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봄이 되면 나를 포함한 일군의 예술가들은 ‘안산순례길’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안산에서 이어왔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공연이다. 우리는 매년 새로운 순례길을 개척했다. 어떤 해는 주택가를, 어떤 해는 공단을, 어떤 해는 바닷가를 걸었다. 해마다 방문하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였다.

화랑유원지가 생명안전공원 부지로 결정되면서 분향소 방문은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지난해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지원을 받은 안산순례길은 공연 6일 전 축제사무국을 통해 분향소 방문 계획을 철회해달라는 안산시장의 요청을 전해 들었다. 공연이 생명안전공원 반대 여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는 공연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순례 루트를 변경하는 것은 무리이며 분향소 방문을 취소하는 것은 공연의 취지에 어긋나기에 원래 계획대로 공연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에 안산문화재단은 공연 취소를 통보했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공연 강행을 결정했다. ‘다행히도’ 취소 결정은 극적으로 번복되었고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생명안전공원을 혐오 시설로 보는 사람들

우리는 한편으로는 공연이 임박한 시점에 개입하여 공연 전체를 뒤흔든 시와 재단에 반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생자 가족이라면 화랑유원지 방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생명안전공원 건립 계획에 차질을 빚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공연 준비를 위해 안산 곳곳을 탐방하면서 ‘납골당 반대’라는 문구가 박힌 수많은 현수막을 보았다. 생명안전공원을 혐오 시설로 바라보고 심지어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일부의 시선은 우리의 마음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가족들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연합뉴스2019년 1월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 앞에서 화랑지킴이·화랑시민행동 소속회원들이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내 4·16 생명안전공원(추모공원) 조성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견뎌온 시간을 기록한 책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다. “안산에 생명안전공원을 만들기로만 결정됐지 첫 삽도 못 뜨고 지금도 계속 반대하는 시민들이 많으니까 이것도 불투명한 거예요. 불안한 거야… 이것까지 무산되면 어떻게 하지? 안산시민들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면 어떡하지? …한 군데씩 다 지워지는구나, 우리도 이제 지워지겠구나. -박정화(조은정 엄마)”

가족들에게 생명안전공원은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다. 그 장소조차 확보하지 못한다면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물론 진상규명과 안전사회에 대한 약속 또한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생명안전공원은 어떻게든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올해 4·16 재단의 지원을 받은 안산순례길의 참여 예술가들은 일찍부터 세월호 가족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족들은 근심이 많았다. 생명안전공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사소한 것과 사소하지 않은 것, 예술적인 것과 예술적이지 않은 것의 구별은 없었다. 모든 일이 생명안전공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돌발변수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공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논의를 거쳐 공연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했다.

정부가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공식적으로 결정했음에도 희생자 가족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 진상규명에 대한 지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국가는 언제나 미래를 강조한다. 사람들의 일상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과거를 현재화하려는 모든 싸움은 늘 불리하기 마련이다.

4월16일, 길에서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청년을 보았다.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외로울까 봐 한 움큼 노란 리본을 받아 챙겼다. 잊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이 외롭다면 잊히는 사람은 그보다 백배 더 외로울 것이다. 외로움이란, 존재가 희미해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의 장소를 필요로 한다.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존재의 나머지 부분까지 사라지게 내버려둘 순 없는 것이다.

 

 

기자명 심보선 (시인·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