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 공동성명 외 비공개 합의문 있을까?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호수 562
  • 승인 2018.06.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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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두고 ‘실패한 비핵화 약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비판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세상은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서명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한반도의 모든 관계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즉각적으로 비핵화를 시작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공군본부 제공2017년 3월 한반도 상공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하는 모습.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지난 70년 동안 적대 관계였던 양국의 정상이 만나 화해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세기의 담판’이라 할 만하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6·12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반도 평화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번 정상회담의 백미는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와 새로운 평화 시대를 알리는 ‘6·12 북·미 공동성명’의 채택이다.

이번에 채택된 공동성명의 내용은 새로운 북·미 관계의 모색,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 미군 실종자·유해 발굴 등 크게 네 가지다. 네 번째 조항은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해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에서 세 번째 합의 내용은 어찌 보면 새로울 게 없는 듯하다. 하지만 실무회담이 아닌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인 만큼 합의 사항의 ‘순서’가 중요하다.

지난 70년간 적대 관계이던 북한과 미국 사이의 첫 정상회담이므로 가장 먼저 양국 관계의 개선을 선언하는 게 순서다. 오랜 적대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대적인 정전체제를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체제의 수립을 약속한 것이다. 이러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에 걸림돌이 무엇일까? 북핵 문제이다. 공동성명 제1·2·4조항의 주체가 미국과 북한인 데 비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행하기로 한 제3항의 주체가 북한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핵·미사일을 포기하겠다며 정상회담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3일 수소폭탄 실험, 11월29일 미국 본토에 도달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화성 15호) 시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두말할 것 없이 비핵화였다. 그런데 공동성명에 ‘4·27 판문점 선언’과 같은 문구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D)’로 표현되었다.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왔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미치지 못한다. 일부 전문가와 언론은 ‘실패한 비핵화 약속’ ‘반쪽의 성공’이라는 등 성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비판적 평가가 나오게 된 데는 미국 측의 책임도 없지 않다. 5월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CVID를 강조했고, 북·미 정상회담 바로 전날인 6월11일 밤 11시(현지 시각)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번 합의문에 CVID가 담겨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 고위층의 발언이 있었던 만큼, 공동성명에 CVID 표현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지난 4월27일 ‘판문점 선언’에 담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특히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합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비판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AFP PHOTO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사일 엔진 시험장(사진) 폐쇄를 약속했다.

첫째, 북한은 2000년대 초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CVID 용어를 사용할 때부터 이 용어가 패전국에나 적용되는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지난 5월16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담화에서도 CVID 용어를 비난했다. 특히 북한은 ‘비가역(I,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표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6월13일 폼페이오 장관은 ‘완전한 비핵화’에 ‘검증’과 ‘비가역’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공동성명 채택을 위해 미국이 일정 부분 수위를 조절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양국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을 실무급 합의문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거 비핵화와 관련된 실무급 합의문으로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와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문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언급한 뒤, 그에 상응하는 조치로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정상화와 핵무기 불위협·불사용 약속 등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명기했다. 9·19 공동성명 제1조에서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했고, 그 상응 조치로 북·미 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를 약속했다. 9·19 공동성명이 실무 차원에서 비핵화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비핵화와 그에 대한 상응 조치를 나열한 것이라면, 이번 6·12 공동성명은 북·미 정상이 관계 정상화를 통해 큰 틀에서 비핵화라는 현안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담겼다. 실무회담의 잣대로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눈여겨볼 대목 가운데 하나는 공동성명 서명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서명한 문서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성명에는 나중에 합의한 것들은 포함돼 있지 않다”라고 밝혀 비공개 합의문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공동성명에도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 협상을 진행한다’는 항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후속 협상이 당장 시작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비공개 합의문의 존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 때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합의문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컨피덴셜’로 분류된 비공개 합의문이 따로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이 합의문에는 양국의 불신 관계를 보여주듯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취해야 할 세부적인 이행 문제가 다뤄져 있었다.

공동성명 외에 비공개 합의문 있을까

양국 정상이 서명한 공동성명 외에 비공개 합의문이 있는지 아직 확인하긴 어렵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사실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나, 주한 미군, 북한 제재 해제에 대해 언급했다. 전문가들이 궁금해했던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사전에 실무진으로부터 부속 합의문에 담길 만한 내용을 브리핑받고 충분히 숙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답변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벌써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당장 6월14일 개최된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도 논의되었다. 오는 8월 예정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도 미국 본토에 도달 가능한 강력한 ‘백두산 엔진’ 공장의 설비 가동을 중단하리라 보인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조심스럽게 “2년6개월 내에 북한의 ‘주요 비핵화’가 달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도중 “많은 이들이 이 회담을 판타지나 공상과학영화로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김 위원장 말처럼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6·12 북·미 공동성명은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로 나아가는 담대한 변화의 첫발에 불과하다. 지난 70년간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이 땅에 사는 많은 이들의 꿈이 하나씩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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