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이명박 정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을 벌였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자, 시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그해 5월 서울 도심에서는 100일 넘게 촛불집회가 지속됐다. 이명박 정부는 강경 대응을 하며 시민들을 ‘떼법·불법 시위꾼’으로 몰아세웠다. 촛불 정국이 지속되던 6월10일 이석연 당시 법제처장은 쇠고기 고시가 헌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터뷰했다. 차관급 인사가 공개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원칙을 중시한 이 처장은 같은 해 9월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불편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 KBS 사장을 비롯해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의 장들을 몰아내는 데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이 법제처장은 “정치적 고려로 인해 임기 중에 있는 기관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법치행정 원칙에 맞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청와대는 그의 발언을 단속하려고 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 그 실상이  담겨 있다. 이명박 청와대 대통령실에서 2008년 10월16일 생산한 ‘국정감사 일일 종합상황 보고’ 17쪽짜리 문건 마지막에는 ‘총리님 조치 건의’라는 부분이 나온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취했으면 하는 구체적 조치를 써둔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이석연 처장) ㅇ정책 현안에 대한 법제처의 입장은 정부의 법리적 판단으로 바로 연결되는 만큼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매우 크므로 정부의 정책 방향을 면밀히 파악해 일관된 답변이 될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할 것 지시(아래).” 이 부분에 바로 이어 이석연 당시 처장의 쇠고기 고시 관련 6월 인터뷰와 기관장 임기 관련 9월 법사위 발언을 덧붙여놓았다. 청와대가 국무총리에게 법제처장의 발언을 제어하라고 건의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법학 교과서에 나오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였는데도, 그때 청와대 쪽에서 자중하라는 취지의 말을 들은 건 사실이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도 당시 ‘총리님 조치 건의’라고 명시해둔 부분이 여럿 있다. 이명박 청와대 대통령실이 2008년 10월13일 생산한 ‘국정감사 일일 종합상황 보고’ 12쪽짜리 문건 마지막 부분이다. “▣국무회의 시 ㅇ근거 있는 지적에 대해서는 향후 국정에 적극 반영하되, 과도한 비판(종부세 등 세제 개편안에 대한 특권층 봐주기, 지역 편중·보은 인사 주장 등)이나 정치 공세(재정부 장관(강만수), 방통위원장(최시중), 경찰청장(어청수), YTN 사장(구본홍) 등의 퇴진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 지시(맨 아래).”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내용이 청와대 문건에 담겨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TK 편중 인사를 해 공직 사회에서 말이 많았다(〈시사IN〉 제76호 ‘권력 노른자위 TK 출신이 싹쓸이’ 기사 참조). 그럼에도 이명박 청와대는 이를 과한 비판이라며 국무총리에게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 또한 ‘명박산성’ 등을 쌓고 시민에게 물대포를 쏘는 등 촛불집회 강경 진압을 일삼았던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 사퇴 요구 등도 정치 공세로만 여겼다.

기자명 김은지·김동인·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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