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진 ‘레포’ 시장 이러다 큰일 난다
  • 이종태 기자
  • 호수 639
  • 승인 2019.12.2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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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끼리 조성하지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레포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레포 금리가 폭등하는 등 통화정책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고 있다. 자금 공급 외에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AP Photo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레포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아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자금 공급이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늘어나는 연말로 접어들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레포 시장’에 대규모 초단기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12월3일)에 따르면 그 규모가 955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 중 778억 달러의 만기는 하루다. 나머지 177억6000만 달러의 만기는 14일이다. 레포 시장에서 자금 수요가 공급을 크게 뛰어넘어 ‘레포 금리’의 폭등을 초래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연준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포 시장이란 무엇인가? 은행과 보험사, 펀드 등 금융기관은 하루의 실적을 결산하면서 다음 날 지급해야 할 돈의 규모를 추정한다. 운용 가능한 돈보다 줘야 할 돈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자사가 보유한 안전자산(국채처럼 안전한 증권)을 담보로 걸고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하루 만기로 돈을 빌린다. 이튿날, 원금과 약간의 이자(레포 금리)를 주고 안전자산을 돌려받는다. 즉, 안전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다음 날 원금과 이자를 주고 ‘안전자산을 다시 사는 계약(repurchase agreement)’이다. 이런 계약이 이뤄지는 시장을, ‘repurchase’의 약자인 ‘repo(레포)’를 따서 ‘레포 시장’이라고 부른다.

금융기관끼리 조성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레포 시장의 존재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체 금융시장에서 레포 시장은 마치 공기와도 같다. 보이지 않지만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만약 금융기관이 약속한 돈을 내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전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레포 시장이 적절한 금리를 유지하면서 잘 작동해야 전체 금융시장과 사회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신용도 높은 금융기관이 튼튼한 담보를 걸고 빌리는 것이므로 레포 금리는 매우 낮다.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수많은 금리들의 바닥을 형성한다. 레포 금리가 오르면 다른 금리도 오르고, 레포 금리가 내리면 다른 금리도 내린다. 레포 금리가 치솟아 이 시장이 붕괴되면(금융기관들이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지 못하게 되면), 전체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전조는 미국 레포 금리가 수백%로 치솟은 사건이었다. 당시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금융기관들이 자칫 돈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기관에 대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레포 시장의 자금 공급이 급감하면서 레포 금리가 치솟았다.

현재 연준이 레포 시장에 수백억 달러를 공급하게 된 이유는 지난 9월 끔찍한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9월 초까지만 해도 2%선이었던 레포 금리가 9월17일 10%까지 폭등해버렸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9월18일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2.00~2.25%였던 기준금리를 1.75~2.00%로 내릴 것으로 강력히 전망되던 상황이었다. 연준은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레포 금리는 기준금리보다 미세하게 높은 수준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뿐 아니라 레포 금리가 기준금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연준이 발표하는 기준금리는 일종의 목표치다. 금융산업에서 가장 안정적인 금융기관인 ‘예금기관(은행을 의미한다. 증권사나 보험사, 펀드 등은 금융기관이지만 예금을 받지는 못한다)’들 사이의 자금 거래에서 형성되는 ‘하루 금리’를 겨냥한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2.00~2.25%라면, 연준이 예금기관 간 자금 거래 시장에 개입해서 그 수준으로 ‘하루 금리’를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레포 금리가 치솟은 지난 9월 중순에는 은행 간 ‘하루 금리’가 기준금리의 상한선(2.00~2.25%라면 2.25%)을 뛰어넘었다. 연준 처지에서 보면 통화정책의 존재 이유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태였다.

레포 시장이 이렇게 불안해진 것은, 분기 말(9월)의 자금 수요 증가 때문이라고 지적되었다. 먼저 기업들이 분기별 세금을 내야 한다. 국채를 매입한 금융기관들이 그 대금을 미국 정부에 지급해야 하는 시기도 9월이었다. 이에 따라 민간의 자금 수요가 급증하며, 레포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어 레포 금리가 폭등했다는 결론이다.

ⓒXinhua지난 9월 레포 금리가 폭등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이 불안에 빠졌다.

단지 분기 말의 현금 부족 때문일까

일시적으로 금융기관들의 자금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서 레포 금리가 올랐다면, 중앙은행이 급하게 내놓을 수 있는 처방은 하나밖에 없다. 금융기관들에게 현금을 직접 꽂아넣는 것이다. 연준은 금융기관들로부터 안전자산을 담보로 받고 현금을 빌려줬다. ‘레포 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다. 9월 말의 일주일 동안 4차례에 걸쳐 2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자금이 미국 금융권에 투입되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초유의 사태다.

이렇게 급한 불을 끈 연준은 지난 10월11일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statement)에서 두 가지 방침을 밝힌다. 하나는 ‘레포 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내년 1월까지 시행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연준이 내년 2분기까지 매월 600억 달러 상당의 단기국채(만기 1년 이하)를 사들이겠다는 것이었다. 금융기관의 보유금을 늘려주기 위한 조치다.

이런 조치들 덕분에 12월4일 현재까지 미국의 레포 시장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12월3일)에 따르면, 12월2일의 레포 금리는 1.62%로 일주일 전인 11월25일(1.65%)보다 0.03%포인트 떨어졌다.

연말로 접어들면서 금융기관들이 조바심을 치고 있다. 자금 공급이 줄어드는 반면 수요는 증가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의 경우, 연말의 재무 상황을 기준으로 규제 당국의 건전성 평가를 받는다. 이 평가에서는 많이 빌려준 상태일수록 불리하다. 그래서 가급적 대출을 꺼리고 빌려준 돈도 회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시장에 돈이 마른다. 더욱이 12월은 법인세 납세 마감 기일이자, 기업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사들인 국채의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연준은 레포 시장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강력히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달래고 있다.

문제는, ‘레포 금리 폭등의 원인이 단지 분기 말의 현금 부족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다. 미국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는 분석들이 나온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민간은행의 보유금(은행으로선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일종의 완충장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으로 본다. 지난 2년간 미국 레포 시장을 분석한 〈파이낸셜타임스〉 기사(11월26일)는, 연준의 양적완화(민간은행이 보유한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방법으로 시중에 자금 공급) 종료를 레포 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연준이 더 이상 국채를 매입하지 않게 되자 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이 국채를 사들이면서 시중의 현금이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감세 및 인프라 투자로 필요해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은행 보유금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레포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단기 대책 이외에 미국 금융 시스템과 관련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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