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는 살아남기 위한 브랜드”
  • 김동인 기자
  • 호수 532
  • 승인 2017.11.27 20: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이비드 리 런던 시티대학 저널리즘스쿨 교수(사진)는
현역 시절 <가디언>의 ‘위키리크스 특종’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그에게 탐사보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시사IN 조남진

데이비드 리(71) 런던 시티대학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현역 시절 영국 언론계에서 존경받는 탐사보도 전문 기자였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가디언> 탐사보도 에디터(탐사보도팀장)로 일한 리 교수는 2010년 <가디언>의 ‘위키리크스 특종’ 보도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2013년 은퇴 후에도 왕성한 취재 활동을 벌인 그는 2015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HSBC(홍콩상하이은행) 스위스 지점의 탈세 폭로 기사(스위스 리크스)를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앨런 러스브리저 전 편집국장, 닉 데이비스 기자, 이언 카츠 전 부편집국장 등과 함께 2000년대 <가디언>의 부흥기를 이끈 중요 인물 중 하나다. “탐사보도 기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리 교수를 지난 10월20일 런던 시티대학에서 만났다.


탐사보도가 위축되고 있다. 언론사도 탐사보도팀을 줄이는 추세다. 저널리스트가 되려는 학생도 많을 텐데, 어떻게 조언하고 있나?

언론 취업시장이 어렵긴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 조직도 많이 생기고 있다. 그린피스 같은 NGO는 독자적인 탐사보도팀을 만들어 저널리스트처럼 활동한다. <버즈피드>처럼 이제 막 탐사보도에 발을 디딘 온라인 매체도 있다. 기존 뉴스 조직이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새로이 탐사보도팀을 꾸리기도 한다. 비록 저널리즘 시장이 일부 붕괴하고 있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언론사에선 탐사보도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언론사가 예산을 삭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쪽이 탐사보도다. 돈은 많이 드는데 결과물이 불확실하고, 기사를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상업 비즈니스의 요소와 거리가 멀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최근 들어 탐사보도를 경쟁사와 구별 짓는 일종의 브랜드 전략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언론사 경영진이 탐사보도 비용을 줄이기는 쉽다. 그러나 좀 더 생각 있는 언론사라면 매우 근시안적인 접근이라는 걸 알 것이다. 비용 절감은 장기적으로 언론사의 경쟁력을 무너뜨린다. 질 낮고 저렴한 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사는 점점 생존하기 어렵다. 현명한 언론사라면 ‘살아남기 위한 브랜드’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파나마 페이퍼스’처럼 대규모 문서 유출이 최근 탐사보도 취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시작이었고, 이후 파나마 페이퍼스, HSBC(스위스 리크스), 버진아일랜드 자료 유출 등으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정보 조각 하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반면 요즘에는 거대한 정보 덩어리가 순식간에 유출된다. 이런 정보를 이해하고, 조사하며, 공익을 위한 기사로 바꾸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저널리즘의 새로운 양상이다.

유럽 언론사를 돌아보니, 언론사끼리 특종을 두고 경쟁하기도 하지만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기자들은 서로 경쟁 관계였다. 누구보다 빨리 뉴스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게 중요했다. 탐사보도는 이런 경쟁이 중요하지 않다. 나도 학생들에게 대규모 문서 유출 사건이나 국제적인 이슈를 취재할 때 협업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경쟁 속에서는 얻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환경, 무기 거래, 뇌물, 부패, 국제무역 등 세상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많은 나라와 연관되어 있다. 오히려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저널리스트끼리 협력하기가 쉽다. 각자 다른 언어 시장에 있으므로 경쟁사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 기자들과 동아시아 기자 간 협력도 충분히 가능하다. ICIJ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네트워크도 있다. 나도 1998년 이 조직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참여한 초기 멤버다. 기부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ICIJ는 이제 단순한 국제 네트워크를 넘어 직접 저널리스트를 고용한다. 대형 데이터 유출 탐사보도를 수행하는 데 이런 네트워크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EPA<가디언>은 줄리언 어산지(위)가 제공한 방대한 해킹 정보를 바탕으로 ‘위키리크스 특종’을 연속 보도했다.

젊은 탐사보도 기자들이 문건 유출 취재에만 매달려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대규모 문서 유출 사건은 오랜 시간 온라인 자료 조사에 매달리고 모니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 데이터를 가지고 정말 해야 할 일은 실제 사람과 사건에 관한 취재다. 저널리스트는 반드시 사람을 만나고 그 사건을 목격해야 한다. 탐사보도의 기본은 사무실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취재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중견 탐사보도 기자들이 인터넷 보안 기술(PGP 등)을 매우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모습에 놀랐다.

40년 넘게 저널리스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젊었을 때 배운 게 지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다. 끊임없이 기술적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잠시나마 성가시고 피곤할 수 있지만,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한다면 모든 게 항상 변할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디지털이 보도의 방식은 발전시켰지만 프린트 미디어(인쇄 매체) 위축을 가져왔는데?

부정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우울한 상황도 아니다. 영화 <인사이더>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로웰 버그먼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 탐사보도의 황금기다.” 인터넷이 언론의 상업적 기반을 붕괴시키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제공하고 무언가를 찾는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취재 대상을 더 빨리 찾게 해준다.

모바일로 뉴스를 소비하는 젊은 독자들은 탐사보도처럼 복잡하고 긴 기사를 선호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지금 저널리즘은 두 갈래로 분화되고 있다. 속보 중심의 짧은 뉴스와 탐사보도 같은 깊이 있는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이다. 사람들이 긴 기사를 읽고 싶어 하고 흥미를 보인다는 여러 증거가 있다. 롱폼 저널리즘에도 분명 독자층은 존재한다. 저널리즘은 현재 일종의 전환기다. 시장이 분화되는 과정에 어느 정도 적응되고 나면 속보 중심 저널리즘처럼 롱폼 저널리즘을 위한 자리가 생길 것이다.

언론사에서 탐사보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한 건 젊은 저널리스트의 동기부여다. 이 일을 직업으로 가지려는 젊은 세대가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해야 한다. 사회를 발전시키는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탐사보도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탐사보도 기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특별한 기술을 미리 갖출 필요는 없다. 올바른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