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돈을 댔다, 청년들 채용하라고
  • 전혜원 기자
  • 호수 619
  • 승인 2019.07.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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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하철노조가 7월11일 이틀 만에 파업을 철회했다. 노사는 노동시간을 줄여 54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매년 정년퇴직하는 만큼 채용해왔던 100~200명과 별도로 정원을 540명 늘린다. 그런데 부산지하철을 운영하는 부산교통공사는 해마다 2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무슨 돈으로 사람을 더 뽑겠다는 걸까?

다름 아닌 노동자들의 임금이다. 부산지하철노조가 회사 측으로부터 받게 될 ‘체불임금’을 청년 고용으로 돌리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동안 부산교통공사는 총임금 가운데 통상임금을 낮게 조정해서 연장근로수당 등을 적게 지급하는 편법을 써왔다.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실제로 받는 돈에는 통상임금(임금 중 노동자에게 정기·일률·고정적으로 지급되는 부분)과 이에 포함되지 않는 각종 수당이 섞여 있다. 즉, 같은 100만원을 받더라도 ‘통상임금 70만원+다른 수당 30만원’이거나 ‘통상임금 90만원+다른 수당 10만원’인 경우가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상임금을 낮게 책정한 사측은 노동자들이 지급받아야 할 연장근로수당 중 일부를 ‘체불’한 셈이 된다. 노동조합은 이와 관련된 소송의 1심에서 2015년 이미 승소한 바 있다. 부산지방법원은 부산교통공사의 상여금과 가계보조비 등 4개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제공7월10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부산지하철노조 파업 출정식’에서 조합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노조는 이미 제기한 소송은 진행하되,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노조 차원에서 추가 소송을 걸지 않기로 했다. 추가 소송에서 노조가 궁극적으로 승리하면 사측으로부터 1000억원(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2017~2019년을 합산하는 경우) 규모의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이 돈을 신규 채용에 써달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또한 통상임금 상승으로 연장근로수당 등이 늘어나겠지만 다른 수당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임금 총액은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통상임금 상승에 따라 10%가량 늘어날 수 있던 임금을 ‘포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바뀌면서 내년부터 늘어날 예정이던 휴일수당 연 70억원도 신규 채용 몫으로 돌렸다. 탄력근로제(특정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 이내라면, 특정한 주에는 52시간을 초과해 노동시킬 수 있는 제도) 도입에도 임금 보전을 전제로 합의했다. 다만 임금 동결을 요구하던 사측에 맞서 행정안전부 임금 인상률 가이드라인인 1.8% 인상을 요구해서 결과적으로 0.9% 인상을 확보했다.

“당장은 돈 받으면 좋겠지만···”


노조가 신규 채용에 써달라고 한, ‘추가 소송으로 받을 수 있었던 돈’은 1인당 1000만원 정도다. 적은 금액이 아닌데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을까? 부산지하철노조는 이미 2016년 6월 ‘통상임금 재원 미래분을 신규 채용으로 돌려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안을 투표에 부쳤다. 조합원 93.3%가 동의했다. 최무덕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위원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자리가 없어서 청년들이 부산을 떠난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교통공사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다 보니 해마다 논란에 휩싸였다. 체불임금까지 받으면 지역 시민들이 정서적으로 불편해할 수 있고, 노조가 고립될 수 있다고 봤다.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향후 받게 될 체불임금으로 근무형태를 개선해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자.’ 이게 2016년부터 우리 구호였다.”
ⓒ연합뉴스2017년 6월20일 금속노조는 일자리 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현대·기아차그룹에 제안했다.

부산의 청년 이탈은 심각한 수준이다. 1984~1988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3년 5~9세가 된 이들을 100으로 볼 때, 25년이 지난 2018년 부산에 남은 이는 75.6에 불과하다. 6개 광역시 중 가장 큰 폭의 감소다(한국고용정보원, <비수도권 청년인구의 유출과 집중>, 2019). 그동안 청년 고용이라는 명분은 공공·민간을 불문하고 사측의 전유물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때 청년 고용 확대를 강조하곤 했다. 반면 노동조합은 청년 세대의 신규 일자리 진입을 어렵게 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지하철노조는 통상임금 관련 체불임금을 돌파구로 청년 고용이라는 명분을 선점한 것이다. 최무덕 위원장은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내놓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안 받았던 돈은 포기하기가 좀 낫다. 그래서 접근이 비교적 쉬웠다”라고 말했다.

부산지하철노조가 이런 제안을 한 유일한 노조는 아니다. 2017년 현대·기아차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는 통상임금 소송을 대법원까지 가져가는 대신, 사측이 미지급한 수당으로 ‘일자리연대기금’을 조성하자고 회사 측(현대기아차그룹)에 제안했다. 그러나 사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노조도 동력을 상실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2013년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등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 인정(그만큼 연장근로수당 등이 높아졌다는 의미)하면서, 다수의 노조들이 체불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소송에 이기면 받게 될 체불임금’을 신규 채용에 쓰기로 하는 합의는 두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왔다. 첫 번째는 노조원들의 동의다. 어쨌든 받을 수 있는 돈을 안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역시 사측에 관련 제안을 던졌지만 후속 조치에 적극적 성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원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임금의 일부를 내놓는 투쟁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연합뉴스2018년 4월18일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무금융 노사 사회연대기금’ 선포식이 열렸다.

두 번째는 사측의 동의다. 사측으로서는 1·2심에서 패소한다고 해도 대법원까지 가보지도 않고 그 돈으로 심지어 고용을 늘리는 데 합의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현대차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기아차의 경우는 1·2심 모두 회사가 패소했다. 1인 평균 1900만원인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기로 노조와 최근 합의했다. 통상임금을 신규 채용에 쓰기로 노사가 잠정적으로나마 합의한 것은 부산지하철노조가 처음이다.

부산지하철노조에서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단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현안이 있었다. 최무덕 위원장은 “서울교통공사는 4조 2교대인 반면 부산교통공사는 3조 2교대다. 근무시간이 길고 야간노동이 많다. 그래서 임금이 높은 편이지만, 집중도가 떨어져 지하철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을 좀 뽑아야 우리도 휴가를 쓰고 권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공감대가 퍼졌다”라고 말했다. 물론 내부 반발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다. 부산지하철노조 자유게시판에도 ‘집행부를 배임으로 고발할 수 있느냐’ 같은 글이 올라온다. 지난해 통상임금 재원으로 383명을 신규 채용하는 내용의 노사 합의안이 나왔지만 조합원 총투표에서 부결되어 노조 집행부가 사퇴하기도 했다. 채용 규모나 기타 합의사항이 조합원 기대에 못 미친 탓이다.

그럼에도 근무환경 개선이 내부 반발 돌파의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무덕 위원장은 “3조 2교대에서 4조 2교대로 근무 여건이 나아지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장시간 일하는 교대근무자와 통상근무자 간 임금 격차가 (통상임금과 휴일수당으로) 더 벌어지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설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측이 동의한 데는 지방공기업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공공기관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정원을 엄격히 통제한다. 반면 부산교통공사는 지방 공기업이라 정원 통제가 비교적 느슨하다. 행정안전부에 보고만 하면 된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부산지하철에서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지방 공기업의 정원 결정과 인건비 운영에 지방정부가 상당한 자율권을 갖고 있어서, 부산교통공사 사측만이 아니라 부산시가 이번 합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합의 주체는 사실상 부산시


이번 합의의 사실상 주체는 부산시였다. 파업 직전 사측은 497명 채용과 임금 동결을 주장했고, 노측은 550명 채용(초안은 1270명)과 임금 1.8% 인상을 주장했다. 합의를 이루지 못해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중에 이종국 부산교통공사 사장이 노조 파업을 ‘적폐’라고 표현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노사가 다시 마주앉는 데 부산시가 적지 않게 기여했다. 결국 540명 채용 및 임금 0.9% 인상으로 합의했다. 장형철 부산시 시민행복소통본부장은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들어올 경제적 이익을 시민의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위해 양보한 모델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부산교통공사 운영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낭비되는 부분은 없는지 노사가 힘을 모아 혁신하면 시민들에게도 더 좋은 결과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수년간 노동운동 내부에서 사회연대의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2007년과 2017년에는 보건의료노조가 정규직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들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성과연봉제를 조기 도입해 받은 인센티브를 반납해 1000억원 규모의 ‘공공상생연대기금’을 2017년에 만들었다. 지난 6월 사무금융 노사는 80억원 규모의 사회연대기금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을 출범시켰다. 의미 있는 사례들이지만, 청년 고용을 요구하기에는 재원의 한계가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부산지하철 노사의 이번 합의는, 여러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청년 고용에 사용하자고 주장해 관철시킨 주목할 사례다. 최무덕 위원장은 “큰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전체 봉급생활자 중에서 임금이 상위 10%로 아주 높은 편이다. 공공서비스 강화를 구호로만 외칠 게 아니라 우리가 부담할 수 있는 건 부담하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의제를 선제적으로 던져 잠정 합의가 맺어진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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