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The Guardian)

설립:1821년 5월2일
판형:베를리너판(2018년 타블로이드로 전환)
편집국 현황:영국 런던 본사(International, UK), 미국 뉴욕 지사(2011년 설립)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지사(2013년 설립)
기자 수:전 세계 700여 명, 기술지원부서 약 150명, 전체 직원 전 세계 1500여 명
지면 독자:2017년 8월 기준, 평균 14만6100부
온라인 홈페이지:2016년 평균 방문객 약 1억4000만명, 2017년 9월 기준, 후원 회원 약 80만명, 2016년 4월~2017년 3월 연간 페이지뷰 약 110억 회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가디언〉 구독자 약 779만3400명, 유튜브 〈가디언〉 구독자 약 41만2600명, 트위터 〈가디언〉 팔로어 약 690만1800명

 

 

ⓒ시사IN 조남진〈가디언〉은 유료 구독부수가 40만 부에서 15만 부로 줄었지만 탐사보도를 강화해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사진은 닉 홉킨스 〈가디언〉 탐사보도팀장.

 

 

 

 

“물 한 병을 사면 신문이 공짜!” 10월8일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 비행기 환승을 기다리다 들른 W.H.스미스(영국 최대 가판대·소매점 체인)에는 기묘한 판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750㎖짜리 생수 한 병을 사면,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사은품으로 주는 특별 판촉 행사가 한창이었다. 신문을 사면 물 한 병이 딸려 나오는 게 아니라 엄연히 신문이 떨이 신세였다. 다른 신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월17일 런던 킹스크로스 역 W.H.스미스에서는 또 다른 반값 할인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쿠폰 드릴게요. 이거면 11월12일까지 2파운드짜리 〈가디언〉을 1파운드에 살 수 있어요.” 〈가디언〉 한 부를 집어 들자, 점원이 할인 쿠폰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매장에서 〈가디언〉 본사까지는 겨우 150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영국은 미국 못지않게 20세기 언론사(史)에서 중요한 나라다. 루퍼트 머독의 언론 재벌 행보는 영국에서 사세를 확장하며 본격화됐다. 영국산 ‘타블로이드 신문’은 황색 저널리즘의 상징으로 위세를 떨쳤지만, 반대로 기자들이 설립한 독립 언론 〈인디펜던트〉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신문이 사은품으로 전락한 시대, 이제는 정론지와 황색 언론 모두 위기에 직면했다. 〈인디펜던트〉는 알렉산드르 레베데프에 인수된 후 2016년 가판대에서 사라졌다. 황색 언론의 대표로 꼽히던 〈선(Sun)〉 역시 2010년 300만 부에서 2017년 160만 부 수준으로 발행량이 급감했다. 미디어 업계가 전반적으로 쇠락하는 가운데, 온라인에서 활로를 찾은 몇몇 미디어만 그나마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전 세계 디지털 저널리즘의 1순위 참고서가 된 〈가디언〉이 있다.

런던 북동부를 가로지르는 리젠트 운하(Regent’s Canal)는 유로스타(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국제선 철도)의 종착지인 세인트판크라스 역, 북부 철도 노선의 중심지인 킹스크로스 역을 감싸고 흐른다. 이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요크웨이 한편에 〈가디언〉 본사가 입주한 ‘킹스플레이스 빌딩’이 자리하고 있다. 공연장과 전시시설, 각종 상가가 밀집한 이 빌딩 2층부터 5층까지는 커다란 개방형 사무실이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었다. 기자 및 편집인력 700여 명, 디지털 전문 인력 150여 명이 일하는 〈가디언〉의 본사다.

ⓒ시사IN 조남진〈가디언〉은 1995년 앨런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이 취임하면서 급성장했다.
취임 후 판형을 바꾸어 퀄리티를 높이고 온라인 중심 전략을 취했다.

10월20일 방문한 편집국에는 ‘우리의 독자’라는 인포그래픽이 걸려 있었다. 전 세계 3800만명, 구독자 평균연령 41세, 뉴스 신뢰도 82%,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영어 뉴스 사이트라는 설명이 각종 통계지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미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뉴스 브랜드로 성장한 결과다. 물론 대부분의 지표는, 온라인을 통해 이뤄낸 성취였다.

182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탄생한 〈가디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도 좌파 성향의 중견 신문에 불과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영국에서는 〈데일리 익스프레스〉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상업성이 강한 신문이 100만 부 이상 발행되는 데 비해, 〈가디언〉은 약 40만 부 발행에 그쳤다. 이마저 2000년대 들어서는 30만 부 수준으로 떨어져 단순히 영국 내 신문 산업 기준으로 〈가디언〉이 독보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러스브리저의 시대’를 연 세 가지 혁신

그러나 이른바 ‘러스브리저의 시대’를 겪으며 〈가디언〉은 성장을 거듭한다. 1995년 42세에 편집국장이 된 앨런 러스브리저는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은 크게 세 가지 혁신을 이뤄냈다. 대판 판형을 베를리너 판형(대판과 타블로이드판의 중간 크기)으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디자인 원칙을 정립했다. 디자인과 편집 방식 등 신문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문화면을 늘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공략했다. 오늘날 ‘디지털 퍼스트’로 잘 알려진 온라인 중심 전략도 당시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이 주도했다. 웹서비스는 이 신문의 기존 철학대로 “돈이 있든 없든 뉴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온라인 기사 무료’ 전략은 온라인 기사 유료화(페이월)가 확대된 미국 언론사의 디지털 대응법과는 대치되는 모델이었다. 지면 중심의 조직을 온라인 중심으로 바꿨고, 디지털 인력도 확충했다. 그러면서 〈가디언〉의 장점인 탐사보도의 전통을 확고하게 다졌다. 2010년 위키리크스 특종 보도,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미국 국가안보국) 사찰 자료 특종 보도 등은 영국 내 중견 언론사였던 〈가디언〉의 브랜드 가치를 전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앨런 러스브리저는 2015년 편집국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오늘날의 〈가디언〉을 있게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2017년 현재 〈가디언〉은 러스브리저의 시대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EPA
ⓒEvening Standard〈가디언〉의 전성기를 연 앨런 러스브리저 전 편집국장(왼쪽)과 첫 여성 편집국장인 캐서린 바이너.


지난 10월26일, 캐서린 바이너 〈가디언〉 편집국장은 홈페이지에 “〈가디언〉의 독립 저널리즘을 함께 보호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바이너 국장은 〈가디언〉의 핵심 수익 모델이 독자의 자발적 기부라고 설명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독주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인 저널리즘(progressive journalism)이 더욱 필요해졌고 이를 위해 독립 언론으로서 제구실을 하고 있는 〈가디언〉을 후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미 80만명이 후원하고 있고 이 숫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바이너 편집국장이 후원 증대를 호소한 데에는 사정이 있다. 러스브리저 시대를 지나오면서, 〈가디언〉은 경영 위기 극복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디지털 퍼스트’ 전환과 함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재정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됐다. 지면 독자층의 이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2014년 20만 부 수준을 유지하던 종이 신문 발행량은 2017년 15만 부 정도로 급감했다.

캐서린 바이너 편집국장은 지난해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비용구조 개선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기자직군 100여 명을 포함해 약 250명을 감원하는 게 골자였다. 지난해 1년간 실제 감원된 인력은 약 300명이다. 감축 계획을 발표하며 바이너 편집국장은 향후 3년간 전체 소요 비용을 20% 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종이신문의 판형도 바꾸기로 했다. 현재의 베를리너 판형은 내년부터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바뀐다. 베를리너 판형을 만들던 자체 인쇄 시설(약 3000만 파운드 규모)을 매각하고, 경쟁사인 〈미러〉지의 인쇄 시설에 외주를 줄 계획이다.

바이너 편집국장은 지난해 사내 구성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같은 비용 절감의 목적을 “편집권 독립의 영속성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가디언〉 탐사보도팀을 이끌고 있는 닉 홉킨스 팀장은 〈시사IN〉과 만나 “기자 수를 감축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탐사보도와 언론 독립)을 지속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언론 독립’을 내세운 데에는 〈가디언〉만의 특수한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가디언〉은 시스템으로 ‘편집권 독립’이 제대로 정착한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경영진이 편집권에 관여하기 어렵다. 바이너 편집국장의 임명 과정부터 그랬다. 편집국장은 노조가 선거를 통해 후보자를 선출하고, 이 후보자를 ‘가디언미디어그룹’의 소유주인 스콧트러스트가 승인하는 구조다. 2015년 3월 당시 〈가디언〉 미국판 편집장이었던 바이너는 득표율 53%인 438표를 얻어 노조로부터 후보 지명을 받았고, 곧이어 스콧트러스트 이사회 승인을 거쳐 194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실질적 소유주인 스콧트러스트의 역할도 재조명받았다. 스콧트러스트는 1936년 편집인이자 소유자였던 C. P. 스콧의 사망 이후 설립됐다. 스콧 가문은 지분을 신탁(트러스트)에 맡기기로 했고, 이 재단은 경제적·정치적 개입으로부터 〈가디언〉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경제적·정치적 독립성의 지속 여부다. 먼저 광고주 등 경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재정적 안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00년부터 14년간 〈가디언〉 탐사보도팀장으로 일했던 데이비드 리 교수(런던 시티대학 저널리스즘스쿨)는 “상업적 성공이 독립의 조건이다. 그래서 요즘 언론이 독립성을 지키기 무척 어렵다”라고 말했다. 리 교수는 “영국에서 언론의 경제적 환경이 악화되면서 광고주의 입김이 거세졌다. 디지털 환경도 구독자 수를 줄였다. 〈가디언〉이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건 아직까지 재정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26~27쪽 기사 참조).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성을 지키는 것도 영국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언론 보도를 막기 위한 명예훼손 소송에 영국 법원이 관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리크스나 스노든 특종 때도 정부나 정치권력의 압력이 없지 않았다. 닉 홉킨스 탐사보도팀장은 “보도 당시 GCHQ(영국 정보기관)가 정부 각료에 불평을 쏟아냈고, 관료들이 우리를 찾아와 화를 내기도 했다. 기소하겠다는 압력을 받았고, 몇몇 MP(의원)는 우리의 보도에 무척 부정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홉킨스 팀장은 당시 앨런 러스브리저 편집국장의 결단이 중요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스노든 폭로 보도 후 처음 몇 달간 〈가디언〉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보도가 결국 법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변화를 이끌어낸 옳은 일이라는 게 나중에 증명됐다.”

‘기술 친화적 환경’과 ‘타사와의 협업’이 특징

압력을 이겨낸 탐사보도의 가치는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데이비드 리 교수도 탐사보도와 ‘브랜드 가치’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디어 시장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건 결국 사람들이 신뢰하는 매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디언〉이 그동안 해온 탐사보도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닉 홉킨스 탐사보도팀장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수익구조가 변하면서 모든 언론사가 규모를 줄여야 했다. 이때 언론사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가디언〉은 탐사보도에 계속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중요한 분야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타 언론사는 위기가 닥치자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탐사보도팀을 해체했지만 〈가디언〉은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현재 〈가디언〉 탐사보도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기술 친화적 환경이다. 닉 홉킨스 탐사보도팀장은 “〈가디언〉에는 데이터 전문 저널리스트가 3명 있지만, 이들 외에도 5~6명으로 구성된 또 다른 데이터팀이 탐사 취재를 지원한다. 이들은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라고 설명했다. 1150만 건이 넘는 파나마 페이퍼스(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조세회피·돈세탁 내부 자료. 전 세계 109개 언론사가 2.6TB 분량의 데이터를 함께 분석했다) 데이터 분석에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이 방대한 데이터 더미 속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주었다. 이들 외에도 전체 150명에 이르는 IT·그래픽 전문가들이 편집국 기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가디언〉 편집국에는 ‘우리의 독자’라는 제목으로 독자 분석 인포그래픽이 걸려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언론사와 협업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10년 〈뉴욕타임스〉 〈슈피겔〉 〈르몽드〉 〈엘파이스〉와 조율한 위키리크스 특종 보도였다. 위키리크스 이후로도 ‘파나마 페이퍼스’ ‘HSBC 스위스 리크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등도 전 세계 저널리스트와 함께 협업해 특종을 쏟아냈다. 닉 홉킨스 탐사보도팀장은 “여러 나라 정부와 기업과 관련한 대규모 자료가 유출되면 한 언론사가 커버하기 어렵다. 다른 언론사 기자와 공유하며 협업을 해야 보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디언〉의 생존 전략은 글로벌 경쟁 매체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회사의 목표 자체를 ‘공익성’에 두고 있고, 온라인에서 수익 사업을 벌이는 대신 ‘모금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브렉시트 반대 등 진보적 의제를 피하지 않고 과감히 던진다.

2000년대 들어 영어 매체라는 이점을 활용해 전 세계로 확장했고, 탐사보도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인 〈가디언〉의 이 같은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전 세계 언론사가 〈가디언〉의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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