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가 프라이버시를 탈취하다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588
  • 승인 2018.12.27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프라이버시’라는 독특한 개념을 발전시켰다.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주거와 신체의 안전은 물론 사상과 신념의 자유도 보호한다. 프라이버시의 가장 극적인 형태가 정치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비밀투표제 도입이다. 그런데 서구를 중심으로 힘들게 구축되어왔던 프라이버시 개념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안드레아스 와이겐드는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사계절, 2018)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0년간 애지중지해온 프라이버시가 이제 그저 환상에 불과함을 인식할 때다.”

프라이버시를 파괴하는 것은 당신에 관한 온갖 정보를 취합하는 빅데이터(Big data)다. 그래서 빅데이터는 똑같은 성씨를 가진 빅브러더(Big Brother)와 악명을 함께 나눈다. 한병철의 <투명사회> (문학과지성사, 2014)는 그런 논리에서 집필되었다. “디지털 파놉티콘(panopticon)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놉티콘의 시장에 전시한다. 주체가 외적인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가발전적인 욕구에 의해서 스스로를 노출할 때, 그러니까 자신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잃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을 버젓이 드러내놓고자 하는 욕망에 밀려날 때, 통제사회는 완성된다.”

한병철은 우리가 자진해서 디지털 파놉티콘에 매몰되는 현상(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자기 착취’의 일종으로 본다. 하지만 신용카드 결제와 인터넷 로그인은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과 같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모조리 빅데이터에 축적되고 마는 것에는 자기 착취로만 설명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많다. 일례로 내가 집 앞의 도서관에 신간 도서를 신청하고자 할 때, 나는 도서관이 요구하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용’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동의해야 한다. 자발성과 무관한 이런 검문소는 지천으로 널려 있다. “개인은 데이터 제공을 거부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지만, 데이터 정제소는 10억명 중 1명의 정보를 얻지 못할 뿐이므로 잃을 게 없다.”

빅데이터가 프라이버시를 탈취하면서 생긴 재미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미국의 유명 종합 유통업체의 알고리즘은 한 젊은 여성의 구매 내역을 바탕으로 그녀에게 출산용품 홍보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유통업체에 분개했으나, 며칠 후 딸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어야 했다. 비밀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지만 온갖 디지털 흔적을 흩뿌린 당신이 ‘문빠’인지 ‘태극기 부대’의 일원인지는 빅데이터가 알고 있으며, 당신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는지도 안다.

당신이 뿌려놓은 디지털 흔적들


루크 도멜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만물의 공식>(반니, 2014)에서 빅데이터-알고리즘이 디지털 파놉티콘 주민의 일부를 어떻게 배제하는지 재미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알고리즘은 고객 서비스 부서로 전화를 건 소비자 개개인의 성격과 구매력을 분석하여 차등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돈 되는 고객이지만 인내심이 약한 성격의 유형에게는, 통화를 질질 끌면서 질문을 많이 하지만 회사에 돈을 쓸 것 같지 않은 성격 유형보다 우선적으로 통화를 연결해줄 것이다.” 이런 차등화가 가능한 것은, 빅데이터-알고리즘이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에 저장되고 알고리즘에 분석됨으로써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알고리즘적 정체성(algorithmic identity)’을 갖게 된다.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저자는 빅데이터의 위험성을 경계하기는 하지만, ‘빅데이터=빅브러더’라는 유의 인식과는 발상이 전혀 다르다. 거의 전 세계인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접속자가 되고 소셜 데이터의 생산자가 되어버린 지금, 빅데이터를 악마로 보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빅데이터를 공유하여 얻는 공공의 이익과 잃어버린 프라이버시를 저울질해보아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정언명령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빅데이터가 진짜로 중요한 공공자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이경전·전정호의 <버튼 터치 하트>(더난출판, 2018)는 앞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제품 자체가 미디어가 되는 길이 열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미디어(media)란 둘 사이의 소통 수단이나 정보를 나르는 도구를 뜻하며, 신문·잡지·라디오·텔레비전 등이 원래적 의미의 미디어다. 그런데 사물(상품)에 부착된 QR 코드와 NFC 태그 등은 사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지은이들이 애용하는 용어인 ‘사물인터넷(IoT: the Internet of Things)’은 사물에 QR 코드나 NFC 태그를 붙이는 행위만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의 궁극은 사물 각각이 컴퓨터가 되고, 그 사물들이 인간 각자가 지닌 컴퓨터(스마트폰)와 소통하는 것이다.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지음, 홍지영 옮김, 사계절 펴냄
“인터넷이 전 세계의 컴퓨터를 서로 소통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실현된 것이라면, 사물인터넷은 이제 전 세계의 사물들을 ‘컴퓨터로 만들어’ 서로 소통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전원이 있었던 전자 기기(밥솥)이나 기계(자동차)는 그 자체로, 전원이 없었던 일반 사물들은 새롭게 센서와 배터리, 통신 모듈이 부착되면서 컴퓨터가 되고 이렇게 컴퓨터가 된 사물들이 그들 간 또는 인간의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은 전통적인 기능만 수행하던 기존 제품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제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 사물(제품) 생산자와 사물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더욱 밀접한 사이가 되는 만큼, 소비자와 관계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 전체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온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무 틈 없이 밀착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사물인터넷과 아직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각종 매장에서 안내원이나 판매원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사물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안내원과 판매원은 물론 여러 부분의 평론가들마저 급속도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지은이들은 사물인터넷이 종이 매체를 더욱 추락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시대는 인간의 실세계를 더욱 확장해주고 편리하게 하며 놀이와 같은 일상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글에 언급된 여러 책들을 보면, 정작 그리고 진정 사물이 되어버린 것은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