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나 타이, 일본에서 음식 타박을 별로 하지 않던 사람도 인도에 가면 유독 먹을 게 없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많다. 향신료라고는 고추와 후추밖에 접하지 못한 한국인에게 인도의 다양한 향료는 늘 역하게 다가온다. 어딜 가나 밥상에 고기, 해산물 한두 가지는 올라야 밥숟갈을 뜨는 사람에게는 더하다. 육식이라고는 닭고기와 양고기 정도. 게다가 엄격한 채식주의 식당만 즐비하다. 한번은 누군가 왜 인도 식당의 메뉴는 어딜 가나 천편일률적이냐고 물었다. 북인도를 주로 다닌 여행자였는데, 그래도 인도 음식을 곧잘 먹는 편에 속했다.
인도는 매식 요리의 역사가 짧은 편이다. 지금과 같은 식당 문화가 자리 잡은 건 최근이다. 산업화가 덜 이루어져 모두가 집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기도 하지만, 인도의 특수성도 한몫했다. 인도만의 신분 구별법, 즉 카스트 때문이다. 도시에서야 지금은 옅어졌지만, 시골에 가면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이 만든 요리는 어지간하면 꺼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쉽게 말해 브라만이 만든 요리는 모든 카스트가 맛볼 수 있지만, 요리사가 바이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젠가 MBC 〈무한도전〉에서 인도 뭄바이의 도시락 배달 극한체험을 방영한 일이 있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복잡하게 아내가 만든 도시락을 배달시켜야만 할까? 식당 음식을 먹고 대규모 식중독 사고라도 났나 싶었는데, 그 비밀 또한 카스트에 있었다. ‘어떤 놈’이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식당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굳센 의지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세상에나,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 뭄바이조차 이렇다니.
식당 요리가 활성화된 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의 독립,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이었다. 한국도 그렇지만, 원래 한 나라였던 곳이 한순간에 칼로 무 자르듯 확 나뉠 수는 없다. 갈등과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실향민이 발생했다. 베트남 요리 ‘분짜’의 역사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시사IN〉 제564호 ‘베트남 음식에서 난민을 읽다’ 기사 참조), 인도 역시 갈 곳 없는 실향민들이 솥과 탄두르(항아리 모양의 화덕)를 걸고 밥집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분단 지역이 인도의 북서부 펀자브인데, 이 지역에 주로 모여 있는 시크교 커뮤니티에서는 원래 낯선 이와 음식을 나누는 문화에 익숙하다. 즉 밖에 나가 음식을 먹는 게 이상하지 않았던 지역이 공교롭게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며 대규모의 실향민을 배출했고, 이들이 만든 음식이 곧 북인도의 식당 요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는 ‘식당에는 없는 요리’라고 말했다
언젠가 우타르프라데시 주 출신 인도인 집에 초대된 적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기절할 만큼 맛있는 가지 커리(카레)를 맛본 적이 있다. 이거 어디 가면 먹을 수 있냐는 내 질문에 그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식당에는 없는 요리라고 했다. 그때는 이 말을 납득하지 못해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식당을 죄다 뒤졌지만, 정말로 그런 커리를 파는 식당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제 개발이 진전되면서 인도에도 다양한 지역 요리가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자라트 주가 가장 먼저 채식 요리를 특화했고, 이어 웨스트벵갈과 케랄라가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안드라프라데시도 질세라 자신들의 특기인 영양밥(비리야니)으로 전국적 지명도를 쌓고 있다.
이런 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그 지역 요리 전문점을 찾아야 한다. 여행자들이 주로 가는 평범한 인도 식당은 여전히 비슷비슷한 메뉴뿐이다. 물론 새로운 요리가 여행자를 반긴다 해도, 낯선 음식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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