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 기원에 대해 다시 쓴 논문이 있다고?
  •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 호수 635
  • 승인 2019.11.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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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서열 1만7000여 개로 이루어진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에서 일어난 돌연변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정보이지만, 인류 기원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Evolving Picture 제공버네사 헤이스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1217개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를 10월28일자 〈네이처〉에 기고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10월28일자에는 현생인류가 남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연구가 발표되어 떠들썩했습니다. 논문의 공동 저자 12명을 이끄는 교신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가반 연구소의 버네사 헤이스 교수입니다. 헤이스 연구팀은 흔치 않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1217개를 수집해서 분석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를 통해 유전되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으로 추정된 인류의 조상은 모계 조상인 ‘이브’라는 별명이 붙기도 합니다. 분석한 결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하플로그룹(haplogroup) 가운데 가장 오래된 조상형이라고 볼 수 있는 엘0(L0) 중 한 형태가 남아프리카 잠베지강 남쪽 오카방고에서만 사는 코이산 집단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나타났습니다. 하플로그룹은 공동의 조상을 가지고 있는 일군의 돌연변이입니다. 같은 하플로그룹에 속하면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만, 여기서 조상은 사람이 아니라 돌연변이들의 조상이라는, 유전학에서 이론적인 개념입니다.

헤이스 연구팀은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어떠한 진화 시나리오로 현재에 이르렀는지 추정했습니다. 엘0형이 기원한 지역은 지금은 염전이지만 2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호수였습니다. 엘0형은 그곳에서 약 20만 년 전에 발생하고 이후 7만 년 동안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13만 년 전에서 11만 년 전에 북동쪽과 남서쪽 지역으로 확산하는 초지를 따라 고인류도 확산했습니다. 그 뒤 기원지에서는 건조기를 맞아 그대로 있었지만, 습윤과 건조 주기가 반복되는 남서쪽에서는 인구 확산이 일어나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논문은 발표되자마자 미디어의 주목을 크게 받았습니다. ‘인류의 기원을 처음부터 다시 쓰다’라는 부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수집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의 진화 역사에 대해 추정하는 연구 방법은 1987년 고인류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논문이 발표된 시점을 계기로 1990년대에 폭발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7년 역시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은 레베카 칸 교수(현재 하와이 대학 소속)가 이끈 연구팀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사피엔스가 기원했다는 결론을 내놓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논문을 기점으로 고인류 화석 외에 유전자가 고인류학의 주요 자료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이용한 고인류학 연구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서 발견되는 돌연변이로 시간을 유추하려면 돌연변이가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 바깥에 있으므로 유전자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인간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게다가 부모 중 한쪽으로만 유전되는 유전물질이 중요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Y 염색체에는 중요한 유전자가 그다지 없습니다). 지금은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신진대사에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삶에 중요하며,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 역시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립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립 진화설이 주류였습니다.

ⓒWikipedia포유류의 허파 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투과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O형이 가장 먼저 생긴 혈액형이라고 한들…

그 후 미토콘드리아의 진화 속도를 다시 계산하고 모델링을 이용해 염기서열 각각을 보지 않고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는 방법이 발달했습니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스케일의 핵 유전체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분석법이 발달하고 화석에서 직접 유전자를 추출하는 방법까지 눈부시게 발달함에 따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서 ‘깊은 시간(deep time)’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2000년대 들어 더는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연구 논문의 한계에 대해서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통한 인류 진화 연구의 원조 격인 레베카 칸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설사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기원한 시점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가 발생한 시점이 그 유전자를 가진 집단이나 종이 발생한 시점과 반드시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모든 집단이 그 돌연변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새로운 집단이나 새로운 종의 발생 시점은 아닙니다. 비슷한 예로, ABO식 혈액형을 이루는 A형, B형, O형 항체 유전자가 발생한 시점은 충분히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중 O형이 가장 처음 생긴 조상형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혈액형 O형을 보유한 사람들이 의미 있는 집단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다. 염기서열 1만7000여 개로 이루어진 미토콘드리아 유전체에서 일어난 돌연변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정보이지만, 염기서열 30억 개로 이루어진 핵 유전체에서 일어난 돌연변이에 비해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엘0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 사는 그 지점이 바로 20만 년 전에 엘0형이 발생했던 곳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문제의 지역은 현 보츠와나 북부에 있는 잠베지 분지의 남부 지역입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특정 지점에서 계속 살지 않았습니다. 정착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인종분리 정책 때문에 정부에 의해서 강제 이주해 살고 있기도 합니다. 코이산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집단이 사는 방식을 원시시대의 삶이라고 간주하고, 그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원시시대의 사람들로서 우리와 함께 21세기에 공존하고 있다고 은연중에 간주하는 오류 역시 엿보입니다.

미토콘드리아를 다룬 이번 연구는 부계로 유전되는 Y 염색체 하플로그룹 중 조상 형인 디0(D0)형이 서아프리카에서 5만 년에서 10만 년 전에 세계로 확산했다는 연구와 비교됩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모사피엔스 고인류 화석 턱뼈에 있는 이빨이 30만 년 전으로 연대 측정되었던 연구와도 비교됩니다. 현생인류는 서아프리카,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중 어디에서 기원했을까요? 여자는 남아프리카에서 기원하고 남자는 서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을까요?

ⓒAP Photo미토콘드리아 유전체 하플로그룹 가운데 조상형이라 할 수 있는 엘0형은 남아프리카 오카방고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났다. 아래는 오카방고 델타의 모습.

‘홈랜드’라는 용어에 담긴 무신경함

유전학자 25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2018년 발표한 논문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 있던 여러 집단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골자입니다. 이번 오카방고 이브에 대한 논문의 두 번째 저자로 이름을 올린 액설 티머먼 교수도 2018년도 논문에 11번째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결국 이번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쓴 논문’이라는 헤드라인은 뉴스 미디어가 논문의 내용을 살짝 호도하면서 시선을 끌었던 예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번 논문은 예기치 않았던 비판점을 제시했습니다. 논문 발표와 관련해 홈랜드(homeland)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논문에도 등장하고 뒤이어 뉴스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홈랜드는 조국·모국·어머니의 땅이라는 뜻으로, 나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 정책으로 20여 개의 자치지역을 만들어 홈랜드라 부르고 남아공의 흑인들을 그곳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남아공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그 대신 자치령의 시민권을 주었던, 억압과 차별의 역사와 관련된 용어입니다. 1990년대에 와서야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되면서 홈랜드도 없어졌으니 아직 남아공 사람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생생합니다. 그렇게 아픈 과거가 연상되는 용어를 남아프리카와 관련된 연구 논문에서 자유자재로 썼습니다. 이에 대해 몇몇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과학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말라며, 과민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저자 목록에는 남아공 출신 과학자들도 있으므로 홈랜드라는 표현은 검증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에는 중립적인 개념이 있기 힘듭니다. 일본은 내선일체 국민 동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에게는 강제징용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합방한 것이 아니라 강점이었습니다. 홈랜드 용어와 관련해 일어난 논란은 과학자의 사회적·역사적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실험실이나 연구실에서 나와 연구 결과를 해석하고 소통하는 중요한 과정에서 사회적 감수성과 역사적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20만 년 전 남아프리카 오카방고에 살던 고인류가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의 조상입니다. 30만 년 전 서아프리카에 살던 고인류도 우리의 조상입니다. 10만 년 전 북아프리카에 살던 고인류도 우리의 조상입니다. 기원이라는 용어는 피부에 와닿는 표현이지만 과학적으로 그대로 응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원은 하나가 아닙니다.

※ 이번 호로 ‘이상희의 모험-사라진 인류를 찾아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하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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