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닐라 레비네르 스톡홀름 대학 교수(사진)는 스웨덴에서 법률과 아동 권리의 관계를 연구해온 사회법학자이다. 특히 1979년 세계 최초로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된 이후 스웨덴 사회와 각 가정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가 그녀의 주요 관심사다. 레비네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 체벌금지법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성공은 의지만 있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가능하다. 레비네르 교수를 지난 5월17일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에서 만났다.

ⓒ시사IN 조남진페르닐라 레비네르 교수는 “체벌금지법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1979년 체벌금지법 제정 당시 반대 여론은 없었나?당시 체벌금지법은 아동 권리 측면도 있었지만 주로 공공의료 관점에서 진행됐다. 체벌이 아이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는 명백한 의학적 증거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체벌 금지 논의는 주로 의사들이 이끌었다. 반대파가 거의 없었다.그게 어떻게 가능했나?당시 스웨덴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은 사회였다. 전문가들이 ‘그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꺼이 믿었다. 아동의 지위와 존엄성에 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졌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컸다. 곳곳에 아동 클리닉, 아동센터가 생기고 대안 훈육 방법을 알려주고 지원해주었다. 그래서 부모들이 새로운 법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스웨덴이 애초 자녀 체벌 문화가 약했던 건 아닌가?전통적으로 스웨덴 부모들도 체벌을 했다. 1960~1970년대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 대부분이 아이들을 때렸다. 나는 1973년에 태어났는데, 우리 부모는 분명히 맞으면서 자랐다. 나는 부모에게 맞지 않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내 세대에서 맞고 자란 비율이 50%가량 된다.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때린 적이 없다. 항상 부모로서 실패하긴 하지만 체벌은 내 옵션이 아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스톡홀름 같은 지역에서 1950년대, 1980년대, 2000년대에 각각 부모가 된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 스스로 ‘롤모델 부모’라고 생각합니까?” 1950년대 부모는 “아니다”, 1980년대는 “음, 그냥저냥”, 2000년대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 변화가 보이나?
법 때문에 바뀌었나?
변화가 법 때문인지 사회적 논의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법 제정 이후 그것을 알리는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이 대단했다는 점이다. 브로슈어, 정보 회의, 미디어 광고…. 특히 스웨덴 사람들은 우유를 많이 마시는데 우유팩에 만화로 체벌금지법 정보를 싣기도 했다. 이런 캠페인 덕분에 도입 2년 만에 90%에 이르는 부모들이 그 법을 알게 됐다.

다른 여건들도 부모의 변화에 도움이 됐나?그때 스웨덴은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제 수준이 높았고 무상보육,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부모들의 스트레스가 적었고 문제가 발생하면 고립되지 않고 복지 시스템에 따라 도움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경제가 악화됐고 사회 통합도 잘 되어 있지 않다. 전문가와 정치인, 정부에 대한 신뢰도 낮아졌다. 만약 지금 스웨덴에 그 법이 도입됐다면 아마 훨씬 더 정착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예전 스웨덴처럼 제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는 체벌금지법을 도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자녀 체벌 금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는 세계 여러 나라들을 가봤다. 터키, 세르비아,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결론은, 이 법은 어느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다만 그 열쇠를 각 나라에서 찾아야 한다. 경제 수준이 높지 않다면, 복지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치인과 정부에 신뢰가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분명히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매우 강하게 아이들에 대한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거기에 많은 국가들이 비준했다. 한국도 비준한 걸로 안다.

한국도 체벌 금지로 이해할 만한 법 조항이 있지만 사실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법이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특히 아이를 때린 부모를 범죄자 측면으로만 봐선 안 된다. 태도와 인식을 바꾸기 위한 법이지 부모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법 개정을 하되 가족을 지원해 아이를 키우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그 방법을 어떻게 찾아줬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들은 부모 교육 코스를 밟는다. 의무적이지 않지만 부모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아동 클리닉과 연계된 가족지원센터가 모든 지역에 설치돼 있다. 나 같은 경우도 자녀가 10대 청소년인데 얼마 전 스톡홀름 시내를 지나가다 부모 상담 홍보물을 봤다. ‘당신의 10대 자녀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오, 그래요! 흥미가 생겼고 당장 그 모임에 참가했다. 이렇게 부모로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리고 누군가와 그것을 나눌 의지만 있다면 아주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체벌 금지의 부작용은 전혀 없나?

모두 인식이 변했다. 길을 가는 스웨덴 부모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분명히 “절대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 그건 잘못이다”라고 할 거다. 스웨덴에서는 이런 질문 자체가 금기다. 만약에 그래도 부모가 아이를 때렸다면? 여기에 대한 무관용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때리고 나서 이웃에 도움을 청하기가 너무 부끄러울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친한 사람에게조차 부모로서 실패(체벌)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만약 내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내가 ‘오늘 이성을 잃고 아이를 좀 때렸다’라고 한다면 친구와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화가 다른 이민자 가족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도 같다.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를 하는 사회복지 공무원은 이민자 가족 부모에게 “혹시 당신 아이를 때렸나요”라고 잘 묻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스웨덴에서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권 부모를 만난다면 이건 아주 중요한 질문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이민자 차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넌 시리아에서 왔으니 당연히 아이를 때리겠군’ 이런 시각 자체가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 내 폭력 문제를 다루는 데 이런 딜레마가 있다. 다른 나라에선 많은 사람들이 ‘나는 맞고 자랐지만 아무 문제없이 잘 컸다’라며 자녀 체벌을 옹호하기도 한다. 음, 진짜 그럴까? 만약 당신이 맞고 자라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적이며 더 자존감이 높고 인간관계가 더 좋지는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일을 잘못했다면 그를 처벌하겠다며 때리는 게 괜찮은가?’ 서로 신뢰를 쌓고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은 성인뿐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고 어떻게 그들에게 존중을 가르칠 수 있겠나? 많은 연구에서 아동기에 겪은 폭력은 성인기에 분명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맞고 자란 당신이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당신은 당신 아이에게도 그런 위험을 지울 건가?

기자명 스톡홀름·글 변진경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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