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불교계와 갈등을 빚던 정권 초기인 2008년, 전국 주요 사찰의 법회 개최 움직임을 보고받은 정황이 확인되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 가운데 2008년 8월31일자 ‘#붙임. 주요 사찰 법회 개최 상황’ 문건을 보면, 전국 주요 사찰에서 법회가 열린 일시, 참석 인원, 내용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특히 내용에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해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세세히 적혀 있다(오른쪽).
문건을 보면,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조계사의 법회는 이날 오전 10시에서 12시30분까지 열렸고 1200명이 참석했는데, “정부 규탄 법회, 종교 편향에 대한 영상물 상영 등으로 진행”되었으며 “지관 총무원장, 법어를 통해 종교 편향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했다고 적혀 있다. 서울 화계사의 경우 “박광서 서강대 교수(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가 연사로 종교 편향에 대해 연설”했다. 경기 남양주 봉선사는 “종교 편향 관련 영상물 상영”을 했으며 “주지 인묵 승려, 설법 도중 ‘편향 사례를 인터넷에 게시하고 자료를 주면 취합해서 정부에 대항하는 데 봉선사가 중심이 되겠다고 발언’”이라고 적혀 있다. 경기 화성 용주사에서 주지 정호 스님은 “대통령이 사과를 하거나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비난”했다고 문건은 적었다.
경북 의성 고운사의 경우 주지 호성 스님이 “법문 도중 정부의 종교 편향 사례를 신도들에게 설명”했으며 “이명박 정부·공무원 종교 편향 사례와 이유, 이명박 정부 150일 총 23건의 종교 편향”에 관한 “유인물 배포”가 이뤄졌다. 대구 동화사의 주지 허운 스님은 “‘불심으로 정부의 종교 편향적 시각을 불식시켜야 한다’ 등의 요지로 법어”를 한 것으로 나온다. 부산 범어사의 법회는 “통상적인 법회로 진행”되었으나 “주지 정념 승려 ‘종교편향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발언”과 같은 특이 사항이 기록되었다. 전남 해남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놔서 시끄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불심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언동”했다고 되어 있다. 종교 편향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순수 초하루 법회로 진행”되었다고 표기되었다.
이명박 청와대는 왜 불교 법회에 주목했을까.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개신교 편향 논란을 자초했다. 2008년 7월29일 조계사에서 경찰이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한 일은 불교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해 8월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에는 1만명이 넘는 승려를 포함해 약 20만명이 참석했다.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는 8월31일 초하루 법회를 ‘이명박 정부 규탄 법회’로 이름 지어 진행해달라고 전국 사찰에 요청했다. 문건이 기록하는 2008년 8월31일은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열린 법회를,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꼼꼼히 보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총무원장 선거에 주목한 이유
문건에 나오는 팩스 번호(7704 742)는 당시 청와대에서 사용한 번호로 확인되었다. 최초 문건 생산자는 불분명하지만, 내용으로 봐서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불교계 사찰(査察)로 보인다. 〈시사IN〉이 입수한 다른 문건과 함께 보아도, 이는 단순 정보 보고이기 어렵다. 2008년 8월4일 이명박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주간 정국분석과 전망’ 문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불교계 반발이 “하반기 국정 운영에 최대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봤다. “불교계가 종교 편향을 명분으로 反정부 전선에 나설 경우 (중략) 촛불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촛불집회 여진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문건은 “조계종 종단에서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템플스테이’를 미래 문화콘텐츠 전략사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한편, “언제까지나 끌려다닐 수는 없”기에 “先유화책, 後대응책”으로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불교계의 문제점을 부각, 여론 조성”할 것을 거론한다. 2008년 8월25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주간 정국분석과 전망’ 문건은 중장기 전략을 조금 더 구체화한다. “불교 내 일반 신도와 운동권 승려(실천승가회 등)를 분리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함.” “운동권 승려들의 ‘反정부성’과 부도덕성을 부각해야 할 것임.”
2008년 9월1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8월 정국분석 및 9월 전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향후 불교계를 누가(우파 성향 對 좌파 성향) 주도하느냐 주목. 불교계에서는 내년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내부 운동권 측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임. 따라서 이들의 입김이 강함.” “불교계가 좌파 진영의 반정부 투쟁 울타리나 우산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문건 작성으로부터 1년여 뒤인 2009년 10월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자승 스님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의 ‘747 불교지원단’ 상임고문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전 조계종 총무원장 정책특보)은 “자승 스님은 MB, MB 형 이상득과 ‘형님’ 하는 사이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 선거 직전인 8월 말 청와대 정무비서관, 9월 중순 국정원 처장을 만났다고 들었다. 진보 성향 스님은 출마 선언을 포기했다. 당시에도 이명박 정부가 총무원장 선거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는데, 문건 내용으로 미뤄보면 단순한 정황이 아니라 구체적 작업이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개신교 성향인 MB가 불교계가 반정부 세력이 되는 걸 막으려고 자승 스님을 포스트로 선택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에 취임한 직후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를 만나 ‘좌파 주지를 그냥 둬서 되겠느냐’고 압박했고,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은 2010년 11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놓고 조계종과 갈등을 빚다 주지에서 물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전 국정원 간부들은 명진 스님 등을 사찰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불교계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취임 직후인 2008년 12월 박형준 당시 정무수석과 충남 지역 사찰의 주지들을 만나 세종시 백지화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문건을 보면, 이명박 청와대는 불교계 문제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갈등에 영향을 줄 것도 고려했다. “향후 정부에 반대하는 강경파가 불교계를 주도할 경우 임기 내내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영남권(특히 親朴 성향이 강한 대구, 부산) 갈등에도 영향.” 문건은 “상황에 따라 어청수 청장의 자진 사퇴 카드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2009년 1월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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