라씨(27·IT 계열 프리랜서)는 “어차피 급여 차이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돼도 기존에 정규직이었던 사람과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히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고졸 그룹에서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반감을 표시했다. “우리 회사가 좀 안 좋은 게 정직원과 알바생(비정규직) 대우를 이상하게 (똑같이) 해줘요. 회사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체계가 잘 안 잡힌 거 같아요(신성휘·25·중소기업 생산직).” 앞서 이들이 공감한 능력주의란 정규직·비정규직 각각의 범주 안에서만 작동하는 능력주의인 셈이다.

젠더 차별에 대해서는 성별로 의견이 갈렸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모든 청년 여성 그룹은 ‘여성’이어서 겪은 직장 내 차별 사례를 여럿 증언했다. 채용 면접 때 여성 지원자에게만 “출산은 어떻게 할 거냐” 물어보고, 시험 승진 때보다 면접 승진 때 유독 남성 승진자가 많이 배출되고, 팀 비서직 자리가 비면 ‘이런 건 여자가 해야지’라며 연차에 상관없이 무조건 여성을 배치하는 사례가 언급됐다.

반면 고졸 남성들은 직장 내 성별 임금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직무 차이에 따른 정당한 차등으로 인식했다. “여성들은 사무 업무를 하니까 우리보다 받는 금액이 적은 거고(신성휘·25).”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해서 우리 회사는 아예 여자한테는 안 시키고 돈을 적게 줘요. 추가근무, 야근, 지방 출장을 아예 우리 회사는 안 시켜요. 위험하기도 하고. 일이 생기면 대처 능력이 안 될 수 있어서(백흥수·28).”

고등학교 졸업 후 온라인 판매업에 종사해온 손재훈씨(25)는 젠더 차별이 이슈가 되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 불만을 표시했다. “요새 추세가 여자가 되게 불리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니까 더욱더 기분을 맞춰주는 거죠. 여자가 책임감이 너무 없다고 봐요. 사내에서도 힘든 일은 피하려 하고. 굉장히 이기적이다, 자체가. 분위기가 그렇게 형성된 거 같아요.”

■ 희망 없는 차가운 분노

학력, 고용 형태, 성차별에 관한 질문에 이어 청년들의 정의와 공정 감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구체적인 사건 하나를 FGI 참석자들 앞에 던졌다. FGI가 진행되던 당시 한창 뜨겁게 벌어지던 ‘조국 대란’이다. 조국 장관 후보자 반대 집회에 나선 대학생들의 사진이 ‘청년들의 분노’ ‘20대의 역습’ 등의 제목과 함께 신문 1면에 게재되던 시기였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받은 여러 가지 특혜에 대해 누구보다 또래인 20대가 가장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고졸 20대 FGI 참석자들은 예상외로 조국 대란에 무덤덤했다.

실제 당시 설문조사 결과상으로도 ‘20대 분노설’을 설명하기에 깔끔하지 않은 구석이 많았다.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 수행에 적합한 인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을 때 20대 청년의 ‘부적합(29%)’ 의견이 ‘적합(14%)’ 의견보다 월등히 높기는 했다. 하지만 전 연령 평균(부적합 48%, 적합 18%)과 비교해보면 20대는 특별히 더 조국 후보자를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대신 ‘판단 유보(57%)’ 비율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KBS 〈일요진단 라이브〉·한국리서치 조사, 8월 15~16일, 전국 성인 1006명 대상). 이 결과는 무엇을 뜻할까?

연령별 결과에 학력 변수를 추가하면 해석의 실마리가 조금 보이는 동시에 또 다른 질문에 맞닥뜨린다(〈그림 9〉). 이 그림을 보면 ‘20대는 20~40대 가운데 조국 대란에 가장 분노한다’라는 말도 맞고 ‘20대는 20~40대 가운데 조국 대란에 가장 관심이 없다’라는 말도 맞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학력’이다. 20대 고졸 이하 청년은 전 계층을 통틀어 조국 장관 임명에 가장 판단 유보적이며, 20대 대학 재학 이상 청년은 전 계층을 통틀어 조국 장관 임명에 가장 부정적이다. 30·40대는 학력이 낮을수록 조국 장관을 반대했지만 20대는 거꾸로다. 학력이 높을수록 조국 장관을 반대했다. 그러니까 ‘20대가 조국 대란에 분노한다’는 말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대학 나온(다니는) 20대가 조국 대란에 분노한다.’

고졸 20대는 왜 조국 대란에 무덤덤할까?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본부 전문위원 해석에 따르면 ‘너무 먼 곳에서 벌어지는 불합리’이기 때문이다. 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불친절한 공무원 앞에서는 불같이 화가 나지만 재벌가 2세들의 상속 분쟁 뉴스에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이번 FGI에 참석한 20대 고졸 청년들에게 조국 대란에 대한 견해를 묻자 “뉴스에서 떠들어대니까 안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피곤한 상태로 뉴스까지 보기에는 힘들어서 뉴스를 잘 안 보고 사니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신성휘·25)”라거나 “짜증은 나는데 직접 연관이 없어서. 재미있어요, 보면. 눈 뜨면 사건 사고 터지는데 재미있죠(김하성·19)”라고 답했다.

조국 대란으로 촉발된 대학가, 광화문, 서초동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취지는 좋고 참여 의지가 있으면 하는 게 맞는 것 같고(남세희·21)” “(조국 반대 집회를 벌이는 서울대, 고대 등 대학생들을 보면) 일단 제일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셨다는 생각에 조금 안타깝고 안쓰럽(최수정·21)”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느끼기 힘든 고졸 청년 처지에선 “굳이 직접적으로 찾아가서 시위할 정도까지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황예슬·24·중소기업 회계직).”

이들의 무덤덤함은 ‘쿨함’이 아니다. “맨 위가 바뀌어도 중간이 해먹고. 중간이 바뀌어도 맨 위가 해먹으니까 악순환인 거 같아요(김정식·24)”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 걸 보면 앞으로도 영원히 고쳐지지 않을 거 같아요(신성휘·25)”라는 말에서 보이듯 이들 눈에 한국 사회는 뿌리부터 썩은 구제 불능의 세계이다. 화도 희망이 있어야 나는 법이다. “의견을 피력해봤자 바뀔까 싶어서” “시위 같은 거 해봤자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하든 대한민국은 안 바뀌니까” 분노를 표출하지도 목소리를 내고 싶지도 않다는 이들의 냉소는 어쩌면 ‘뜨거운 분노’보다 더 절망적인 ‘차가운 분노’에 가깝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저소득 저학력 계층일수록 더 높은 상대적 박탈감(〈그림 10〉 〈그림 11〉)에 주목했다. 상대적 박탈감은 ‘준거집단(남) 대비 자신이 희망하거나 응당 받아야 할 만큼의 보상을 빼앗기고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불만’으로 정의된다. 상대적 박탈감 지수를 산출할 때 묻는 문항 속에서 ‘나와 비교되는 남(준거집단)’이란 ‘나와 비슷한 사람들(people like me)’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조차 계층별로 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은밀한 차별에 노출되고, 청년 담론에서 소외받으며, 주류를 이루는 ‘분노 이슈’에서도 (다른 세상 이야기이기에) 배제된 이들이 바로 이 시대 대한민국 고졸 청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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