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300m 대장정’
  • 부산·거제 나경희 기자
  • 호수 609
  • 승인 2019.05.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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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민생 대장정을 쫓았다.
황 대표의 지방 순회는 유독 영남과 충청 지역에 쏠려 있었다. 지지와 반대가 뒤엉켜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붉은 옷을 맞춰 입은 인파가 나팔을 불며 “대한민국” 구호를 외쳤다. 중앙 무대에는 레드카펫이 깔렸고, 사람들은 “문재인 독재 타도”를 외쳤다.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흥미롭다는 듯 사진을 찍었다. 5월4일 전국 각지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자유한국당 지지자 5만여 명이 모였다. 장외집회 3주차였다. 셀프 삭발로 SNS에서 입길에 오른 박대출 의원도 눈에 띄었다. 민머리에 붉은 티를 입은 채 ‘자유’라는 단어가 적힌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이른바 보수 유튜버들도 현장에 나타났다. 가짜 뉴스를 생산해낸다는 힐난도 이 자리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보수 진영의 ‘스타 유튜버’가 알은척을 하자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이날 주인공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였다. 전날까지 대전·대구·부산·광주를 돌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길이었다. ‘독재’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이 사회를 독재국가로 만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청중이 ‘황교안’을 외치며 지지를 보냈다.

원내에 자리가 없는 당 대표는 장외정치를 고수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펼쳐진 직후 황교안 대표는 여의도 바깥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선택을 내렸다. 5월4일까지 전국 주요 대도시를 ‘찍고 돌아온’ 그는 내친김에 20여 일간 지방을 돌며 유권자를 만나겠다고 선언했다. 일종의 ‘민심 대장정’이다. 당분간 장외에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황 대표에게 여야 4당의 시선이 곱지는 않다. 민심 대장정 분야에서 ‘원조’ 격으로 통하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5월9일 “지금이 어느 때라고 길거리에 나가서 당 대표가 배낭을 메고 민생 대장정을 하나?”라며 비판했다. 2006년 당시 경기도지사에서 막 물러난 손학규 대표는 ‘100일 민심 대장정’을 통해 중량급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시사IN 조남진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월7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두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시사IN>은 황교안 대표가 공식적으로 ‘순회 대장정’을 시작한 5월7일부터 그의 일정을 쫓았다. 황 대표가 민심을 듣겠다며 가장 먼저 찾은 도시는 부산이었다. 5월7일 오전 10시, 부산 자갈치시장 정문 앞에 선 황 대표가 향후 일정의 시작을 알렸다. 인근을 지나던 주민 100여 명이 황 대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급한 것은 먹고사는 것 아닙니까? 선거법, 공수처법 이게 뭐 급합니까?” 황 대표가 연설을 시작하자 한 주민이 이렇게 외치며 호응했다. “우짜든지 한국당에 의지하고 뭉쳐야 됩니다.” ‘우짜든지’라는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정을 선언했지만 황교안 대표가 실제 두 발로 걸은 거리는 300여m밖에 되지 않았다. 자갈치시장에서 빠져나온 그는 남포사거리에서 곧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가 향한 곳은 부산개인택시회관이었다. 부산개인택시회관에는 간담회가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택시 기사 450여 명이 회관 강당을 가득 채우고 황 대표를 맞이했다. 한 택시 기사는 “문재인 정부는 카카오 같은 대기업에게만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개밥그릇보다 못한 밥줄을 지키려고 이렇게 피를 토하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라도에서 왔나!”

택시 다음은 지하철이었다. 서면에서 덕포역까지 지하철 열 정거장, 탑승 시간은 20분이었다.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을 만나 민심을 전해 듣는다는 게 이번 일정의 핵심이었다. 황 대표가 교복을 입은 10대 남학생들에게 “여러분들 정치 잘 모르지? 제가 전에 국무총리 한 거 알아요?”라고 묻기도 했다. 자갈치시장처럼 열성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목적지였던 덕포역 1번 출구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이 지역구 의원인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안내에 나섰다. 덕포시장으로 향하는 좁은 인도에 인파가 모여들어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장 의원은 황 대표를 덕포시장 상인들에게 소개했다. 그중 한 시민이 ‘장제원! 장제원!’을 외치자, 장 의원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쉿’ 하고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시민이 “내가 우리 지역 의원 이름도 못 부르나”라고 말하자 당직자들이 그를 껴안으며 달랬다. 황 대표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물건을 구입하는가 하면, 시장 상인들이 건네는 음식을 입에 넣기도 했다. “지금 누가 있습니까? 미우나 고우나 자유한국당밖에 더 있습니까?” 시장 한편에서 남긴 짧은 인사말에 몇몇 주민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민생 대장정’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이번 황 대표의 지방 순회는 영남과 충청 지역에 쏠려 있다. 7일차인 5월13일까지 황 대표는 영남 지역에 머무른다. 낯선 표를 끌어오는 일정이라기보다는, 잠시 잃었던 표를 단단히 붙잡는 성격이 강했다. 둘째 날인 5월9일 일정도 부산 인근 경남 거제·통영·마산이었다.

ⓒ시사IN 조남진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황교안 대표 지지자들.
황교안 대표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은 오전 10시, 일부 시민들이 ‘세월호 조사 방해 황교안은 304명의 죽음 앞에 사죄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반대편 횡단보도에 모여 있던 자유한국당 지지자 20여 명이 이들을 향해 “아직도 시체 팔이 하나” “지금 나라 팔아먹게 생겼다”라며 소리를 질렀다. 황 대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창원에서도 충돌이 이어졌다. 일부 시민들이 ‘박근혜 공범 황교안 구속’ ‘자유한국당은 해산하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 “황교안을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성난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피켓을 빼앗으려 했다.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전라도에서 왔나!” “이것들이 대한민국을 공산당으로 만들려고”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경찰이 몸싸움을 말렸지만 뒤엉킨 시민들을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한바탕 소란 속에서도 황교안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수적으로 우세한 지지 세력이 황 대표의 주변을 지켰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악수 속에서 황 대표는 어제와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창원 일정이 끝날 무렵, 누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힘내십시오! 여기는 마산입니다!”

남은 일정이 진행될 충청, 호남, 수도권에서도 황 대표는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현재까지 예정된 황 대표의 ‘장외정치’ 일정은 5월24일까지 이어진다. 그때까지 여의도의 교착 국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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