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향한 외침 “박근혜를 풀어달라”
  • 나경희 기자
  • 호수 617
  • 승인 2019.07.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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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쳤던 우리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 방한에 협조하기 위해 청계광장으로 천막을 옮겼다. 당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태극기가 자주 시야를 가렸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눈앞의 태극기를 걷어내며 움직여야 했다. 가로 길이만 2m가 넘는 것부터 손바닥만 한 것까지 여러 크기의 태극기가 나부꼈다. 태극기로 만든 양산·모자·스카프·넥타이·가방까지 ‘태극기 패션’도 다양했다. 우리공화당의 당색인 ‘태극기 화이트’에 맞춰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에 매단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과 트럼프 대통령의 윙크하는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6월29일 오후 1시, 서울역 광장 한편에는 ‘우리공화당 입당 접수처’ 천막이 세워졌다. 그 옆에는 ‘박근혜 무죄 석방 서명운동’이라는 이름을 내건 천막도 함께 세워졌다. 명목은 ‘트럼프 대통령 환영식’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위한 집회나 다름없었다. 무대 차량 앞에 앉은 사람들은 ‘문·재·인·김·정·은·타·도’라고 한 글자씩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을 뒤집자 ‘박·근·혜·대·통·령·복·권’이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가 마이크를 잡자 북과 꽹과리가 울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가짜 대통령 문재인한테 물어야 합니다. 미국을 선택할 것인가, 중국을 선택할 것인가!” 조 대표는 ‘조진핑(조원진과 시진핑을 합성한 말)’이라는 자신의 별명을 의식한 듯 북한 대신 중국을 언급했다. 조 대표는 과거 중국에서 사업을 한 경력이 있고 사드 배치에 미온적이었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친박계에서 ‘친중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집회 참가자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조 대표의 친중 의혹을 언급한 지지자와 다른 지지자 사이에 말싸움이 나기도 했다. 이날 서울역에서 시작한 행진은 청계광장의 우리공화당 천막에서 끝났다.

ⓒ시사IN 윤무영청계광장에서 우리공화당 당원들이 6월30일 트럼프 대통령 차량 행렬을 맞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5월10일 우리공화당은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쳤다. 명분은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망한 5명에 대한 진상규명이었다. 당시 두 명은 급성 심장 이상으로 숨졌고, 한 명은 참가자들 사이에 끼어 사망했다. 다른 한 명은 다른 참가자가 불법으로 경찰 버스를 몰다 충돌한 차량에서 떨어진 스피커에 맞아 숨졌다. 우리공화당은 여기에 뒤늦게 밝혀진 신원 미상의 사망자가 한 명 더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애국 열사 5인’으로 부르고 있다.

당시 사망한 집회 참가자 3명의 유가족은 ‘주최자로서 집회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참가자들을 선동해 경찰 차벽을 넘어 헌재 앞으로 돌격하라고 해 폭력 시위를 조장했다’라며 ‘박사모’ 회장 정광용씨를 고소하기도 했다. 2017년 12월 정광용씨와 <뉴스타운> 손상대 대표는 1심에서 각각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5월 항소심에서 정씨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손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사실상 집회 주최 측의 선동에 의한 사고사로 판명이 났지만, 우리공화당은 ‘과잉 공권력을 동원한 경찰과 재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서울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천막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시에서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3차례 보낸 뒤 6월25일 새벽 강제 철거에 들어갔다. 쫓겨난 우리공화당은 그날 오후 더 큰 규모로 천막을 쳤다. 조원진 대표는 새로 설치한 천막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뜻하는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놓고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1억4500여만원에 달하는 행정대집행 비용 고지서에도 물러날 기미가 없던 우리공화당은 6월28일 자진해서 청계광장으로 천막을 옮겼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에 협조하기 위해서였다.

편의점에서 식사 해결하며 노숙

6월29일 서울역에서 출발한 우리공화당 지지자 5000여 명이 모인 곳은 청계광장에 차려진 천막이었다. 이날 저녁 7시, 트럼프 대통령이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원진 대표가 작은 무대 차량에 올랐다. 차량 앞에는 ‘Free Park(박근혜를 석방하라)!’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배경음악으로 미국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가 흘러나왔다. 조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동지 여러분, 이쪽으로 모입시다. 완전히 메웁시다.” 청계광장 근처에 흩어져 있던 지지자들이 도로변으로 우르르 몰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청와대 친교 만찬 참석이 임박하자, 조원진 대표는 “ROK! USA! 생큐 USA! 생큐 트럼프!”를 외쳤다. 길 건너편에 모여 있는 지지자들을 향해 “맞은편에 ‘문재인 아웃’ 현수막이 잘 안 보이거든요. 왼쪽으로 올려야 할 것 같다”라며 다급하게 외치기도 했다. 저녁 8시, 경광등을 켠 경찰 오토바이 여러 대가 앞서고 트럼프 대통령 차량이 지나가자 함성은 더 커졌다. “박근혜! 트럼프!” “박근혜! 트럼프!” 채 1분도 안 되는 트럼프 대통령 차량 행렬이 끝나자 오랫동안 서 있었던 노인들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부축하며 다시 천막으로 향했다.

이튿날인 6월30일 오전에도 청계광장은 우리공화당 지지자들로 북적였다. 천막에서 잠을 잔 사람들이 “밤새 모기에 시달렸다”라며 서로 하소연을 했다. 집에서 간식거리를 싸오지 못한 이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2000~3000원대에 점심을 해결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공동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다시 조원진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은 구호를 한 가지로 통일하겠습니다. 프리 박근혜!” 지지자들은 미국 대통령을 향해 감옥에 수감된 전 한국 대통령을 풀어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진 마무리 집회는 당 지도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지지자들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자유일보> 곽성문 대표는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을 띄워주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건 좀 감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조원진 대표는 “북한하고 미국하고 둘이서만 이야기하겠다고 하는데 (문 정부가) 또 끼어드는 건 국격이 아니다. 운전자론은 없다”라고 비난하면서 “통미봉남이라고, 미국하고는 통하고 남쪽하고는 얘기 안 하겠다는 거 아니겠나. 정통성 없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팔이 하고 있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반신반의한 표정의 지지자들을 향해 조 대표는 구호를 외쳤다. “가시밭길로 가자! 고통의 칼날에 서자! 동지들이여 두려워 마라!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대형 화분 80여 개를 광화문 광장에 촘촘히 깔았다. 화분 사이의 간격은 일반 천막 한 동의 너비인 3m보다 좁았다. 화분마다 ‘무단으로 옮기거나 훼손하면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7월2일 서울시는 화분 34개를 더 들여왔다. 보수 유튜버들은 카메라로 화분을 찍으며 박원순 시장을 조롱하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조원진 대표도 “날짜는 공개하지 않겠다. 오늘부터 언제라도 천막 칠 준비는 돼 있다. (폭이 3m보다 더 좁은) 몽골텐트 4동을 치겠다”라고 말했다. 7월4일 현재 우리공화당 천막은 청계광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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