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베를린은 여성의 지옥이었다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586
  • 승인 2018.12.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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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1945년 4월20일, 나는 처음으로 일기를 쓴다. 재앙은 동부전선에서 접근해오고 있다. 러시아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베를린에는 민간인 약 270만명이 있었고, 그중 200만명이 여자였다. 서른 살의 전직 출판사 직원인 나는 빈으로 파견된 옛 직장 동료의 집에서 간신히 이 글을 쓴다. 사랑하는 게르트가 돌아온다면 아마도 이 노트를 읽게 되리라. 그가 아직 전사하지 않았다면.

지하 방공호에 대피한 이웃 가운데 아직도 그분(아돌프 히틀러)은 그리스도만큼 믿을 만하다고 장담하는 퇴역 소령이 있다. 그는 질서가 무너지거나 이웃이 패배를 인정하는 언사를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패전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면서 관료들이 가장 먼저 일손을 놓았다. 우리는 이제 통치를 받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폭격, 단수, 단전,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 동부로부터 들려오는 ‘그 일’에 관한 소문이다. 모두들 굶주렸지만 굶주림만은 낯설지 않다. 그동안 유류, 약품, 식량, 피복 등 모든 물품과 자원이 군인에게 먼저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민간인은 군인이 쓰고 남는 것을 쓸 때, 관료들은 분에 넘치게 살았다.

포성이 가까워지자, 매우 은밀한 정보통에게서 알아낸 특급 비밀이라는 이름의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러시아군과 불화가 생긴 미군, 영국군이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고 러시아군을 다시 이 나라에서 몰아낼” 것이라는 소문은 분명 억지스러웠지만 인기가 있다.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과 공산주의를 똑같이 미워했고, 독일 중산층의 ‘레드 콤플렉스’는 그것을 반겼다. 러시아군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베를린 사람들은 서부전선에서 진군해오는 미군의 포로가 되기 위해 피란을 떠났다. 포로가 되기 위해 피란을 가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라니!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는 순식간에 공포로 둔갑했다.

베를린 함락 나흘 전, 시내에는 팬티 차림에 ‘배반자’라는 표지를 목에 건 군인의 시체가 전시되었다. 최전선은 우리 안에 있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이름이 강조된 공고문은 항복하려다가 발각된 사람에게 교수형과 총살형을 내리겠다고 위협했으나, 사람들은 공공연히 농담을 했다. “이보게, 그 누군가의 어머니가 사산을 했다면 우리가 얼마나 잘 지냈겠나.” 도시 전체가 폭탄 구덩이다. 먹을 것을 찾아 동네를 누비다가 떨어져나간 이웃의 팔다리를 자주 발견한다. 평소에 고상했던 여자들의 입에서 툭하면 “빌어먹을” “죽어 나자빠졌네”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우리까지 시달리고 싶지 않다”던 남자들

“여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튼 일종의 집단적인 환멸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여자들을 지배하던 남자들, 강한 남자를 찬미하는 나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나아가 ‘남성’이라는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남자들은 조국을 위해 죽고 죽일 수 있는 특권이 남자들에게만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전쟁에서는 우리 여자들도 그 특권에 가담한다.” 여자들이 쓰는 언어의 타락은 “곧 들이닥칠 굴욕적인 상황”에 대한 각오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일’에 관해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에 올리지 않는다. 식량 배급 체계가 무너지자 베를린 시민이 베를린을 약탈한다.

4월27일, 금요일 새벽. 러시아군이 베를린에 입성했다. 그들은 폐허를 이 잡듯 뒤져 여자를 겁탈한다. 러시아군 장교들은 ‘그 일’을 사병들에게 금지했지만, 전시 강간은 하급 병사만 하는 게 아니다. 독일 여성을 지켜주는 독일 남자는 없다. 구조를 위해 이웃집 문을 두드릴 때 풀지 않은 문의 안전고리 뒤에서 “우리까지 시달리고 싶지 않아요!”라고 속삭이는 남자는 신사다. 러시아 병사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여자를 향해 어떤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제발 빨리 따라가요, 당신이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잖아요.” 나는 몰락하는 서구에 대한 주석을 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이 내 집을 마음대로 침탈하게 되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아주 빤한 결심. 다른 온갖 늑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마리 늑대를 불러들여야 해, 장교를. 가능한 계급이 높아야겠지.” 다행히도 러시아어를 약간 할 줄 아는 나는 장교에게 건넬 만한 문장과 어휘들을 연습한다. 전시에 나를 보호해줄 적군 장교를 스스로 찾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일 리 없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참 이상하지. 이제 곧 여자를 겁탈하거나 돈으로 살 거면서 꼭 로미오처럼 사랑을 고백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낭만적인 인정까지 받으려 한다. 중위에게서 나를 인계받은 소령은 내게 자신의 가족 사항을 알려주고, 수첩에서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는 그와 나 사이의 강제적인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로맨스(romance)로 바꿔보려고 한다.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익명의 여인 지음, 염정용 옮김, 마티 펴냄
나는 소령에게 차갑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태다. 결코 소령이 나를 강제로 범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그에게 몸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욕망 때문인가? 말도 안 된다. 욕망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이제 남자라면 지긋지긋하다. 내 평생에 자발적으로 그런 짓을 바라게 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베이컨, 버터, 설탕, 양초, 고기 통조림을 얻기 위해 이 짓을 하는가?” 마구잡이로 겁탈을 하던 상황이 차츰 수그러진 것은 도시에 식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고픈 여자들이 나처럼 주인이 정해져서 러시아군끼리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월16일, 게르트가 돌아왔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에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는 내가 무사히 살아 있는 것에 놀라고, 나로부터 극심한 굶주림에 대해 듣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 적힌 ‘Schdg.’가 ‘겁탈 (Schändung)’의 약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를 추궁했다. “너희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암캐로 변해버렸어. 너희는 그 모든 가치 기준을 잃어버렸어.” 그는 나를 떠났다. 게르트, 그런데 너는 어디에 있었지? 거기서 뭘 했지? 러시아 장교가 사병들에게 ‘그 일’을 금지하는 훈시를 내렸을 때, 나는 훈시를 듣던 병사가 이렇게 반발하는 것을 들었어. “무슨 말입니까? 독일 놈들이 우리 여자들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놈들이 내 누이들을….” 물을 긷는 펌프장에서 독일 여자들은 이런 말을 해. “우리 군인들도 그곳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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