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인류 기원에 대해 다시 쓴 논문이 있다고?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국제 학술지 〈네이처〉 10월28일자에는 현생인류가 남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연구가 발표되어 떠들썩했습니다. 논문의 공동 저자 12명을 이끄는 교신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가반 연구소의 버네사 헤이스 교수입니다. 헤이스 연구팀은 흔치 않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1217개를 수집해서 분석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를 통해 유전되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분석으로 추정된 인류의 조상은 모계 조상인 ‘이브’라는 별명이 붙기도 합니다. 분석한 결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하플로그룹(haplogroup) 가운데 가장 오래된 조상형이라고 볼 수 남성은 사냥하고 여성은 아이 키웠다고?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인류의 진화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을 떠올립니다. 네 발로 걷다가 차츰 몸을 일으키면서 키도 커지고 머리도 커진 현생 인류의 모습으로 변하는 그림 말입니다. 이 그림은 다양한 이유에서 틀렸습니다. 인류의 진화는 그림처럼 계단식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현생 인류는 그림에 나오듯이 항상 흰 피부는 아닙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인류가 곧 남성은 아닙니다.남녀의 성비가 1:1이라면 서로 비슷한 수가 등장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그려진 그림에 여성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습니다. 저는 〈인류 과연 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인류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자의식과 역사학, 철학의 시작과 때를 같이합니다. 나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지듯,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입니다. 다윈은 1859년에 나온 역작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에서 일반적인 진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지만, 인류도 진화했다는 주장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1871년에야 나온 책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 남자만 사냥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인류는 고기 먹기를 좋아하고 많은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서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사실 고기를 먹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특별합니다. 놀랍지만 채식 동물도 고기를 좋아합니다. 고기를 싫어하는 동물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채식 동물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고기를 소화해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고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적은 양으로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고급 영양원입니다. 같은 양의 채소와 비교해서 고기를 먹을 유전자 진화 덕에 뭐든지 다 먹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여름철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로 입맛을 잃기 쉽습니다. 허해진 몸에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어떨까요? 냉면으로 마무리를 한 다음 후식은 아이스크림이 좋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이 메뉴 속에는 인류의 진화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영장류는 나무 위에서 기원했으며 나무 위의 생활에 적응한 동물입니다. 나뭇잎·과일·꽃 등 주로 식물성 먹거리에 의존합니다. 가끔 동물성 먹거리도 구하지만 곤충 정도입니다. 그에 비해 인류는 놀라우리만치 육식에 의존합니다. 인류가 먹는 고기는 조그 고기 좀 뜯게 된 게 이 근육 덕이었어?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은 무엇일까요? 바로 엉덩이에 붙어 있는 볼기근(Gluteus)입니다. 볼기근은 큰볼기근, 중간볼기근, 작은볼기근으로 나뉘며, 큰볼기근은 인간에게만 큽니다. 다른 동물들의 볼기근은 그다지 큰 근육이 아닙니다.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큰볼기근(Gluteus Maximus)이 커지게 된 배경은 아직 수수께끼입니다(여기서 잠깐 보충 설명이 필요합니다. 성인, 특히 성인 여성의 도톰한 엉덩이는 볼기근보다는 엉덩이 부위에 쌓인 피하지방층 때문입니다. 피하지방층에 가려져서 볼기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디빌딩 대 고인류 화석 ‘루시’는 정말 여자였을까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고인류 화석 중에서 가장 유명한 ‘루시’는 여자(암컷)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시는 과연 여자였을까요?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대표적 화석입니다. 인류 계통과 침팬지 계통이 500여만 년 전에 갈라진 후 인류 계통에서 등장한 초기 고인류 화석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90여만 년 전에 등장하여 290여만 년 전까지 약 100만 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살아낸 화석종입니다. 그중 동아프리카,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죽은 뒤 330만 년이 지나 1974년에 발견된 고인류 화석에게는 ‘AL 288-1’이라는 일련번호가 매겨졌 인류 역사에 식인종은 없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 사람의 몸을 먹는 행위는 끔찍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동종포식(같은 종을 먹는 일)은 포유류에서 흔하지 않습니다. 포유류 바깥의 세계에서는 종종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어미 몸을 먹고 태어나는 새끼 뱀이나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거미 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일상의 먹거리를 동종에서 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거나, 다음 세대를 만들 수 있도록 자기 몸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자신의 유전자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포유류에서 보이는 동종포 고인류학 역사 바꾼 콩알만 한 뼛조각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2010년 4월 학술지 〈네이처〉에는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여자아이의 새끼손가락 화석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체(genome)에 대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맨눈으로 봐서는 인간의 뼈인지 다른 동물 뼈인지 확인조차 어려운 뼛조각에서 DNA를 추출해 보고한 논문에 대해 고인류학계는 반응을 유보했습니다. 데니소바인의 화석은 작은 새끼손가락 뼈의 콩알만 한 뼛조각이었습니다. 고인류학은 전통적으로 고인류 화석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화석 중에서도 머리뼈가 있어야 제대로 대접받습니다. 이 논문에 대한 심드렁한 반응은 놀랍 그들은 가난했다 그래서 해부됐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저는 사람 뼈가 필요했습니다. 논문 주제는 고인류였지만 화석을 분석한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고인류와 가까운 종인 현생인류·침팬지·고릴라의 뼈를 분석하고 비교해야 했습니다. 남아 있는 부위보다 사라진 부위가 더 많은 화석 자료와 달리, 비교 자료로 쓰이는 골격은 빠진 부위가 없는 개체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제가 있던 미시간 주에서 멀지 않은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클리블랜드 자연사박물관에 적합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박물관에는 고릴라·침팬지 골격과 더불어 인골 수천 구가 소장되어 있었고, 개체마다 사망 당시 나이 7만4000년 전 동굴벽화가 준 충격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에는 예술이 빠질 수 없지요. 인간은 언제부터 예술 활동을 했을까요? 학계에서 오래도록 두루 동의한 예술의 기원은 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입니다.유럽의 후기 구석기 문화가 왜 특별한지 알려면 그 이전까지의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류가 석기를 만들어 쓴 자료가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대략 200만 년 전부터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도구를 만들어 썼을 가능성이 높고, 돌이 아닌 재료를 도구로 썼을 가능성도 높습니다만 자연이 아니라 인류의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는 도구는 돌에서 시작합니다. 석기가 처음 나 발자국이 크면 무조건 남자라고?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한 쌍의 여자와 남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왼쪽 어깨 뒤를 돌아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합니다. 남자는 오른쪽 어깨 뒤쪽에 있는 화산을 봅니다. 화산이 폭발한 다음인가 봅니다. 화산재가 소복하게 쌓인 곳을 두 발로 걸어갑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모습입니다. 둘 다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걷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은 20세기 고인류학에서 이룬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다윈이 진화론을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리한 이후부터 인류의 기원은 고인류학자뿐 아니 우리 안의 보노보 침팬지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8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인간의 여명(Dawn of Man)’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약 10분 동안 계속되는 이 장면에서는 시커먼 털로 뒤덮인 유인원이 인류의 조상으로 등장합니다. 침팬지처럼 생긴 이들은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맹수에게 잡아먹히기도 하고 집단끼리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그러던 어느 날 동물 뼈를 발견합니다. 슈트라우스의 연주곡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이제는 작별해야 할 ‘러브조이 가설’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인류는 어떻게, 왜 생겨났을까요? 다윈이 진화론을 집대성하고 인류도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조상이 있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다윈은 인류의 시작점을, 다른 유인원 계통과 비교해 도드라지는 인류의 독특함에서 찾았습니다. 인류의 독특함을 인류가 기원한 이유로 본 거죠. 다윈은 인류의 독특함을 큰 머리, 두 발 걷기, 도구 쓰기, 작은 치아로 보았습니다. 이 네 가지 특징은 서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패키지를 이루었습니다. 두 발로 걸으니까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운 두 손을 이용해서 도구를 만들고 쓰게 되었고, 도구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