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28일 이명박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인 세종시가 건설되고 있는 충남 지역을 방문해 이렇게 말한다. “일부에서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행복도시를 안 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여권에서 ‘이명박이 되면 행복도시는 없다’고 모략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 건설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차인 2009년 9월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를 통해 세종시 수정안 추진 방침을 처음 드러냈다. 침묵을 지키던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겠다며 공식 사과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은 이보다 훨씬 빨랐다. 집권 직후부터 비공개 조직을 꾸려 세종시 수정안 물밑 작업을 벌였다.

2008년 8월11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산하 국책과제비서관실이 작성한 ‘행복도시 관련 쟁점 사항 보고’ 문건을 보자(위 오른쪽). 당시는 ‘정부기관 이전계획 변경 고시’가 논란이 되던 시기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2008년 2월 정부 조직이 개편되면서 세종시로 이전할 정부 부처 조직과 이름이 바뀌었다. 통상이라면 변경 사항을 즉시 관보에 고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기약 없이 고시를 미뤘다. 그 상태로 1년이 넘어갔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라고 의심했다.

문건을 보면, 고시를 미룬 이유는 세종시 수정안 추진 때문이었다. 문건은 “새로운 방침이 결정될 때까지 고시를 유보하는 방안”과 “8월 중으로 고시하는 방안”을 검토해 ‘고시 유보’를 택한다. “정부의 정상 추진 의지를 의심하는 충청권의 반발이 예상되나, 추후 재고시 변경에 따른 신뢰도 손상의 위험은 회피 가능”해서다. 문건이 말한 “새로운 방침”이란 “정부기관 이전에 버금가는 규모로 제시 가능한 사업 대안”이다. 세종시의 핵심은 정부기관 이전인데, 이에 버금가는 “사업의 실체적 변경”을 검토했다.

이명박 청와대가 검토한 사업 대안은 크게 네 가지였다. 서울대 이전,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기타 공공기관 추가 이전, 대기업 유치다. 과학비즈니스벨트는 MB의 충청권 대선 공약이다. 정부의 변경 고시가 늦어지면서 행정도시로 내려올 정부기관을 축소한 뒤 과학비즈니스벨트로 빈자리를 대신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2010년 1월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공식 포함되었다.

문건은 “서울대 공대 이전”이 “비공식 접촉 결과 불가 결론”이라며, 그 대안으로 “교양과정+국제캠퍼스 이전(약 7000~ 8000명 예상)” “서울대병원 분원 건립”을 내세웠다. “서울대 제2캠퍼스로 묶어 상징적 효과 극대화.” 서울대 공대 이전은 세종시 수정안 논란에 불이 붙은 직후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세종시 수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가 ‘문건’에 등장

문건은 발표 시기도 검토하는데, “금년(2008년) 하반기 발표 시 공기업 선진화, 수도권 규제완화 등 여타 추진되고 있는 과제 등과 맞물려 갈등 관리가 어려움”을 이유로 2009년 1분기를 발표 시기로 정한다. 단, 대안은 “정치적 상황과 행정기관 이전에 대한 충청권의 집착 등을 고려해 deal(거래)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묶어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따라서 deal 전까지 이전과 관련한 어떠한 사업 확정·발표도 불가”하다. 세종시 관련 문제 제기는 “공기업 선진화 등이 마무리되는 10월 이후 전문가 기고 등을 통한 여론 조성에 착수”하며, “정부 차원의 입장 표명은 이상의 선행 작업 등을 통해 여건이 성숙된 이후에 추진”한다.

문건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 “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초민감 사안인 만큼 향후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BH 내 비공식 TF를 운영”한다고 적는다. 문건에 따르면 TF는 국책과제·국토해양·정무·행정자치비서관 및 균형위원회 기획단장으로 구성된다. 대안별 시나리오와 정무적 변수를 파악하고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수석실이 행복도시 총괄과 기타 기관 및 기업 유치를, 국정기획수석실이 서울대 유치 협상과 과학비즈니스벨트 내용 및 장소 확정을 맡는다. 각 비서관실에서 의견을 조정해 시나리오별 분석과 토론, 보완을 거쳐 최종 보고서를 VIP에 보고한다.

그런데 세종시는 2007년 7월에 이미 첫 삽을 뜬 사업이었다. 2008년 9월10일 국책과제비서관실이 작성한 ‘행복도시 후속조치 검토’(왼쪽 맨 아래)를 보면, 정부청사 1단계 1구간 착공과 관련해 “조달청의 시공업체 선정(약 90일 소요)·계약 등”을 활용해 “절차를 조정하여 착공을 최대한 지연(행안부)”한다고 되어 있다. “착공식은 생략하여 지역민들의 과도한 기대심리를 차단” “이미 공사 중인 부분은 설계 변경 가능성을 고려해 일정을 최대한 유동적으로 조정.” 문건은 “100만 평 이상의 대기업 유치는 고위층에서 비공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일체 보안을 유지하면서 유치 활동에 따른 사업 스케줄 및 입지 선정 문제 등은 관계관 회의 등을 통해 수시로 조율”한다고 했다.

이명박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안의 논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동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좌절돼 세종시로 대체안을 추진했다. 2008년 8월18일 국책과제비서관실이 작성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관 시절 해수부 이전불가 관철 사례 분석’ 문건(아래)을 보면, 노 전 대통령 자서전인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를 인용한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장관이 부산에 가 있으면 일주일에 5일은 서울에 올라와 있어야 할 형편”이고 “실익이 없고 업무의 효율성만 저해”한다며 부산 이전은 안 된다고 결론 내렸다는 대목이다.

문건은 이로부터 “시사점”을 도출한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출마 이전에 이미, 중앙행정기관 지방 이전이 비능률적”이며 “생각보다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지방 사람들이 행정기관 이전을 열망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적는다. 이는 “참여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활용한 정치적 효과 극대화를 위한 사업이었다는 세간의 판단을 뒷받침”한다고 해석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에 대한 홍보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후보 시절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2009년 11월에야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직접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의원은 “정치는 신뢰다”라며 반기를 들었다. 연이어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하며 세종시 수정안은 동력을 잃었다. 결국 국회 국토위원회와 본회의에서 부결돼 ‘이명박 대통령의 본심’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자명 김은지·김동인·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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