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하이패스에 잘려나간 손
  •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 호수 617
  • 승인 2019.07.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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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고향 갈 일이 생겨서 차를 몰고 출근했다. 출근길 도로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끼어들기도 많았고 이따금 요란한 경적 소리도 들렸다. 100m 경주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신호 대기 앞에서 조바심을 내기 일쑤였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고는 살인’ ‘직접고용 실시하라’ ‘너나 가라 자회사’ ‘내가 간다 직접고용’ 등등. 손으로 쓴 작은 종이 팻말이 고속도로 안내판에 붙어 있었다. 바람이 부는 날씨였으나 찢기거나 날아가지 않았다. 요금을 내면서 물었다. “잘 돼 갑니까?”

ⓒ윤현지

10년 전쯤 일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기후에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장인정신도 좋아 보였다. 제복 입은 택시와 버스 운전자들에게는 믿음이 갔다. 단순히 그 나라 문화라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기억에 오래 남는 좋은 인상이었다. 기차 여행을 하면서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일본 정도의 기술 수준이라면 탑승 과정이 충분히 자동화가 이뤄질 수 있음에도 사람이 직접 모든 일을 하고 있었다. 탑승 인원 확인도 발권도 모두. 이른바 PDA 기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도 저런 일을 손으로 다 하네?’ 기계화·자동화가 대세인 세상 아닌가. 굳이 사람 손을 거치면서 자동화의 유예와 기계화의 더딤을 선택하는 저간의 사정이 궁금했다. 백화점 점원들의 꽤 높은 연령대도 신뢰감을 주었다. 한국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일본 사회는 왜 일부러 느림을 선택하고 유지하는 걸까.

퇴근을 하고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 출구를 빠져나가는데 출근길에 본 작은 종이 한 장이 톨게이트에 붙어 있었다. ‘여기 분들도 함께하는구나.’ “성갑이 형은 출근했어요?” 뜻밖의 질문에 조금 당황한 듯 “누구요? 성갑이요?” “네, 김성갑이요. 윗마을에 있는 분인데…” “잘 모르겠어요. 제가 여기서 일한 지 1년도 안 되어서요.” 고향 마을 형님이 고속도로 요금수납원으로 일했던 것은 10년쯤 전이다. 명절에 내려갈 때면 톨게이트에서 가끔 마주쳤다. 밭을 갈고 과수원을 누비던 사람이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그렇게 오다가다 몇 번 인사한 것이 고작이었다. 박카스라도 한 박스 사다 드릴까 생각만 하고 이번에도 그냥 지나쳤다. 형님은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요금수납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까닭

고향에서 일을 보고 올라오는 길에 속보가 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DMZ 회동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반도 평화 뉴스에 가려진 소식도 주말에 꽤 많았다.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40명이 서울톨게이트 옥상에 올라 시위를 하고 청와대 앞에서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의 싸움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 그들은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밀어붙이면서 외주화로 전환되었다. 2013년 용역업체 노조 요금수납원들이 법원에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이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로 이들 1500명을 보내려고 한다. 자회사로 보내지는 것을 거부하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다.

내 차를 사서 몰고 다닌 지 15년이 넘었지만, 하이패스 기기는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시간을 절약하는 그 짧은 편리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편리함과 효율에 수많은 고용이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사람 손을 이용하는 상생의 지혜, 자동화의 유예와 기계화의 더딤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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