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회사 동료들과 야유회를 다녀왔다. 복직 4년 만인데 겨우 두 번째다. 올해 복직한 동료들과는 처음 가는 짧은 여행이다.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비릿한 바닷가 냄새가, 회색빛 작업복이 아닌 평상복의 알록달록함이 좋았다. 탁 트인 바닷가에 서자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것 같았다. 숨이 달라졌다. 백사장 옆 평상 위에 앉아 회를 먹고 술도 한두 잔 마셨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얘기만 하자고 해도 자꾸 회사 얘기로 돌아가곤 했다. 공장 생활이 9할인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었다.

“넌 그때 무섭지 않았어?” 다소 뜬금없는 형의 말에 고개를 상대 쪽으로 돌리며 다시 묻는 시늉을 했다. “아니, 해고 생활이 무섭지 않았느냐고. 나는 조금 무서웠거든.” “왜요? 뭐가 무서워요?” “주변에서 언제 복직하냐는 말도 힘들었고,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닌가….” “저야 노조 간부니까 그런 느낌은 덜했던 것 같아요. 그저 앞만 보고 왔으니까.” 짧은 대화가 뚝뚝 자주 끊겼다.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 술 한 잔을 더 털어넣었다. “그래도 형들이 버텨줘서 복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심이었다. “그건 아니지, 너희가 앞에서 잘 싸워줘서 우리가 복직한 거지.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

고기쌈을 입에 넣어주고 평소 하지 않던 애정 표현도 했다. 술잔 넘치는 술처럼 칭찬도 흘러 넘쳤다. 하지만 매우 기분이 좋아진 그 부푼 공간만큼 불안감도 함께 올라왔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서로의 태도는 달라진다. 그 달라진 입장에 또 각자의 태도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인간적으로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라도 결국엔 또 다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만은 행복했다. 이 작은 행복을 쌓으면 다시 반복될 갈등이라 할지라도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쌍용차 정리해고 국면에서 가장 아픈 대목은 이른바 ‘노노 갈등’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끼리 해고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아등바등했고, 때로는 척지고 나 몰라라 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장담하거나 예단할 수 없다. 쌓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쉬운 것이 사람에 대한 신뢰니까.

주말에 〈이게 마지막이야〉라는 연극을 보았다. 올해 초 끝난, 파인텍 굴뚝 농성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처음에는 볼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굴뚝 농성을 연극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연극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데 초대 손님으로 와줄 수 있느냐고 해서 마지못해 응했다. 좀 떨렸다.

나는 너무 편한 싸움을 했다

연극은 예상과 달랐다. 투쟁하는 노동자 얘기라기보다 그 주변의 얘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가늘고 더 넓게 뻗은 모세혈관 같은 일상의 투쟁 얘기다. 굴뚝에 올라가 싸우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선이 굵고 분명한 싸움을 한다. 피아가 확실히 구별되고 자잘한 일상은 건너뛰어도 되는, 어떤 면에서는 단순한 싸움일지 모른다. 그 외의 사람은 어떤 일상적 싸움을 해야 할까. 학원비를 독촉받아야 하고, 돈 몇 푼에 자존심이 구겨지기도 한다. 이 ‘디테일의 고통’이라니.

연극을 보고 난 뒤 내가 너무 편한 싸움을 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름 없이 묵묵히 냉대의 시간을 버텼던 동료들, 무너지는 일상의 둑을 막아내기 위해 스스로 쐐기가 된 아내와 아이들. 일상의 회복은 그저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것이 아님을 안다. 고마운 사람들이 일상에서 치열한 노력과 투쟁을 이어왔기에 가능했다. 그 점에서 시작되는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일상의 회복 아닐까.

기자명 이창근(쌍용자동차 노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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