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000년 전 페르시아, 그러니까 지금의 이란에서 엄청난 난민이 인도로 몰려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수의 난민이 유입되는 걸 반길 나라는 없다. 1000년 전에도 인도는 인구 대국. 인도의 왕은 대놓고 거절하진 못하고 찰랑찰랑 넘치는 우유 한 통을 보내서 자기 뜻을 알렸다. 너희까지 받아들이면 우유 통이 넘친다는 의미였다.
난민 지도자는 이 우유에 설탕을 가득 부어 돌려보냈다. 설탕은 녹았지만, 우유는 넘치지 않았다. “우리를 받아만 준다면 설탕처럼 우유에 스며들어 조용히 살 것이고, 설탕처럼 인도를 달콤하게(부유하게) 만들겠다.” 어떤 이야기에는 설탕 대신 금화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어쨌건 이 재치 넘치는 무언의 대화 끝에 난민들은 인도 거주를 허락받는다. 이 난민들은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인도에서는 이들을 ‘파르시’라고 한다)를 믿던 사람들로,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동쪽으로 이동하다 인도까지 밀려들게 됐다.
타타를 삼성과 비교하지 말라
이 이야기가 실제인지 혹은 후대의 각색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인도의 파르시 커뮤니티에서는 거의 정설처럼 인용된다. 실제로 파르시들은 인도에서 설탕 혹은 금화 구실을 했다. 알다시피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이때 들어온 난민의 후예다.
얼마 전 한국 언론은 ‘릴라이언스’라는 인도 통신 재벌가 딸의 초호화 결혼식을 요란하게 보도했다. 인구 상당수가 절대 빈곤에 처한 나라에서 우리 돈으로 1100억원짜리 결혼식을 하는 이들이, 그 일대 주민 수천명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는 이야기가 미담 사례로 소개되곤 했다. 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인도에서 기업의 기부나 나눔을 이야기할 때는 누구도 릴라이언스 그룹을 거론하지 않는다. 굴지의 기업집단 중 하나인 이 그룹은, 인도 정치에 정경유착을 뿌리내린 이들 가운데 하나다. 창업자 가족이 회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곳이기도 하다.
진짜는 따로 있다. ‘타타’라는 그룹이다. 2004년 군산의 대우상용차를 인수한 덕에 한국인에게도 이름 정도는 알려진 기업이다. 설탕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걸 생산하는 인도의 국민기업이다. 1868년 타타를 창업한 잠세트지 타타라는 인물이 바로 프레디 머큐리와 같은 파르시였다. 막대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삼성에 빗대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타타는 출생부터 민족기업이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 세력의 든든한 자금줄이었고, 내로라하는 선진국, 심지어 식민 통치국이던 영국보다도 먼저 노동자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1886년부터 1937년 사이에 직원을 위한 연금기금 설립, 노동자 상해보상 실시, 8시간 근무제 확립, 직원 무상의료, 직원 자녀를 위한 학교 설립, 유급휴가 도입, 출산수당 지급, 이익공유제 실시, 퇴직금 설립 등을 이뤄냈다. 최대 기업이 이렇게 하면 다른 기업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타타의 선제적인 복지정책은 인도의 기업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타타 그룹의 사훈은 시기에 따라 변해왔는데, 초기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몇 번 반복된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이라는 경구였다. 원래 파르시들의 집단적인 행동 지침에 가까운 말이다. 타타 그룹 지주회사의 목표 역시 놀랍게도 사회적 기여와 자선이다. 모든 계열사는 이익의 4%를 반드시 자선사업에 기부해야 한다. 이렇게 매년 사회에 환원되는 비용은 해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억 달러(약 1116억원)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거다. 오래전 어떤 난민이 물고 온 박씨가 자라 1000년 후 설탕과 금화가 되었다. 하나는 타타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뮤지션이다. 난민을 소재로 한 이 동화는, 리얼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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