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평화 무드에속 타는 미쓰비시
  • 홍상현 (<게이자이> 한국 특파원)
  • 호수 562
  • 승인 2018.06.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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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본 보수 언론의 비판이 거세다. 5대 일간지 최대 광고주인 미쓰비시는 미·일 대북 군사 압박의 최대 수혜자였다.

일본어에 ‘모기장 밖(蚊帳の外)’이라는 말이 있다. 무시당하거나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일본의 시민·야당 연대와 진보 언론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즐겨 붙이는 수식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린 아베 총리는 ‘재팬 패싱’으로 국제적으로도 ‘모기장 밖’ 신세가 되었다. 과연 아베 총리에게 출구는 있을까?

아베 총리는 북·미 정상회담 다음 날인 6월13일 관저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동성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요청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했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 이루어진 미·일 정상회담이 나름 결실을 거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의 지적처럼, 아베 총리는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공헌한 바 없다. 앞으로 ‘외교 승부수’를 띄우더라도 주변국들이 그를 중요한 ‘플레이어’로 대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동안 아베 총리의 외교 행보는 국내 핵심 지지층을 의식한 퍼포먼스 성격이 짙었다.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으로 그 퍼포먼스마저 효과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 총리실 페이스북6월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총리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군사적인) 대북 압박 정책에 무임승차해왔다. 북·미 정상회담 뒤 이 노선을 흔드는 중대 사태가 벌어졌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일본 보수 언론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요미우리 신문>은 “양보가 지나친 것 아니냐. 북한은 서울에 궤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화포를 최전방에 배치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아베 정권의 실질적 ‘관보’ 노릇을 하는 <산케이 신문>도 “경제제재와 더불어 효과적으로 작용해왔던 군사적 압력을 이제 와서 약화시키려 한다”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미국의 군사적 압력 완화와 경제 지원을 획득함으로써 새로운 핵 개발을 위한 시간 벌기다”라며 북한의 숨겨진 의도를 부각시키려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보수 언론의 비판은 다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런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에 대해 이렇게 쓴소리를 내는 것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아베 총리도, 일본 보수 언론도 ‘북·미 데탕트’를 반기지 않는 배경에 한 기업이 얽혀 있다는 점이다. 이 기업은 방위장비청과 그 상급기관인 방위성 관료들이 은퇴 뒤에도 재취업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 일본 최대 진보 매체 <신문 아카하타>는 2015년 가장 많은 낙하산 인사가 이 기업에 안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 기업은 1965년부터 반세기 동안 방위성과의 계약액 순위에서 ‘원톱’ 자리를 지켜왔다. 바로 미쓰비시다.

미쓰비시는 일본 패망 직후인 1946년 10월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재벌 해체 정책으로 잠시 단죄를 받는 듯했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일본을 ‘반공의 교두보’로 삼으려던 미국에 의해 부활했다. 그 뒤 기업 합병, 해외 진출 강화, 항공·우주·기계 부문으로 영역 확장 등 나름의 혁신을 거듭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북·미 데탕트는 미쓰비시의 영업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미·일의 대북 군사 압박의 최대 수혜 기업이 바로 미쓰비시이기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5대 일간지(아사히·요미우리·산케이·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의 최대 광고주 가운데 하나다. <도요게이자이 신문> 데이터사업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파제로(Pajero)라는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 군용 차량을 제작해온 미쓰비시 자동차의 광고비는 830억 엔으로 일본 광고비 상위 100대 기업 중 13위, 미사일 등 첨단 무기를 제조하는 미쓰비시 전기는 325억 엔으로 31위였다. 이 두 계열사의 광고비만 합쳐도 동종 업계 2위인 가와사키 중공업(112억 엔) 광고비의 10배가 넘는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에 대한 보수 신문의 비판이 논조에 따른 것이라고만 여길 수 없는 대목이다.

미쓰비시 주식 보유한 장관이 밀어붙인 정책은

ⓒAP Photo6월12일 일본 도쿄 신바시 역에서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는 <요미우리 신문> 호외가 배포되고 있다.

미쓰비시는 자민당에 대한 정치 후원금 기부에서도 동종 업계 1위(2016년 기준)다. 참의원 선거가 있던 2016년, 자민당의 지출 금액은 전년 대비 11.2% 늘었다. 일본의 정당 중 가장 많은 증가율을 보였다. 방위성은 같은 해 미쓰비시 중공업과 16식 기동 전투차량, 지대공 유도탄 패트리엇 3(PAC3) 등을 계약했다. 계약 금액은 4532억 엔으로 방위성 전체 계약 금액의 24.6%를 차지했다.

미쓰비시는 2012년 12월 제2기 아베 정권 출범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계열 금융사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2015년부터 자민당에 대한 정치 후원금 기부를 재개했다. 미쓰비시와 정치인들과 유대 관계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아베 총리가 자민당 간사 시절 직접 정계에 입문시킨 이나다 도모미 의원과의 관계다. 이나다는 2016년 8월 방위장관에 취임했는데, 이때 공개된 재산 공개 목록에 따르면 남편 명의로 5개 군수업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미쓰비시 주식이 가장 많았다. 2012년 12월 행정개혁 담당 장관으로 처음 입각할 당시에는 보유하지 않았던 주식이다. 투자로 여길 수 있지만 그녀가 밀어붙인 정책이 뒷말을 낳았다. 이나다는 행정개혁 담당 장관 재임 중이던 2014년 4월, 이전까지 미쓰비시 등 일본 군수업체에 채워져 있던 유일한 족쇄인 ‘무기 수출 3원칙(공산권, 유엔 결의 등에서 무기 수출을 금지한 국가, 국제분쟁의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하는 일본의 법령)’ 철폐를 주도했다. 무기 수출 3원칙 철폐는 미쓰비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해 7월 패트리엇 2 미사일 목표 추적 장치의 미국 수출이 결정되었고, 10월에는 데이비드 존스턴 오스트레일리아 국방장관과 에토 아키노리 일본 방위장관이 소류(Soryu)급 잠수함(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형 잠수함으로 16SS라고도 불린다) 기술 이전에 합의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 두 품목의 생산이 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업체였다(<시사IN> 제515호 ‘군함도의 가해자, 미쓰비시 중공업의 오늘’ 기사 참조).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아베 총리와 미쓰비시의 관계는 향후 어떻게 변하게 될까? 분명한 사실은 125년간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미쓰비시와 달리, 정치적 파산이 임박한 아베 총리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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