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 호수 629
  • 승인 2019.10.11 13: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인류의 아시아 기원설이 가설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210만 년 전부터 인류가 동북아시아에서 살아왔다는 자료가 발표되는 등 학계의 연구도 활발하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경기도 전곡선사박물관 전시장에 전시된 고인류 모형.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자의식과 역사학, 철학의 시작과 때를 같이합니다. 나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지듯,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입니다. 다윈은 1859년에 나온 역작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에서 일반적인 진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지만, 인류도 진화했다는 주장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1871년에야 나온 책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조심스럽게 펼쳤습니다.

칼 폰 린네는 17세기 생물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종명과 속명을 부여하고(호모 사피엔스), 다른 원숭이·유인원과 함께 영장류목에 인간을 넣었습니다. 이 역시 인간이 특별하지 않고 다른 생물종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었지만 적어도 어지러운 듯한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신의 위대한 질서를 내보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흙에서 빚어져 숨이 불어넣어져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생긴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다윈의 주장은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보편적인 이론으로 자리를 잡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주제는 ‘과연 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후 100년 가까이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인류의 기원지는 아시아였습니다. 지금처럼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기원했다는 생각이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입니다.

아시아를 ‘인류의 요람’으로 지목한 사람은 다윈의 동시대인 에른스트 헤켈(1834~1919)입니다. 인간은 영장류에 속하고, 영장류 중 꼬리가 달린 원숭이보다는 꼬리가 없는 유인원과 더 비슷합니다. 헤켈은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등 몸집이 큰 유인원 중에서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고릴라나 침팬지보다는 아시아에 서식하는 오랑우탄이 좀 더 인간같이 생겼다고 보고, 오랑우탄이 현재 사는 동남아시아를 인류의 기원지로 추정했습니다. 인류의 가상 기원지는 레무리아(Lemuria)라고 하고 그곳에서 기원한 인류 최초의 조상은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Pithecanthropus alalu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말 못하는 유인원 인간’이라는 뜻이죠. 레무리아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헤켈은 레무리아도,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도 순전히 가상적인 존재로 제시했습니다. 헤켈의 주장을 따라 인도양 중간쯤이라고 추정된 레무리아를 찾아서, 인류의 조상 화석을 찾으러 외젠 뒤부아(1858~1940)가 인도네시아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인정받지 못한 뒤부아의 ‘발견’

뒤부아는 첫 발굴에서 고인류 화석을 발견하는 기막힌 행운을 잡았습니다. 그중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발굴한 고인류 화석은 1891년에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라고 명명했습니다. 피테칸트로푸스라는 속명은 앞서 헤켈이 명명한 피테칸트로푸스 알랄루스에서 따왔고,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발로 서서 걷는 모양이었기 때문에 알랄루스 대신 에렉투스라고 종명을 붙였습니다.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는 이름은 ‘서서 걷는 유인원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뒤부아가 발굴한 이 화석에는 ‘자바인(Java Man)’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자바인 화석은 머리뼈(두개골)와 넙다리뼈(대퇴골)로 이루어졌습니다. 머리뼈는 작고 납작한 모양이었고 넙다리뼈는 인간의 넙다리뼈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현생 인류의 넙다리뼈와 별반 다르지 않게 생긴 자바의 넙다리뼈 화석은 그 이후로 과연 머리뼈와 비슷한 시기의 호모 에렉투스의 것인지, 혹은 후대 현생 인류의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외젠 뒤부아가 발견한 두개골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뒤부아는 상심하여 우울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동남아시아의 레무리아에 뒤이어 그다음 세대에서는 티베트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가 인류의 기원지로 떠올랐습니다. 학자들은 동북아시아에 주목했습니다. 그중 데이비드슨 블랙(1884~ 1934)이 1927년에 중국 베이징 근처의 동굴 저우커우뎬에서 발견된 화석에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Sinanthropus peki-nensi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우커우뎬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에는 ‘페킹인(Peking Man)’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저우커우뎬을 비롯해 여러 유적에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냉전시대의 세계 정치에서 가진 위치로 인해 중국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는 중국어로 중국 내에서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Xinhua중국 베이징의 저우커우뎬 유적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베이징원인 동상.

1941년까지 네안데르탈인을 제외하고 인류의 진화에 중요한 고인류 화석은 모두 아시아에서 발견되었으나 최초 인류로서는 지금의 영국 런던 근교에서 발견된 필트다운인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데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1954년에 필트다운인이 가짜로 밝혀지고 때마침 미국이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학계의 중심지는 미국으로 옮겨갔습니다. 미국의 막대한 자본과 인력은 마침 아프리카에서 발굴하던 도널드 요한슨을 비롯한 미국 학자들의 연구에 투입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시 아프리카에서 명성을 날리던 영국계 고인류학자 로열패밀리인 리키 가문과 경쟁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역시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발굴 중이었습니다. 그곳에 미국이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시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0세기 초반 인류의 진화 역사에 저우커우뎬을 비롯하여 주요 연구 성과를 내던 중국은 1960년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학문적인 발전이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순수 학문에 쏟아부을 자본이나 인력이 없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강대국 소련은 미국이 헤게모니를 잡은 세계 학계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소비에트 연방국을 중심으로 학술 활동을 했지만, 미국에 비해 심한 생활난은 학술적인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그렇게 아시아는 인류의 진화에 관한 한 세계무대에서 미미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발견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고인류 화석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중화주의는 인류 문명이 중국에서 기원했듯 인류 역시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지지했습니다. 이 가설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보다 일찍 살았던 초기 인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만 보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로 연결되기에는 시간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150만 년 전 정도에 멸종했고, 호모 에렉투스는 50만 년 전에 시작했던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100만 년의 공백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1970년대 이후 동아프리카에서도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동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는 150만~200만 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200만 년 전에 일찌감치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뒤, 50만 년 전에 큰 머리와 몸집, 우수한 사냥도구를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베이징인과 자바인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거대한 물줄기의 하나였다는 설명입니다. 이 가설은 화석의 연대와 지리적 분포 등을 고려할 때 기가 막히게 맞아 보였습니다.

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1994년도에 발표된 논문은 자바인의 연대가 18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탄생하던 시기와 거의 비슷할 때에 아시아에 이미 호모 에렉투스가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온 것이 아니라, 거꾸로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아프리카로 퍼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자바 호모 에렉투스의 새로운 연대는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은 받았지만,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에서도 100만 년 이상 오래된 고인류 화석 연대가 발표되었지만, 두루두루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나 자국의 자료를 오래된 것으로 올려보려는 국가주의적인 편견에서 파생된 주장이라는 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 기원설은 조지아의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이 180만 년 전이라는 연대가 1995년에 발표되어 힘을 얻었습니다. 비슷하게 충격적인 주장이 나왔는데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자료의 연대는 인정받지 못하고 조지아의 연대는 인정받은 현상 뒤에는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연구 결과에 대한 각별한 편견에 따른 의심이 놓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아시아에서 인류가 오래전부터 살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계속 나옵니다. 공왕링 호모 에렉투스 화석은 1964년에 발견되어 115만 년 전으로 주장되었지만, 학계에서 인정받은 연대는 2014년에 발표된 162만 년 전입니다. 공왕링은 아열대 지역인 남중국에 속한 화석입니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살던 고인류 집단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추운 지역인 북중국에서 200만 년 전에 가까운 시기에 고인류가 살았다는 흔적은 또 다른 이유로 놀랍습니다. 2018년에는 무려 21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계속 동북아시아에서 살아왔다는 자료가 발표되었습니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로빈 데넬 교수는 아시아 기원론의 대표적인 유럽인 학자입니다. 아시아 기원론은 21세기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시아 기원설, 가능한 시나리오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나기 전에, 어떤 인류 조상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조지아의 드마니시를 거쳐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까지 확산했습니다. 그렇게 오래전에 아시아에 살던 집단 중 살아남아 호모 에렉투스가 기원했습니다. 이들은 이제 다시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 역시 그 후손입니다. 이전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아시아 기원론이 이제는 자료를 기다리는 가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 아시아에서 고인류 화석 자료가 없는 이유는 고인류가 아시아에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료가 없을 뿐이었습니다. 고인류가 없었기 때문에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인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