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 번째로 여행을 떠난 도시는 홍차 산지로 유명한 다르질링이었다. 인도 제국의 고도이자 첫 번째 여행 도시였던 콜카타에서 기차로 12시간, 다시 지프를 갈아타고 두 시간 반을 이동해야 다르질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차의 본고장에서 먹는 차 맛이 궁금해 동네 카페로 갔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탐구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몇 군데 카페에서 더 맛을 보다 다르질링 홍차는 맛이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 편견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달 후 뭄바이에서 인도 차협회가 운영하는 일종의 안테나숍을 갔는데, 그 집에서 마신 다르질링 첫잎차(First Flush)는 ‘어, 이런 맛이 있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놀라웠다.
뭄바이에서 마신 차는 맛있었는데, 왜 산지의 차는 맛이 없었을까. 이후 가이드북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산지의 차를 맛보러 다녔다. 케랄라의 닐기리 같은 홍차 산지는 물론 보이차의 고향이라는 윈난의 시솽반나, 불에 덖는 차로 유명한 우이산 일대, 나중에는 커피로 눈을 돌려 예멘의 모카까지. 놀랍게도 산지에서 먹는 그것들은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중간 집화장이 있는 대도시, 즉 델리나 뭄바이의 전문 찻집이나 가야 쓸 만한 품질의 차를 구할 수 있었다.
2016년 초 나는 EBS 〈세계테마기행〉을 통해 스리랑카에 가는 기회를 얻었다. 스리랑카 또한 실론티의 본고장 아닌가. 나는 차 산지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현지인 노동자와 어울려 찻잎을 따는 모습을 촬영해야 했는데, 늘 관람객 입장이었던 걸 벗어나 꽤 진지하게 찻잎 따는 노동을 해봤다. 배낭 하나를 다 채울 만큼의 양이었다.
배낭 하나 가득 찬 생찻잎을 말리고 건조하면 100g 정도가 된다. 건조하면 부피와 무게가 줄어든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차는 정말 허무하리만치 쪼그라드는 물건이었다. 잎을 가리는 차의 특성상 고급 차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직접 잎을 따야 하는데 사실 이게 모두 온전히 노동력이고, 인건비다. 왜 차 산업이 노동력이 저렴한 국가에서 흥할 수밖에 없는지는 그 한 시간여의 짧은 노동으로 이해가 됐다.
당시 차 공장 공장장을 인터뷰했다. 그에게 왜 콜롬보 시내에서는 OP를 구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OP’는 오렌지피코(Orange Pekoe)라고 하는데, 차나무에서 새싹을 채취해 건조 과정에서도 부서지지 않게 잘 말린 찻잎을 말한다.
“그건 모두 수출하지. 스리랑카에서는 OP를 구할 수 없어. 그건 인도도 마찬가지야.” “공장장인 당신은 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재차 물었다. 아무리 귀하다 해도 ‘뒷문’으로는 구할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선별 과정부터 OP는 별도 관리된다고. 우리 차 공장에서 운영하는 상점에서도 ‘브로큰피코(Broken Pekoe)’만 구할 수 있을 뿐이지.”
차 원산지에서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없는 이유
문득 다르질링, 아삼, 예멘의 모카에서 맛있는 홍차와 커피를 마실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씁쓸했다.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이용해야 차 산업이 유지될 수 있고, 그렇게 생산된 것들 중 최고급품은 그 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
2018년 1월 홍차 산지 닐기리에서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인도의 경우 경제가 성장하면서 고급 차에 대한 내국인 수요가 발생해 이제는 최상품 홍차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서 마셔보니 그건 사실이었다. 지금 다르질링을 다시 찾으면 괜찮은 홍차를 마실 수 있을까. 그땐 뒷맛이 씁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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