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 1등도 떨어지다
  • 나경희 기자
  • 호수 631
  • 승인 2019.10.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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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메트로는 최종 면접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응시자를 비롯해 여성 6명의 점수를 ‘과락으로 조정’해 불합격시켰다. 최근 2년 동안 적발된 채용 성차별 사건은 13건에 이른다.
ⓒ시사IN 조남진2016년 서울메트로는 여성 지원자를 확실하게 불합격시키기 위해 면접 점수를 과락 미만으로 조정했다. 위는 서울교통공사(옛 서울메트로) 창동 차량기지.

‘여학생’은 특징이었지만 ‘수석 졸업을 한 여학생’은 특징이 아니었다. <시사IN>은 2016년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공개 채용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진 최고은씨(가명)를 찾기 위해 전국의 철도 관련 학과를 수소문했다. 철도기관사를 양성하고 있는 대학들은 “여학생 대다수가 수석 졸업을 하기 때문에 누구인지 특정하기 힘들다”라고 답했다.

어렵게 한 대학에서 최씨를 기억하는 교수와 연락이 닿았다. 이 대학에서 철도공학부 학과장을 맡고 있는 교수는 “최씨가 당시 탈락하고 난 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직군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 교수는 업무 자체가 특수 직종인 데다 여성은 드물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고은씨는 1등이었다. 2016년 7월28~29일에 걸쳐 진행된 서울메트로 무기계약직 면접에서 최씨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당시 면접위원장이었던 ㄱ씨는 최씨에게 92점을 주었다. 다른 면접위원 3명이 각각 최씨에게 주었던 점수보다 높은 점수였다. 면접이 끝난 뒤 ㄱ씨는 최씨의 점수를 92점에서 48점으로 깎았다. 신입 사원을 뽑는 해당 분야 팀장한테 “여성이 하기 힘든 일이고, 현장 여건도 여성을 채용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라는 말을 들은 게 이유였다. ㄱ씨는 자신의 점수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면접위원들에게 팀장한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면접위원장의 ‘권고’를 들은 면접위원들도 최씨의 점수를 48점으로 고쳤다. 최씨의 평균 점수는 87점에서 48점으로 낮아졌고, 순위는 1등에서 64등으로 밀렸다. 최씨의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서 빠졌다. 원래 합격권 안에 들었던 다른 여성 지원자 3명의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서 찾을 수 없었다. 면접을 본 68명 중 61명이 합격했는데, 모두 남성이었다. 불합격한 7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최고은씨를 비롯한 여성 지원자가 성별을 이유로 서울메트로 채용에서 탈락한 일은 뜻밖의 계기로 밝혀졌다. 2018년 국정감사 당시 제기됐던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을 조사하던 감사원이 최근 5년간 무기계약직 신규 채용 과정을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감사원은 지난 9월30일 ‘비정규직의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 실태(서울교통공사 등 5개 기관)’라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보고서에는 공공기관에서 고용 세습뿐만 아니라 채용 성차별까지 일어났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당시 최고은씨의 점수를 수정했던 면접위원 중 한 명은 “점수를 애매하게 조정하면 여성 응시자가 합격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탈락시키기 위해 과락 미만으로 점수를 조정했다”라고 감사관에게 진술했다. 채용 인원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응시자가 받은 점수가 50점 미만이면 불합격 처리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면접 방침에 따라 면접위원들은 과락 사유를 적어내야 했다. 최씨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줬던 면접위원장은 ‘(최씨가) 조직과 업무에 적응이 어려워 보임’이라고 적었다. 다른 면접위원들은 ‘향후 맡을 업무에 대한 조직 적응력 부족’ ‘직무 적합성 부족, 직무 환경에 대한 적응 의문’ ‘교대근무 및 팀 단위 업무에 어려움이 예상됨’이라고 적었다. 철도기관사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관련 업무 경력도 있는 최씨는 ‘업무에 적응하지 못할 사람’으로 기록에 남았다. 같은 날 면접이 이뤄진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여성 지원자 2명이 탈락했다. 그들의 과락 사유는 ‘협동력 부족’ ‘배려심 부족’ 등이었다.

ⓒ연합뉴스지난해 6월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회원들이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 규준’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공기업이 남녀고용평등법 마구 위반

최고은씨는 ‘모터카 및 철도장비 운전’ 분야에 지원했다. 모터카는 차고지에 들어온 열차를 점검하고 수리할 때 쓰는 차량이다. 주로 지하철 운행이 끝난 새벽 시간 차량기지에서 일하다 보니 남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면접위원이 장기간 재직하며 쌓은 경험과 업무적 특성을 고려해 차이를 둔 것으로 면접위원의 재량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차별적 환경을 개선하고 평등한 사업장 조성에 앞장서야 할 공사가 성별을 사유로 채용의 기회를 박탈한 면접위원의 위법행위를 옹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당시 면접위원들을 문책할 것을 서울교통공사에 요구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서울교통공사는 감사보고서가 발표된 뒤에야 뒤늦게 당시 면접에서 탈락했던 여성 지원자들을 찾아 뒤늦은 입사를 제안했다. 이중 4명이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4명은 각자 지원했던 분야에 배치되며, 당시 입사했던 직원과 같은 호봉을 받게 된다. 10월11일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피해자 6명을 직접 만나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재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7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지방공기업 인사운영기준’에 따라 ‘응시자의 공평한 기회 보장을 위해서 성별, 신체조건, 용모, 학력, 연령 등에 대한 불합리한 제한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공동행동)’이 10월8일 발표한 공동성명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적발된 채용 성차별 사건은 13건에 달한다. 그중 이번 서울교통공사 건을 포함한 4건은 공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해에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금융권에서 일어난 채용 성차별 사건이 밝혀지기도 했다. 2018년 6월 검찰은 금융감독원 특별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을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KB국민은행은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춘 혐의를 받았다. KEB하나은행도 2013년 하반기에 서류 합격자 비율을 남녀 4대 1로 정해놓고 여성 지원자 619명을 떨어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신한은행도 남녀 합격자 비율을 인위적으로 3대 1로 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은 오는 10월17일 당시 해당 기업에 지원했던 여성 응시자들이 모여 차별 경험담을 나누는 자리를 계획하고 있지만, 당사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동행동 관계자는 “자신이 여성이라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걸 아직 모르는 지원자도 많을 것이다. 설사 이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하루빨리 직장을 잡는 게 급한 취업 준비생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여유가 없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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