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시민’, 투표권을 획득하다
  • 이윤승 (서울 이화미디어고 교사)
  • 호수 642
  • 승인 2020.01.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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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지난 12월23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28일 통과되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 연령을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는 부분이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청소년과 함께 치를 수 있다. 대부분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투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02년 4월 이전에 태어난 학생들과는 같은 유권자로서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 정말 기대가 크다. 한편에서는 학교가 정치화할 수 있다며 개정안을 취소하라고 하지만 교사로서 보기에 그런 주장이야말로 그동안의 학교 속 정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는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다. 학교는 순결하고 학생들은 그 안에서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학교도 사회 안의 조직이기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도 정치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특히 사립학교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학교의 정치는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커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중에 이미 사학재단을 소유하고 있거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재단 이사장이 국회의원 출신이었고 그 아들인 재단의 대학 총장은 현직 국회의원이었다. 어느 날인가 교장이 밥을 사주겠다고 여러 교사들과 같이 가자고 했는데 가보니 국회의원이 주최한 정당의 행사였다. 그 학교의 교사들은 재단이 커지려면 그 정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학생들 앞에서도 당시의 야당 정치인들을 비하하고 여당 정치인을 비호하는 말을 자주 했다. 내가 다니던 사립 초등학교에서도 당시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학교 강당에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우리 학교를 위해 일할 후보이니 꼭 투표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내가 겪은 이런 일은 국회의원과 관련된 사립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12월에는 많은 학교에서 학생자치회 선거를 한다. 우리 학교도 지난 12월 초에 선거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실천이 아닌 학습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주의나 자치는 연극처럼 다뤄질 수 있는 게 아닌데도 학생들의 자치는 실제적인 권력기구로서의 역할이 비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회장은 투표로 뽑지만 학생회장에게 부여된 권리는 거의 없다 보니 학교의 심부름꾼 노릇으로 전락한다. 심지어 공약을 마음껏 내지 못하게 검열하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 비판적인 말을 하면 교사들에게 지적받기도 한다.

학생의 표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 보고 싶어

한때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자격에 성적 제한을 두거나 담임의 승인이 없으면 아예 입후보를 못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학생회장과 학생회에 권력이 없다 보니 공약의 수준도 빈약하다. 우산 대여제, 화장실 휴지 교체 등의 공약은 가능하지만 학생 생활지도 규정을 개정하겠다거나 학생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 공약을 내놓기는 어렵다.

학생들의 정치력이 약하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학교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는 탓이 크다. 학생들이 미숙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동안 학교에서 미숙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서울시교육감은 학생들이 교복 입은 시민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학생이 시민이 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정권은 필수이다. 참정권이 없는 시민은 결코 시민일 수 없다. 교육부 장관에게 부총리의 직함을 줄 만큼 교육이 중요하다. 교육정책의 직접적 당사자인 학생에게는 교육정책을 보고 참정권을 행사할 권력이 없다. 청소년을 시혜적인 처지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으로서 바라보며, 국회의원들이 청소년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학생들의 표를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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