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nhua북·미 정상회담이 예상보다 빨리 열릴 수도 있다. 위는 지난 11월2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군 ‘만경봉’팀과 ‘제비’팀 간 축구경기를 관람했다며 공개한 사진.

오바마 행정부의 탄생은 ‘변화’를 기대하는 미국 국민의 여망을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난 8년간 군사적 유일 패권을 재정립하려던 미국의 일방주의에 시달려온 국제사회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것이다.
11월4일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하원 의원 435명 전원과 상원 의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35명을 선출하는 의회선거도 함께 치러졌다. 이번 상·하원 선거에서는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 이어 민주당이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이처럼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함에 따라 오바마가 내세운 각종 공약은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제정치 학자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외정책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양당 모두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건국이념이 중심이 되어 자유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 등 통일된 전통 가치를 공유한다. 이념적으로만 따지면 큰 차이가 없을 수 있겠지만,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 발생한 작은 구름조각이 태평양을 건너면서 폭풍우로 바뀌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8년간의 정책이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대부분 뒤엎어졌던 것처럼, 지지율 20%대에 머물렀던 부시 행정부의 뒤를 잇는 오바마 정부가 기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오바마 선거 진영의 외교·안보 공약을 총괄 지휘한 수전 라이스는 차기 미국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BB-AB(Be fore Bush, After Bush)’로 규정했다. 이 말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부시 이전의 정책이 계승되고 부시 이후부터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다. 부시 행정부의 ABC(Anything But Clin ton)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한·미 동맹 위해 더 많은 돈 써야 할지도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로부터 두 개의 전쟁이라는 부정적 외교·안보 유산을 물려받게 된다. 지난 7월15일 워싱턴에서 오바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연설을 통해 차기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을 △이라크 전쟁의 책임 있는 종료 △알 카에다·탈레반과의 전투 종식 △테러 집단이나 불량국가로부터 핵안전 확보 △진정한 에너지 안보 확보 △21세기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동맹관계 재구축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16개월 안에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하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란 핵문제를 풀기 위해 고위급 직접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다.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타이·필리핀 등과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아시아에서 선도적 역할을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아시아와 동맹관계를 중시하고 부시 행정부에서 한·미 양국 간에 동맹 재조정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BB-AB정책을 채택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 관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오바마 차기 정부가 국방비를 대폭 삭감할 것으로 보여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간 방위비 분담 협상과 주한 미군기지 이전 협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 측은 우리 정부에 더 많은 비용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우리 정부에 요청했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비전투 지원(non combat help)’ 요구도 재연될지 관심거리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설 복구, 의료 지원과 같은 비전투 요원이나 지방재건팀(PRTs)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해올 수도 있지만,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명할 경우 그 대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달라고 수정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래저래 한·미동맹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할지 모른다.

내년 중에 북·미 외교대표부 교환 설치 가능

오바마 당선자의 공약으로 볼 때 북·미 관계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가리라 보인다.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북·미 간에 긴장이 고조됐을 때, 미국 의회의 요청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은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다. 페리 조정관은 1999년 5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미 간 대화를 가졌고, 이를 토대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법을 담은 ‘페리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를 통해 북·미 간에 당면한 안보문제를 봉합했으며, 그 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있고 나서 북·미 관계의 개선이 본격 이루어졌다.

2000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차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친서를 전달했다. 그 뒤 북·미 관계의 전면 개선, 정전협정의 공고한 평화보장체계 전환,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 준비를 위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등의 합의를 담은 ‘북·미 공동 커뮤니케’를 발표했다. 실제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같은 달 25일 평양을 방문했다.

고위급 인사들의 상호 방문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준비되고 있었지만,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북한을 불량국가,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악의 세력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북·미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ABC정책을 내세우며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이 약속한 ‘북·미 공동 커뮤니케’의 내용을 무시했다. 공동 커뮤니케의 합의대로 상황이 진전됐다면 2000년 12월쯤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연합뉴스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정책팀장인 프랭크 자누지 전문위원.

이제 또다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북·미 관계의 출발점은 2000년 ‘북·미 공동 커뮤니케’가 될 수 있다. 이 공동 커뮤니케가 새로운 북·미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면 오바마 당선자의 임기 중에 북·미 정상회담이 재추진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자는 선거운동 초기에 “집권 1년 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10월2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한반도팀장 자누지 전문위원은 워싱턴의 한 모임에서 한반도 정책을 설명하면서 “오바마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이란의 지도자를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북한이 만나자는 제의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1년 안에 두 지도자가 만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2009년 상황은 2000년 당시와 다르기 때문이다. 자누지 한반도팀장도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매우 신중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 만큼 먼저 한국과 이 문제를 상의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핵폐기 이행 로드맵의 확정과 같이 획기적인 북핵 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북·미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다.

북·미 관계의 개선과 더불어 한반도 냉전구조도 빠르게 해체되어갈 것이다. 이르면 내년 중이라도 평양과 워싱턴에 외교대표부가 교환 설치될 수도 있다. 이미 평양과 워싱턴에는 공관이 들어설 부지가 마련돼 있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때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하고 부지 확보를 끝냈기 때문이다. 당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있던 북한으로서는 평양거리에 성조기가 날리고 미국 외교관 차량이 달리는 것을 허용할 만큼 자신감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초 약속을 번복하고 북한은 미국과의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포기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 통해 북핵 문제 해결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 지난해 3월 뉴욕을 방문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연락사무소보다 한 계단 높은 외교관계를 희망했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전에 ‘10·3 합의’ 이행이 종료되고 북핵 문제의 제3 단계 진입이 가능하면 평양과 워싱턴에 외교대표부가 설치될 수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제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촉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핵 문제가 진전되고 남북 관계도 개선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함께 ‘10·4 정상선언’에서 합의된 ‘종전선언을 위한 3~4자 정상회담’도 재추진될 수 있다. 이를 전후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북핵이 완전히 해결된 뒤가 아니라 북핵을 완전히 폐기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회담이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한자리에서 만나 종전선언을 채택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최종적인 핵폐기 결단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되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목표 연도는 언제가 좋은가. 아무리 조건이 성숙했다 하더라도 정치 일정이 맞지 않으면 큰일을 성사할 수 없다. 북한으로서는 주변 강대국이 자신들의 국내 문제로 한반도 문제에 간섭하기 어려운 시점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이 매우 중요하고도 적당하다. 2012년은 6자회담 참가국 중에서 일본을 제외한 남북한과 미국·중국·러시아에서 리더십 전환이 일어나는 해이다. 2012년 초에는 러시아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연임하든가 푸틴 총리가 복귀하게 되고, 타이완에서도 총통 선거가 있다. 2012년 말에는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고, 중국에는 2013년부터 제5세대 지도부를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된다. 북한도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하고 있어 후계 정권의 등장 여부가 주목된다.

2012년까지 핵폐기가 종료된다면 북·미 수교와 남북 평화협정도 같은 시기에 체결될 것이며 이로써 한반도 냉전구조가 완전히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 4년에 걸친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바마 당선자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이라면 가능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로드맵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 정부도 한반도 문제 해결에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자명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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