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행 가이드북을 쓸 때다. 상하이에 있던 지인의 도움으로 꽤 괜찮은 아파트의 방 한 칸을 두 달 동안 썼다. 고급 아파트여서 집집마다 개인 정원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넓은 발코니가 있었다. 개중에 눈에 띄는 몇몇 집은 아예 발코니를 흙으로 덮고 심지어 연못을 판 집도 있었다. 말이 연못이지 발코니에 홈을 파고 물을 담을 수 있게 만든, 얼핏 보면 거대한 세숫대야 같았다. 심지어 가느다란 수로를 따라 물이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입주민의 초대를 받았다. 내가 머물던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연못을 판 그 집이었다. 주인장은 홍콩 사람이었는데, 발코니에 연못을 판 이유가 궁금해 넌지시 물어봤다. 그는 “풍수지리상 저 자리에 물이 고여 남쪽으로 흘러야 하는 지형이라 수로를 팠다”라고 말했다. 내가 놀라워하자 그는 더욱 호탕하게 말했다. “맞은편 방에 동쪽으로 난 창문은 늘 열어두지. 그쪽으로 기가 들어오거든. 벽을 뚫고 싶었는데 아파트라 안 된다더군(웃음).”

‘21세기 무학도사’ 때문에 건물 설계도가 바뀐다

ⓒEPAHSBC(위)는 풍수에 맞춰 건물 1층을 통로로 만들었다.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집안에 인공 연못이나 무리해서 심은 나무 같은 게 보이면 그 집 주인은 십중팔구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세 지역 중 한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사회주의 이후 풍수를 미신으로 보고 일종의 사회적 금기로 만든 대륙과 달리, 대륙 바깥의 중화인들이 받아들이는 풍수는 기상천외했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더욱 가관이었다. 다들 풍수에 열광했다. 새 건물이라도 지을라치면 수많은 ‘무학도사’들이 나타나 ‘도읍지’를 정해주었다. 홍콩 한복판에 있는 HSBC(홍콩상하이 은행)의 경우 풍수지리상 아홉 마리의 용이 넘어가는 길이라며 1층을 비워두었다. 빌딩 주변에도 ‘용의 길’을 막지 않기 위해 공원을 만들었다.

사실 몰려드는 무학도사들은 요즘 말로 악성 루머꾼에 가깝다. 그들이 ‘이래서 흉하고 저래서 흉하다’고 떠들면, 사람들 모두가 그에 따라 입방아를 찧는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풍수가의 이야기를 적당히 따르는 게 덜 골치 아픈 법이다.

홍콩 중국은행은 최대 라이벌 HSBC를 이기기 위해 사옥을 검의 모양으로 만들어 HSBC 건물을 겨누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운 나쁘게 그 사이에 낀 청콩센터는 중국은행의 검에 화를 당할까 봐 건물 외벽에 그물 무늬를 만들어 검의 기운을 튕겨냈다고 한다. 마카오의 리스보아 호텔은 투숙객이 돈을 다 잃기 전까지 카지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건물을 새집 모양으로 지었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이야기다. 뭔가 대단한 철학 따위는 없다.

한국이라고 크게 달랐을까. 우주의 기운을 즐겨 찾던 어떤 대통령 시대, 한국투자공사는 무려 1조1000억원을 들여 홍콩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매입했다. 이 호텔은 홍콩을 감싼 아홉 마리 용이 빅토리아 해협을 건너 주룽반도에 도착하는 첫 번째 지점에 있다. 홍콩에서 가장 풍수가 좋다는 곳이다. 하지만 호텔 자체는 풍수를 떼놓고 보면 도저히 그 금액으로 인수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낡았다. 당시 한국투자공사의 판단을 두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 홍콩에서는 홍콩 법을 따르자는 생각이었을까.

청와대의 광화문 이전 논란도 비슷하다. 풍수에 열광한다는 홍콩과 마카오도 정부 관계자가 풍수를 근거로 어떤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건 국가가 얼마나 이성적인지를 판단하는 바로미터 같은 거니까. 내 프랑스인 친구 장이 이렇게 꼬집었다. “아시안의 사고방식대로면 프랑스 혁명은 바스티유의 터가 안 좋았거나, 루이 14세의 묏자리가 나빠서 일어난 거야? 너무 이상하잖아.” 반박할 말을 아직 찾지 못했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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