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 화석 ‘루시’는 정말 여자였을까
  •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 호수 609
  • 승인 2019.05.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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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류 화석 중에서 가장 유명한 ‘루시’는 여자(암컷)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시는 과연 여자였을까요? 루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대표적 화석입니다. 인류 계통과 침팬지 계통이 500여만 년 전에 갈라진 후 인류 계통에서 등장한 초기 고인류 화석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90여만 년 전에 등장하여 290여만 년 전까지 약 100만 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살아낸 화석종입니다. 그중 동아프리카, 지금의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죽은 뒤 330만 년이 지나 1974년에 발견된 고인류 화석에게는 ‘AL 288-1’이라는 일련번호가 매겨졌습니다. 갓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된 도널드 조핸슨이 발견한 AL 288-1에게는 발견되자마자 루시라는 여자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뼈만 보고 남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별을 가르는 특징은 난소와 정소와 같은 1차 성징이든, 젖줄이 커진 가슴과 발달한 고환 같은 2차 성징이든 모두 말랑말랑한 연조직입니다. 연조직은 화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화석으로 남아 있는 뼈와 이빨(치아)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 뼈에서도 암수 구별은 쉽지 않습니다. 포유류는 대개 수컷의 몸집이 크며, 특히 수컷의 고유한 특징을 기준으로 합니다. 예를 들면 큰 뿔이나 큰 어금니입니다.

ⓒ전곡선사박물관 제공경기도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고인류와 동물 모형.
인간에게는 뿔도 없으며, 치아에 성별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평균적으로 남자의 몸집이 여자의 몸집보다 조금 더 크고,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경향으로 성별을 추정합니다. 성별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뼈는 머리뼈와 골반뼈입니다. 남자의 머리뼈는 같은 집단 여자의 머리뼈와 비교하면 눈썹 뼈가 더 튀어나오고, 귀 뒤의 꼭지돌기가 더 튀어나오고, 바깥 뒤통수뼈 융기가 더 튀어나오고, 턱뼈 각과 턱 끝이 더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여자의 골격은 전반적으로 매끈한 느낌을 줍니다. 남자 골격의 특징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생겼습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활발하지 않거나,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아서 활발하지 않은 경우 뼈에 나타나는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고, 집단에 따라 평균적인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생김새는 눈썹 뼈가 튀어나오거나 튀어나오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닙니다. 아주 많이 튀어나오거나 많이 튀어나오거나 조금 튀어나오거나 살짝 튀어나오거나 거의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뼈만 가지고는 성별을 확언할 수 없습니다.

비틀스 노래 듣다가 별명 붙여

인간에게는 특이하게도 골반뼈가 정확한 성별 감정에 쓰입니다. 여자의 골반뼈는 남자의 골반뼈에 비해서 분명하게 다릅니다. 두덩뼈(pubis)의 각도가 둔각이며, 두덩뼈의 안쪽 각도는 부드럽습니다. 엉덩뼈(ilium)와 궁둥뼈(ischium)가 연결되는 곳인 궁둥 파임(sciatic notch)의 각도가 넓습니다. 출산을 많이 겪은 경우 두덩뼈의 안쪽에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골반뼈가 남아 있을 경우, 꽤 정확한 성별 추정이 가능합니다.

루시라고 별명이 붙여진 고인류 화석 AL 288-1은 과학적인 검토를 거쳐서 여자로 판명된 것이 아닙니다. 도널드 조핸슨은 현장에서 화석 조각들을 수습해 가져온 다음 화석을 손질하고 기록하는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내에는 비틀스의 유명한 노래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떠있는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작업하던 조핸슨은 AL 288-1에게 루시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고인류학에서 유명한 탄생 설화입니다.

ⓒDPA도널드 조핸슨이 독일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의 ‘루시’ 복제품 옆에 서 있다.
도널드 조핸슨이 화석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중에 노래를 들으면서 루시라는 별명을 붙였다면 이미 AL 288-1이 여자였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조핸슨은 왜 여자로 확신하고 루시라는 별명을 붙였을까요? 조핸슨은 이후 자그마한 크기와 골반뼈의 생김새를 근거로 AL 288-1을 여자로 판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는 몸집이 큰 개체와 몸집이 작은 개체들이 있습니다. 고인류학자들은 이 두 종류가 서로 다른 화석종인지, 같은 종의 다른 성별인지 논쟁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몸집이 작은 개체만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이며 몸집이 큰 개체는 다른 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아닌 호모속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몸집이 큰 개체가 남자이고 몸집이 작은 개체는 여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조핸슨이 AL 288-1을 발견할 당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하는 큰 몸집의 화석은 아직 발견되기 전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조핸슨은 AL 288-1의 몸집이 작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AL 288-1의 골반뼈 역시 조각만 남아 있습니다. 조각만 남아 있는 골반뼈를 가지고 AL 288-1이 여자라고 판정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골반뼈에 여자의 표식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에 비하면)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큽니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큰 머리를 가진 태아를 내보내기 위해 여자의 골반은 넓게 벌어지도록, 최대한 폭넓은 산도(태아가 통과하는 통로)를 가질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서 보이지 않는 성별 차이가 골반에 뚜렷이 나타납니다. 물론, 골반의 폭은 최대한 넓어졌지만 무한히 넓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두 발 걷기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발 걷기를 유지하는 한도에서 골반이 최대로 넓어졌지만 그래도 태아의 머리 크기보다 좁습니다. 인간의 출산은 아직도 가장 위험하고 두려우며 죽음을 각오하는 과정입니다.

초기 인류가 큰 머리의 태아를 출산해야 했다면 여자 골반에는 흔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초기 인류는 두 발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초기 인류의 머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머리 크기는 침팬지 어른 머리 크기와 엇비슷한 400㏄가량입니다. 현대인의 두뇌 용량이 약 1450㏄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작습니다. 초기 인류의 머리가 작다면, 큰 머리 때문에 생긴 성별 차이가 골반뼈에 나타날 것이라고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AL 288-1이 여자라는 주장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루시라는 별명은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고인류학계에서는 AL 288-1의 성별보다 훨씬 더 큰 논쟁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두 발 걷기에 대한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케이스웨스턴 대학 교수로 갓 부임한 조핸슨은 같은 대학에 있던 오언 러브조이와 함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두 발 걷기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머리 크기, 몸집 크기, 이빨 모양 등에서 볼 때 다른 유인원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이렇듯 유인원과 별반 차이가 없는 초기 인류가 걸음걸이만은 인간다웠다는 주장은 실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인간답게 걷는 방식이란 다른 방법으로 움직일 수 없고 오로지 두 발 걷기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은 두 발로 걷는 경우 두 발로 걸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늘을 날거나, 긴 거리를 헤엄치거나, 특별히 빨리 달리거나, 나무를 탈 수 있습니다. 인간은 두 발로 걷기밖에 못합니다. 그런데 초기 인류 역시 같은 방식으로 두 발 걷기를 했다는 주장은 고인류학계에 큰 논란을 가져왔습니다.

반론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

러브조이는 초기 인류가 두 발로 걸었다는 주장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기 인류가 자유로워진 두 손을 이용해 먹을 것을 운반해서 다른 인류와 나누어 먹었으며, 이 같은 ‘나누어 먹기’는 남자가 밖에서 먹거리를 구해와서 둥지에 남아 기다리고 있는 여자와 아이들을 부양하는 형태라고 해석했습니다. 인류의 기원은 남자가 여자와 아이들을 부양하는 핵가족에서 비롯된다는 ‘러브조이 가설’이 탄생한 것입니다.

고인류학계가 두 발 걷기 및 러브조이 가설에 관해 뜨거운 논쟁을 거듭하면서 결국 학계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두 발 걷기를 했다고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AL 288-1이 여자라는 추정 역시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루시라는 별명은 굳어졌습니다. AL 288-1이 여자로 간주되면서 초기 인류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만약 AL 288-1이 작은 몸집으로 인해 여자로 추정된다면, 큰 몸집의 개체들은 남자로 추정됩니다. 큰 몸집이 남자이고 작은 몸집이 여자라면, 큰 성차(암수 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차는 수컷끼리 하는 경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수컷들의 경쟁이 심하면 심할수록 수컷의 몸집이 암컷에 비해 매우 커집니다. 수컷의 경쟁이 심한 경우는 일대다 짝짓기(소수의 수컷이 다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경우)와 연결됩니다. 성차가 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수컷끼리 경쟁이 심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AL 288-1의 성별 추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자들은 AL 288-1이 작은 몸집의 여자가 아니라, 몸집이 작은 또 다른 종의 개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아파렌시스가 인간처럼 두 발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무 타기를 병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조핸슨과 러브조이가 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치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습니다. 조핸슨과 러브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으로 급격하게 부상하면서 주류가 된 미국의 고인류학계가 지지하는 떠오르는 별과 같은 젊은 남성 학자였습니다. 이들의 가설에 비판을 제기한 학자들은 여성이거나 유럽 출신이었습니다. 학자들의 성별과 국적은 학문의 토론장에서 공개적인 요인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공개적인 요인은 됩니다. 이들의 의견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이들이 미국 남성 주류의 학계에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지난해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인류학자의 이름은 로리 헤이거였습니다. 그의 이름이 어딘가 귀에 익었던 이유는 루시가 여자라는 주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사람이라고 수업 시간에 배웠기 때문입니다. 놀랍고 반가운 나머지 저는 겨우 인사말만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루시의 성별에 관한 논쟁 이후 고인류학계를 떠나 고고학자로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뒤늦게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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