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늘리고 노동자 살린다
  • 장영희 기자
  • 호수 61
  • 승인 2008.11.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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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고소득층 증세·중산층 이하 감세라는 조세개혁을 통해 의료와 교육 등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사회보장 지출을 늘릴 계획이다. 통상정책도 일자리 보호와 무역적자 축소에 초점을 맞출 &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 nomy, Stupid!)’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비록 선수를 빼앗겼다지만, 이 슬로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세계 최강의 권좌를 거머쥐게 했다. ‘변화’를 열망한 유권자들이 변화를 ‘경제’에서 찾은 것은 출구조사에서도 드러난다. 62%의 응답자가 ‘경제’가 투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답했다.

똑같이 경제를 앞세워 당선했지만, 미국 오바마 당선자와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이 거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MB노믹스의 근간은 감세, 규제 완화, 정부 역할 축소이지만, 오바마노믹스는 증세, 규제 강화, 정부 역할 확대를 지향한다. 이 대통령이 기업·시장·성장·자유무역 등을 중시한다면 오바마 당선자는 노동·규제·분배·공정무역 등에 초점을 둔다. 김영삼-클린턴 이래 계속된 한국과 미국 정부 간 이념적 성향 차이는 곳곳에서 엇박자를 낳았다. 피차 국익을 향해 움직였지만, 성향이 같았다면 내뿜지 않았을 불협화음이 났고, 실제로 아슬아슬한 긴장과 충돌을 유발했다.

오바마 당선자가 숨돌릴 틈도 없이 가장 먼저 달려든 과제는 물론 경제다. 그의 목전에는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실물경제를 회생시켜야 하는 난제가 도사린다. 그가 당선 후 가장 먼저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을 만나 경제 회생 방안을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뉴욕 타임스는 10월5일자에서 오바마 당선자가 헤쳐가야 할 상황이 남북전쟁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비견할 만큼 엄중하다고 보도했다. 상당수 경제 전문가는 오바마 당선자가 루스벨트의 ‘뉴딜’을 이어받으리라고 예측한다. 뉴딜(신정책)은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라는 공식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단순 건설 사업이 아니다. 경제 시스템을 자유 방임에서 국가 개입으로 바꾸고 소득세 증세라는 재분배 정책을 통해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고 미국을 중산층 중심 사회로 만든 획기적 정책이었다.

강력하고 폭넓은 경기부양책 추진

미국의 경제 상황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모든 실물 지표가 일제히 내려꽂히는 중이다. 2009년 1월20일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는 지금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리라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따라서 ‘오바마노믹스’로 통칭되는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은 루스벨트 행정부 이래 70여 년 만에 가장 강력하고도 폭넓은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특징지워질 전망이다.

차기 정부가 만나게 될 경제 환경은 최악이지만, 정치 환경이 우호적인 것은 동력이 된다. 11월4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은 상원에서 6석을 추가해 56석, 하원에서 20석을 늘려 256석을 확보함으로써 부시 행정부 때보다도 한층 더 의회를 장악했다. 지난 100년의 미국 역사에서 경제위기 상황에서 의회 주도권을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한 개혁 인프라를 갖춘 대통령으로는 윌슨·루스벨트·존슨 대통령 정도에 그친다. 여론조사 기관 ‘조그비’ 창립자인 존 조그비는 “이들의 뒤를 이어 40여 년 만에 오바마는 미국 사회를 재설계하고, 기후변화 등 세계 현안에도 적극 대응할 것이다”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Reuters=Newsis
지난 2월 오마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왼쪽 두 번째)가 GM 공장을 방문해 노동자와 악수하고 있다. GM 등 미국 자동차 ‘빅3’는 도산 위기에 몰렸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 대학 교수 견해대로 차기 정부는 금융 부실을 제거해 금융위기를 지나가는 현상으로 만듦으로써 미국의 저력을 재차 확인시킬 수 있지만, 정작 오바마를 시험대로 올릴 것은 미국의 ‘장기적 힘’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미래를 재설계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이것은 오바마 당선자가 하려는 개혁의 성패와 직결된다. ‘망가진 미국’이라는 부시 정부 유산을 오바마는 ‘위대한 미국’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오바마 개혁은 조세개혁에서 출발한다. 오바마는 연소득 25만 달러(약 3억2000만원) 이상인 5% 남짓한 고소득층에는 연방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9.6%로 늘리는 등으로 세금을 더 물리지만, 95% 중산층 이하 국민에게는 세금을 깎아줄 작정이다. 이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기존 이분 구도를 깬다. 감세로 기업가 정신을 고양해 성장을 추구한다는 공화당 노선과 다른 것은 물론이지만 전 계층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복지 강화의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민주당 노선과도 다소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부유층 세금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조세정책센터 분석에 따르면, 2009년 소득순위 상위 1%의 세후 소득은 7.0%(9만3709달러) 줄어든다. 상위 0.1%는 8.9% 줄어든다. 반면 하위 20%는 5.5%(567달러), 하위 40%는  세후 소득이 3.6% 늘어난다.

오바마에게 세금은 재정 수입원인 동시에 부의 재분배 수단이다.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또는 감면 축소로 거둬들인 재원을 사회 취약층에 대한 복지 강화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소외된 계층에 대한 지원이 장기 성장에 필수라고 보는 것이다. 선거 유세에서 반향이 컸던 ‘하위계층에서부터의 변화(Bottom-up Change)’는 서민층을 위한 의료와 교육 등에서 국가 차원의 사회보장 관련 공공서비스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오바마 정부는 당분간 성장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소득 재분배를 통한 두꺼운 중산층 만들기에 골몰하리라 보인다. 성장을 통해 그 과실을 퍼지게 한다는 ‘스필오버(spill over)’ 효과 혹은 ‘낙수 효과’를 거부하고 상향식의 ‘분수 효과’를  채택한 것은 부시 정부의 감세를 통한 성장 전략에 대한 반작용 성격도 띤다. 감세정책은 고소득층에만 혜택이 돌아갔고, 클린턴 정부가 가까스로 흑자로 돌려놓은 재정을 다시 적자로 되돌렸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수습 해법에서도 중산층과 서민 위주의 철학이 녹아 있다. 구제금융을 통해 금융기업 회생에 주력한 부시 행정부와 달리 주택 차압 방지 조처 같은 주택 대출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그에게 경제의 동력이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인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 국내에 남아 일자리 창출에 기여

   
 
하는 기업은 세금을 깎아주지만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세금 혜택을 중단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무역’ 틀에서 한·미 FTA 처리할 듯

따지고 보면 오바마 정부의 통상정책도 일자리 보호라는 경제철학에서 비롯한다.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일자리를 줄이거나 무역 적자를 늘린다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한’ 자유무역과 노동·환경 기준 준수는 이런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이다.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와 재협상해 NAFTA를 개정하겠다거나 양국 간 자동차 판매량 차이를 이유로 한·미 FTA 비준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기저에서 출발한다.

환경정책도 ‘석유 자본’을 지지층으로 하는 부시 정부와는 판이하다.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앞으로 10년간 1500억 달러를 친환경 에너지원 개발에 투자함으로써 친환경 일자리, 이른바 ‘그린 칼라’를 500만 개 창출할 계획이다.

이런 오바마 정책은 많은 경제학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지만, 개혁의 전도는 밝지 않다. 당장 월가로 대표되는 시장주의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부유층의 반발도 거셀 것이다. 이보다 심각한 것은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4548억 달러를 기록했다. 내년에는 누적 적자가 1조5000억 달러에 이르리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판이다. 당장 금융위기 수습 및 경기 부양에 쏟아야 할 돈이 아직도 얼마가 될지 모르는 판국에 오바마 개혁의 상징 같은 사회복지 정책은 실현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장기 추진이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실업수당 확대 같은 복지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재정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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