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전기가 멈추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된다. 기계 값 수억원을 갚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쇄 노동자들은 귀마개를 착용하고 일한다. 종일 들리는 굉음을 견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잘 들리지 않으므로 그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손발을 맞춰가며 종이를 넣고 색과 열을 맞춘다. 이따금 인쇄소에 갈 때면, 그들의 보람을 생각하게 된다. 인쇄물의 무용함을 주장하는 시대에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소용없는 열기 속에서 마스크를 착용해도 걸러지지 않는 종이 먼지를 마시며 그들은 이 과정의 어디로부터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 것일까. 밤이 깊어 교대할 때, 그리하여 귀마개를 빼낼 때 그들이 듣게 될 소리가 온건해 웃음이 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아니,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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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이웃
우리 안의 이웃
사진 김옥선·글 윤고은(소설가)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구름은 일정한 속도로, 무빙워크를 타고 이동하듯 흘러간다. 그는 시야에서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바라보고 서 있다. 단지 시선을 옮기지 않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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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년 전 영화처럼
124년 전 영화처럼
사진 신희수·글 조기현(〈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
1895년 프랑스, 공장에서 바삐 퇴근하던 노동자들이 한 카메라에 찍힌다. 뤼미에르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영화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자 노동자들을 찍은 첫 번째 영화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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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신성
빼앗긴 신성
사진 김문호·글 이문재(시인)
아닙니다. 노동은 신성하지 않습니다. 노동이 신성하다면 노동자가 이토록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가 신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러운 말씀이지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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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일단 비싸야 한다
노동은 일단 비싸야 한다
사진 이한구·글 황정은(소설가)
내 동거인은 일주일에 엿새를 청계천으로 출근한다. 간단한 음향기기를 수리하면서 세운상가 일대의 사물 흐름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체로 온화한 사람이었으나 청계천으로 물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