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께 발생한 대지진으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 도쿄 시내. 동료들과 구명활동을 벌이다 잠시 가메이도의 자택으로 향하던 청년이 무너진 집에 깔린 한 어머니와 아이들을 발견한다. 어머니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던 청년은 아이들을 구해 인근의 우에노 공원으로 피신시키고 먹을 것을 주며 달랬다. 저녁 무렵이 되자 “사회주의자와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9월3일 아침 경찰과 지방행정을 총괄하던 내무성이 전국 지자체장에게 유언비어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문(電文)을 띄워 곳곳에 자경단이 조직된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우에노 공원에도 고등계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청년은 도주하지 않았다.
청년은 스물한 살 가와이 요시토라. 한 해 전 창당한 일본공산당의 당원이자 당 청년조직인 일본공산청년동맹(공청)의 초대 위원장이었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에 반대하고, 3·1 운동을 지지하며 식민지에서의 즉각 철수를 주장해 요주의 감시 대상이었다.
가와이는 정전으로 어둠에 휩싸인 유치장 안에서도 함께 연행된 아홉 명의 동지들과 불법체포 및 구금에 항의하며 투쟁가를 불렀다. 인근에 주둔 중이던 근위사단(近衛師團) 나라시노 기병 제13연대가 경찰의 요청으로 출동했다. 일반 사단과 다른 최정예 병력으로 일왕과 궁성을 수비하는 ‘금궐수호(禁闕守護)’ 의장부대, 이른바 ‘봉련공봉(鳳輦供奉)’의 임무를 띠던 근위사단은 절대왕정의 상징이었다. 병사들은 총검으로 비무장 상태의 청년들을 전원 사살하고 시신을 강가에 버렸다. 이른바 ‘국적(國賊)’에게 내려진 응징이었다.
일본의 양심 세력이 한 세기 동안 걷게 될 가시밭길의 서막, 바로 ‘가메이도 사건’이다. 군국주의자들에게 최후까지 저항했던 일본공산당 당원들은 적지 않은 수가 형식적인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장마비로 의문사했다.
비록 양상은 다르지만 이와 같은 상황은 일본 사회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관동대지진의 진실을 낱낱이 보도한 언론은 〈신문 아카하타〉가 유일했다. 일본공산당의 기관지로 창간된 이 신문은 현재 유료 발행 부수 115만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진보 매체로 성장해 아베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다. 당시 관동대지진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정부 당국에 맞서 싸운 인권변호사 후세 다쓰지(박열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와 그 동료들이 만든 자유법조단도 여전하다. 가와이가 활동하던 일본공산당은 물론, 그가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공청도 민청(일본민주청년동맹)으로 명칭을 바꾸어 장구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그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10월30일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승소 판결 이후부터다. 포문을 연 것은 같은 날 발행된 〈신문 아카하타〉다. 〈신문 아카하타〉는 우선 1990년대 이후 징용 피해자들의 청구권 소송 패소가 이어졌으나, 피해를 입은 사실은 인정되어 일본강관(1999년), 후지코시(2000년), 미쓰비시 마테리얼(2016년) 등 가해 기업으로부터 피해자들이 사죄와 더불어 ‘위로금’을 지급받은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개인의 청구권은 중·일 공동성명에 의해 상실되었지만 개인의 실체적 청구권까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점을 〈신문 아카하타〉는 지적했다. 또 이 신문은 니시마쓰 건설이 강제연행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기념비 건립과 합의금을 지불한 사례를 제시하며,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자민당은 10월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비난하는 내용의 국회 결의문 채택을 추진했다. 국회 결의문은 만장일치일 때만 채택되는데,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일본공산당이다. 일본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 “(비난 결의보다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라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국회 결의문 채택이 무산됐다.
공동 여당인 공명당 원로도 아베 비판에 나서
야당 연대를 주도하는 일본공산당 시이 위원장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해소된 게 아님을 일본 정부도 국회 답변 등에서 반복적으로 표명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춘식씨 등 한국인 원고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식민지배·침략전쟁에 따른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에 관한 위자료를 요구했는데, 한·일 청구권협정 협상 당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인함으로써 강제동원에 대한 법적 배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점을 지적했다. 시이 위원장은 징용은 강제동원으로 발생한 인권 문제로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이 명확한 사죄와 반성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국제법에 비추어 (한국 대법원 판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아베 총리의 주장을 공동 여당인 공명당 원로가 비판하고 나선 점도 눈에 띈다. 하타 쓰토무 정권 시절 운수(運輸)장관(1994년)을 지낸 후타미 노부아키(10선) 전 공명당 부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후타미 전 부위원장은 식민지배는 엄연한 사실이었고, “아베 총리가 존경하는 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 시대”에 벌어진 일인데, 이 문제를 이용해 “묘한 내셔널리즘을 고양하려 한다”라며 아베 총리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시민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피해 관련 단체 중 최대 규모인 ‘전후보상 네트워크’는 패전 이후 73년이 지나도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일 양국 정부의 태만을 비판했고 한국인 피해자들의 오랜 싸움에 경의를 표했다. 전후보상 네트워크는 “피해자의 신속한 인권 구제가 가장 중요하며 피해자의 인권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단체는 내셔널리즘을 강조하고, 증오를 부추기려는 정치 세력과 언론에도 엄중한 자제를 요구했다.
현재 아베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불러올 연쇄 파장을 경계하고 있다. 11월4일 미쓰비시조선 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는 가해 사실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언론 논조를 비판했다. 이튿날에는 9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일본 국내 변호사 유지(有志)’ 명의로 “인권침해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국가가 소멸시킬 수 없다는 사고야말로 국제 인권법 진전의 결과”라며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참여한 가와카미 시로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한 채 그저 한·일 양국의 대립만 부채질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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