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후보만 보면 ‘클린턴 3기 행정부’
  •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 호수 61
  • 승인 2008.11.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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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 정치 경험과 행정 경험이 전무해 인맥을 쌓지 못한 오바마 당선자는 클린턴 행정부 출신 사람을 많이 기용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에 발탁될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구관이 명관인가.’ 내년 1월 하순 공식 출범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참여할 인사의 면면이 속속 드러나면서 요즘 워싱턴 정가에서 널리 회자하는 말이다. 오바마 정권 인수팀을 이끌 인물로 일찌감치 낙점된 존 포데스타를 비롯해 재무장관·국무장관·국방장관·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요직에 거론되는 사람 대부분이 예외 없이 클린턴 전 민주당 행정부 출신 인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이 입각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출신의 관료들이 주류를 이루는 ‘클린턴 3기’가 되는 게 아니냐는 염려마저 나온다.

우선 핵심 실세인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만 해도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고위 보좌관 출신인 램 이매뉴얼이 이미 낙점된 상태다. 오바마 당선자와는 시카고 동향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이매뉴얼은 2002년 하원 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하며 승승장구한 야심 많은 중진 정치인으로 꼽힌다. 올해 49세인 그는 이미 수주일 전 오바마로부터 자기가 당선되면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도 언젠가 하원의장을 해보겠다는 정치적 야심 때문에 결심을 미뤄오다 11월6일에야 비로소 수락했다.

장관급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행정부 내 다른 어느 자리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이매뉴얼의 구실에 관심이 쏠린다. 오바마 당선자의 일부 측근은 이매뉴얼이 업무 능력은 탁월하지만 성격이 불같은 데다 당내 친화력에도 문제가 있어 그의 비서실장 기용에 염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오바마는 “차기 행정부의 최우선 중심 과제인 경제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다”라고 이매뉴얼을 치켜세웠다.

오바마 행정부 인사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인물은 경제위기를 헤쳐갈 주무 부처인 재무부 사령탑이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를 보면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와 로버트 루빈이 각광받고 있고, 그 뒤를 이어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은행장과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거론된다. 이들 중 볼커는 오바마가 선거 유세를 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경제 문제를 조언해왔다고 알려져 본인이 원하다면 입각은 떼어논 당상이지만 정작 본인은 재무장관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월가의 실력자인 루빈 전 재무장관은 현재 시티그룹 이사라는 것이 흠으로 꼽히고,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은행장은 실력은 인정받지만 오바마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는 점에서 발탁 가능성이 낮다. 그 때문에 재무장관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 총장까지 지낸 뒤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있는 서머스가 1순위로 꼽힌다. 평소 부시 행정부의 경제 실정을 신랄히 비판해온 서머스는 최근 금융위기가 확산되자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근거한 제2의 경기부양안을 제창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재무장관직 못지않게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큰 영향을 줄 인물로 유세 기간 내내 그의 경제 참모역을 맡아온 제이슨 퍼먼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와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관직 경험이 없어 경제 관련 실무 부처를 이끌어가기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오바마는 퍼먼 교수에게는 국내외 경제정책 조정 업무를 관장하는 백악관 직속의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직을 맡기고, 굴스비 교수에게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직을 맡길 것으로 관측된다.

국방·안보 분야에 공화당 인사 기용할 수도

취임 벽두부터 오바마 대통령을 괴롭힐 요인 중 하나가 안보 문제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을 상대로 공공연히 위협론을 제기하며 국방력 증강에 나선 러시아를 비롯해 이란의 핵개발 야욕과 북한 핵문제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두 곳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따라서 핵심 외교 안보 부처인 국무부와 국방부 수장과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누가 맡느냐도 커다란 관심사다. 현재 국무장관 후보로는 자천타천으로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을 비롯해 리처드 루가 공화당 상원의원, 그리고 북한과도 인연이 깊은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들 중 케리 의원은 일찌감치 오바마를 지지하고 나서 점수를 톡톡히 딴 상태이고, 루가 의원은 비록 당적은 공화당이지만 오랜 세월 상원 외교위원회에 몸담으면서 초당적 입법 활동으로 두루 존경받는 인물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중도 하차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리처드슨 주지사도 이번에 오바마 당선에 큰 몫을 한 히스패닉 유권자의 표심을 움직이는 데 기여한 데다, 스스로도 폭넓은 외교활동 경험을 자랑하고 있어 국무장관감으로 거론된다. 특히 부시 행정부에서 북핵 외교를 진두지휘한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뒤를 이을 후보로는 오바마의 한반도 외교자문을 맡아온 프랭크 자누지 상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이나 오바마의 아시아 외교자문 총책을 맡았던 제프 베이더 전 무역대표부 대표가 거론된다. 자누지는 국무부로 가지 않는 대신 자기가 모시던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를 따라 부통령실로 옮겨 막강한 권한을 갖는 비서실장에 기용될 가능성도 크다.

국방장관직의 경우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일정 작업에 깊숙이 간여해온 현 로버트 게이츠 장관의 유임설이 나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와의 절연 차원에서도 오바마 당선자는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관이나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해온 척 헤글, 또는 상원 군사위원회의 잭 리드 민주당 의원을 지명할 가능성이 높다.

국무·국방 장관직과 함께 3대 핵심 안보 요직으로 꼽히는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된 인물로는 클린턴 행정부 관료 출신인 수전 라이스와 예일 대학 법대 출신 변호사이자 클린턴 행정부 시절 해군장관을 지냈고 오바마 후보의 핵심 안보자문역으로 뛴 리처드 댄지그를 꼽을 수 있다. 오바마처럼 흑인인 라이스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 국제조직국장을 거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천거로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까지 오른 외교통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댄지그가 행정 경험이나 지명도 면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고, 라이스가 부보좌관을 맡는 구도가 유력하리라 내다본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요직 후보 대다수가 클린턴 행정부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이들이 과연 오바마가 그토록 강조해온 ‘변화’에 걸맞은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오바마 자신이 워싱턴 중앙 정치무대 경험은 물론 행정 경험이 전무해 나름의 인맥을 쌓지 못한 터라 클린턴 행정부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석도 없지 않다. 오바마는 현재 ‘일 중심’의 인사를 강조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리처드 루가나 척 헤이글 의원처럼 공화당 인사를 과감히 기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바마가 어떤 인선 기준으로 입각 명단을 선정할지 조만간 드러나겠지만, 경제위기는 물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비롯한 총체적인 비상 시국에 처한 상황을 감안할 때 다소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구관’을 대거 기용하는 쪽으로 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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