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자유는 싫지만 홍콩의 자본은 너무 좋아
  • 이종태 기자
  • 호수 638
  • 승인 2019.12.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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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이 ‘거국적으로’ 중국에 반발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중국 경제는 홍콩이 너무나 필요하다. 미국이 이 같은 중국의 딜레마를 정통으로 타격했다.
ⓒAP Photo홍콩 상업지구인 센트럴에서 한 시민이 위안화와 달러화 등 각국 지폐 디자인으로 장식된 환전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했다. 전체 의석(479석) 가운데 81%(389석)를 획득했으니 압승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라다. 민심을 확인한 민주 세력은 ‘행정장관 직선’ 등 중국 정부가 완강히 거부해온 요구들을 더욱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의외의’ 결과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가 공산당 핵심층과 친숙한 중국학자들을 인터뷰한 기사(9월30일)에 따르면, 중국 최고 지도부는 홍콩 사태에 극히 낙관적이었다. 그동안 중국 측은 홍콩 재계의 거물(타이쿤)과 정치 엘리트들은 물론 노동운동, 범죄조직 등에까지 커넥션을 만들어왔다. 홍콩 사회를 거의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위대 이외의 ‘말 없는 다수’는 당연히 친중파일 터였다. 그래서 홍콩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인민해방군을 투입하기보다 시위의 세가 꺾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선물(새로운 홍콩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주는 방식으로 사태를 정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홍콩인들의 고통과 불만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소득 정체, 집값 인상 등 ‘경제’ 영역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최근 한 연설에서 “경제발전이 오늘날의 홍콩이 직면한 모든 종류의 문제를 푸는 유일한 골든 키”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중국 지도부는 홍콩을 어떻게 할 것인가. 홍콩과 중국 본토를 이어온 경제적 연계를 끊어 이 번영하는 도시국가를 퇴보시키거나 심지어 군대를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동안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그 필요성이 매우 줄어든 홍콩을 ‘거칠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한 1997년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의 18%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3%를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지금도 홍콩이 중국 경제에 필요 불가결한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단지 GDP의 크기만으로 홍콩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렇다. 홍콩은 런던, 뉴욕과 함께 글로벌 3대 금융센터 중 하나다.

금융센터란 한마디로, 돈을 쉽고 효율적으로 조달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 장소다. 예컨대 금융센터에 있는 증권거래소를 통해, 투자자는 주식을 매입하고(자금 운용), 기업은 자금을 조달한다. 금융센터에 글로벌이 붙으면(글로벌 금융센터), 전 세계의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가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한국의 금융센터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는 주로 국내 기업들이 상장하지만, 글로벌 금융센터의 증권거래소에서는 여러 나라의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판다. 중국 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한 주식을 한국, 미국, 프랑스 등지의 투자자들이 사들이는 식이다.

글로벌 금융센터가 되려면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 세율이 낮아야 한다. 금융 수익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수익률에 극도로 예민한 다른 나라의 전주(錢主)들이 굳이 해당 금융센터에서 출시되는 금융상품들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여러 성향의 투자자들을 유인하려면 위험도가 높고 낮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 규제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 투자자들이 그 나라에 자유롭게 투자하고 다시 수익을 빼내갈 수 있도록 외환의 유출입도 자유로워야 한다(금융 개방). 구린 돈을 금융센터의 자산운용사에 꽂아두고 싶은 외국인들을 위해 투자자의 신원을 비밀로 보장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EPA10월31일 제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홍콩이 갖춘 글로벌 금융센터의 자격

글로벌 금융센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법치주의다. 국가가 개인(시민)들을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적 목적으로 개인의 권리(신체의 자유와 재산권)를 침해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미리 제정해놓은 법률에 의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행정당국(국가)이 자의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침탈할 수 있는 나라에 자신의 돈을 맡기려는 투자자는 없다.

글로벌 금융센터의 요건을 모두 갖춘 나라는 흔치 않다. 국가경제 전체의 안정적 발전 차원에서 보면, 해외 투자자의 유치만을 위해 세율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추거나 금융시장을 활짝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홍콩은 사회주의 중국의 일부분인데도 금융센터의 대다수 요건을 충족시키는 예외적인 지역이다. 1997년 이전에는 식민지 본국(영국)의 영향으로 법치주의와 시장경제를 운용해왔으며, 반환 이후에도 ‘일국양제(一國兩制:중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본토는 사회주의, 홍콩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함)’ 원칙 덕분에 경제적·법률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제사회도 홍콩을 적어도 무역 측면에서는 중국과 분리된 국가로 간주해왔다. 홍콩은 중국과 별도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다. 다른 나라들과 무역·투자 협정을 체결하는 권한까지 보유한다. 재화·서비스를 수출할 때 납부하는 관세도 중국과 달리 적용받는다.

그렇다면 중국 측은 이런 홍콩의 특수 지위를 못마땅해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외국자본 덕분에 가능했다. ‘외자의존형 경제성장’의 대표적 모델이다. 외국자본이든 중국 정부든 외자를 중국 본토에 곧바로 투자하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다. 외국자본 처지에서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즉, 법률이 아니라 공산당 정부의 의지에 따라 재산권을 침해당할 수 있는) 중국에 직접적으로 투자하기를 꺼렸다. 중국 정부 역시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강력한 규제 장치들을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들은 일단 홍콩에 설립한 법인에 투자해 자금에 대한 재산권을 확보한 뒤 그 자회사를 중국 본토에 진출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중국은 홍콩 법인의 자회사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그 덕분에 중국 본토로 들어가는 해외직접투자(FDI) 중 대부분이 홍콩을 경유하게 되었다. 중국 기업이 금융센터 홍콩의 증시에 상장해서 막대한 외환을 조달하기도 했다. 중국 내의 증시는 외국인에게 주식을 팔기 어렵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즉, 홍콩은 중국이 글로벌 자금에 접근하기 위한 관문이었다.

ⓒEPA중국 인민해방군 병사가 11월17일 홍콩 이공대학 인근 부대 안에서 시위 대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거국적으로’ 중국에 반발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중국 경제엔 홍콩이 너무나 필요하다. 경제정보 업체 리피니티브(Refinitiv)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중국 기업들은 642억 달러를 기업공개(IPO:주식 매각으로 자금 마련)로 조달했다. 이 중 350억 달러가 홍콩 증시에서 조성되었다. 중국 본토 내의 경제특구인 상하이와 선전 증시에서 조달된 자금은 197억 달러에 그쳤다.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마련한 445억 달러(642억 달러-197억 달러) 가운데 78.7%(350억 달러÷445억 달러)가 홍콩에서 비롯된 셈이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도 2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위해 홍콩 증시에서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국유기업은 물론이고 텐센트, 샤오미 같은 거대 기술기업(테크 자이언트)들 역시 홍콩에 상장된 기업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시장가치는 모두 1조5400억 달러에 달한다. 본토 기업들이 굳이 홍콩에 상장하는 이유는 중국 증시의 상장 절차가 복잡한 데다 외국인들에겐 주식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옥죄는 미국의 ‘홍콩인권법’

기업은 주식 매각 이외에 채권 매각이나 은행대출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이 부문에서도 홍콩은 중국 기업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범아시아 경제정보 전문지 <차이나 브리핑>은 중국 기업들이 해외(본토를 제외한 지역)에서 채권 발행으로 빌린 자금 중 60% 정도가 홍콩에서 조달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 직접투자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외국인이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자금 가운데 60~65%가 홍콩을 경유한다. 역으로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하는 돈 역시 60% 정도가 홍콩을 통해서 나간다.

더욱이 홍콩은, 중국이 2000년대 말부터 글로벌 패권 장악이라는 야심하에 추진해온 장기 국가전략 ‘위안화 국제화’의 전초기지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화를 미국 달러만큼 세계인들이 무역결제, 금융투자 등의 용도로 갖고 싶어 하는 권위 있는 통화로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홍콩에 여러 수단으로 대규모의 위안화를 밀어넣었다. PIIE의 추산에 따르면, 2018년 현재 홍콩은 무려 6340억 위안(약 902억 달러)을 보유 중이다. 중국 측은 이 위안화를 투자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상품까지 정부 주도로 홍콩에서 발행했다. 통화는 많이 사용될수록 수요가 더 늘어나면서 권위를 갖게 된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 돈뿐 아니라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까지 제공하면서 위안화 수요를 늘리려 한 것이다.

중국 권력자들도 홍콩의 금융센터 지위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홍콩 증권감독원 자료를 근거로 중국과 홍콩의 부유층들이 홍콩의 비밀계정에 무려 3300억 달러 정도를 묻어둔 것으로 추산한다(8월21일). 이마저도 중국 지도부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되는 자금을 제외한 수치다.

이처럼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필요한 해외 자금 중 대부분을 조달하는 창구이자 중국 권력층의 사적 이익이 걸린 곳이며, 중국의 장기적 야망(글로벌 패권을 위한 위안화 국제화)의 도약대다. 중국 정부로서는 홍콩 시민들이 아무리 미워도 글로벌 금융센터의 지위까지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홍콩의 대안으로 상하이와 선전을 키워왔지만,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EPA지난 8월11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홍콩 시민들의 집회. 성조기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이 등장했다.

사실 홍콩이 글로벌 금융센터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의 먼 거리’였다. 홍콩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법률적으로 분리된 법치주의 국가로 통용되어왔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면, 이 도시의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더욱 거세진다 해도 중국이 강경하게 대응하면 곤란하다. 잠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해봤자, 홍콩이 독립적 사법체계와 법치주의를 상실했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내게 될 뿐이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로 접어든 이후 권위주의를 강화한 중국이 엄연한 자국 영토인 홍콩에 대해 시위대가 요구하는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온전히 수용하기도 힘들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딜레마를 정통으로 타격했다. 미국 상원이 11월19일 통과시킨 ‘홍콩인권법’. 미국은 1992년 제정한 ‘홍콩정책법’을 근거로, 홍콩을 중국 본토와 분리된 법률적·경제적 실체로 간주해왔다. 그 덕분에 홍콩은 미국으로부터 관세, 투자, 비자 등에서 본토와 별도의 대접을 받는 특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번에 통과된 홍콩인권법의 핵심 내용은 ‘홍콩이 정말 중국과 분리되어 있는지’ 따지겠다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가 매년 ‘중국 정부로부터 홍콩의 독립성’을 평가해서 의회에 보고하기로 되어 있다. 홍콩이 독립성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 그 특수 지위를 박탈한다. ‘홍콩은 사회주의 중국의 한 도시에 불과하다’고 세계 금융시장에 공식 통보하는 조치다.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 역시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외무부가 홍콩인권법을 ‘내정간섭’이라며 격렬히 성토한 이유다.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11월27일, 홍콩인권법에 서명했다. 서구 언론들은 이 법안을 ‘핵무기 같은 옵션(nuclear option)’이라고 부른다. 법안의 존재 자체가 공포다. 중국의 행동을 옥죄는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 측이 실제로 홍콩의 독립성 평가를 하향 조정하면, 아시아의 글로벌 금융센터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중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게 된다. 그 발사 버튼은 중국 손에 있다. 중국 측이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거나 심지어 인민해방군을 시위 진압에 투입한다면, 미국 정부는 ‘홍콩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홍콩 시민과 중국 간의 갈등이 홍콩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미 금융시장에선 홍콩을 대체할 후보 도시로 상하이, 선전, 싱가포르 등이 거론된다. 중국 본토의 상하이와 선전은 최근 눈부시게 발전 중이지만 홍콩의 대안으로 지목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주의 중국 내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싱가포르가 부상하고 있다. 홍콩 못지않은 비즈니스 친화적 환경에 투명한 사법체계, 정치적 안정성 등이 싱가포르의 매력이다. 싱가포르는 급속히 팽창 중인 서남아시아 경제권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싱가포르에 설치한 이유다. 홍콩은 물론 중국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 전개다.

홍콩 시민들은 도시의 법치주의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진핑 주석은 홍콩을 ‘중국의 한 도시’로 전락시키는 것이 전체 국익에도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홍콩은 멀수록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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