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러 와서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뜻밖의 경험을 했다. 오타와 강 건너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공원 잔디 위에 자리를 폈는데, 근처에 있던 백인 노인들이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10세, 3세였던 우리 아이들이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급기야 할머니 한 분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아이들이 위험한데 왜 그냥 두고 보느냐?” 그분은 우리 아이들이 물가에 너무 가까이 간다고 여겼던 것 같다. “주의하겠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지나친 간섭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론토에 자리 잡고 살다 보니 그런 간섭은 퍽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어린아이에 관한 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보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모른 척할 수도 없거니와, 만약 그랬다가는 그것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10월 미국령 괌에서 승용차 안에 어린 자녀 둘을 두고 쇼핑하다가 체포된 한국인 판사 변호사 부부가 있었다. 부모도 문제지만 그것을 보고 신고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어린이 보호에 대해서는 캐나다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캐나다에서 사회 안전을 이야기할 때 어린이 보호에 앞서는 가치란 없다. 학교 주변에서 자동차는 늘 속도를 줄여야 하고, 등하교 시간에는 아예 차량 진입이 금지되는 도로가 많다.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올리고 서 있으면 주변의 모든 자동차는 정지해야 한다. 실수로라도 움직였다가는 교통 위반 가운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캐나다 각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만 12세가 되기 전까지 어린이들은 보호자 없이 바깥에 나가거나 홀로 집에 있을 수 없다. 교사나 의사는 어린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흔적을 발견하면 관계 당국이나 경찰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주정부 내에 ‘어린이·청소년 서비스부’가 있고, 토론토에는 주정부 지원을 받는 비영리기구 아동보호협회(CAS)가 설치되어 소속 전문가들이 어린이 학대 등에 관한 문제를 전담한다. CAS는 캐나다 건국 8년 만인 1875년에 설립되었다.
캐나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초기 이민자의 가정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부분은 체벌에 대한 문화 차이에서 연유하는 ‘범죄’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할 수 없고 정신적 학대도 그것 못지않게 엄격하게 다루어진다. 대개 부모와 자녀가 격리되어 조사받는데 현장에서 체포된 ‘현행범’은 자녀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받게 된다. 이후 내려지는 판결에 따라, 극단적인 경우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할 수도 있다. 설사 자식이 부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도 부모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젊은 한국인 부모는 잠든 아이를 집에 두고 잠깐 외출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잠에서 깬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 우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사회 공동체이다. 어린이들은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하는 사회의 일원이니, 낯선 할머니가 공원에서 그렇게 간섭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곳이 바로 캐나다 사회이다.
어린이에 대한 보호는 경제적 지원으로도 나타난다.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최저 생계비, 곧 자녀 양육수당(Canada Child Benefit)은 가구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데, 1명당 최대 월 646 캐나다 달러(약 55만원)까지 지원받는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18세 이하 모든 어린이·청소년은 어떤 환경에서도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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