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최순실 도운 죄책감에 고개도 못 들고 산다”
  • 주진우 기자
  • 호수 492
  • 승인 2017.02.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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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온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사진)가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는 헌재 탄핵 심판의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최순실씨와 불륜설을 제기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월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12차 변론이 열렸다. 이날 최대 관심사는 고영태씨의 출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고씨와 최순실씨의 내연관계가 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씨의 출석을 요구했다. 그는 헌재에 출석하지 않았고, 헌재는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2월8·9일 고씨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헌재에 출석하지 않은 이유는?


어머님이 그만하라고 하더라. 내가 나올 때마다 가족들이 힘들어한다. 이제 내 일은 다 했다. 사법기관에서 정리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은 고영태씨를 꼭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재판(2월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저쪽(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에서 알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해 모두 대답했다. 그들이 나를 부르는 이유를 안다. 막장 불륜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한다. 탄핵 재판의 본질을 흐리고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려고 한다. 냉정하게 보자. 내가 본질적으로 박근혜 게이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헌재 재판에 도움이 된다면 바로 나갔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검찰 수사든, 특검 수사든, 형사재판이든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주말이든, 연휴든 오라면 다 갔다. 나는 최순실이라는 나쁜 사람과 같이 일을 한 원죄가 있다. 잘못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돕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월 차은택 감독이 헌재에 나와, “검찰에서 최씨와 고 전 이사가 내연관계라고 진술했느냐”라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질문에 “그렇게 추측된다고 이야기했다”라고 답변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최순실을 청와대 앞에 데려다주면 이영선·윤전추가 데리고 들어갔다. 맨날 서류 받아서 이영선한테 주고 이영선이 서류 다시 주기도 했다. 나는 청와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차은택이 최순실과 어떤 사이인지,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가서 박근혜 대통령과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지 않겠다. 추측과 느낌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 더 진흙탕으로, 더 막장으로 갈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누가 역겨운지 잘 알 것이다. 나는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이용해 빌딩을 사지도 않았고,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았다. 누구랑 짜고 막장으로 몰고 가지도 않는다.

불륜설, 마약 전과 등 사생활 이야기가 나오면 상처받지 않나?

상처? 이미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받지 않는다(웃음). 재판에 나와서 다 얘기하지 않았나. 도대체 얼마나 더 반박해야 하나? 처음에는 최순실씨 관련 자료를 던져주면 언론과 검찰이 알아서 정리할 줄 알았다. 이렇게 큰 사건인 줄 몰랐던 거다.

그렇게 판단한 게 언제였나?


지난해 9~10월이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순수한 뜻이었다. 애초부터 최순실이 힘이 있으니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지 못한다고 보았다. 차은택, 김종, 삼성 사장 정도만 검찰 조사 등을 받고 정리될 줄 알았다. ‘차은택 게이트’로 정리되는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최순실씨가 실소유한 더스포츠엠(SPM)을 일반 회사, 미국에서 소개받은 회사로 알고 있었다. 제 주머니 찬 줄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큰 사건인지 계산할 머리가 있었다면, 이 사건을 조작할 머리가 있었다면 이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진우 기자, 고영태 더블루케이 이사,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뒤 왼쪽부터 시계 방향) .
박근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지자 고영태씨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더블루케이가 나오니까 내 인신공격이 시작되었다. 미르재단 의혹이 불거지자 이성한 전 사무총장을 공격했다. 그때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와! 이 모든 사건을 또 한 놈 죽여서 무마시키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그전에 이석수 감찰관 사건, 정윤회 문건 사건 때 자살한 경찰관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나에게 오는구나. 나만 죽이는구나…. 그래서 처음엔 외국에 좀 가있으려고 했다. 괴로웠다.

재판에서 모욕감이 들었을 것 같은데.

나는 당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최순실을 위해서 일했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죄책감이 들고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고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는 ‘고영태가 최순실을 이용해서 정부 돈 타내자고 했다’고 주장한다. 녹취도 있다고 한다.

그거에 대해선 검찰과 특검에서 설명을 다 했다. 내가 먹으려고 했다는데, 정황이 없어서 끝났다. 한 탕 해먹으려고 했다면 김종 차관이나 차은택 감독처럼 거기서 버텼겠지. 정현식 K스포츠재단 전 사무총장을 잘라야 한다는 최순실의 이야기를 듣고 사적으로 통화한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는 고영태 관련 녹취 파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녹취 파일이 2000개다. 대부분이 김(고영태씨 지인)이 영어공부하고 자기 친구들이랑 통화했던 거다. 검찰에서 나와 관련된 것 같은 녹취 파일을 뽑은 게 3개다. 그중 하나가 MBC 보도에 나온 대화다(MBC는 고영태씨의 측근인 김씨가 대화를 녹음해왔는데, 이들이 고씨와 최순실씨와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녹취에 나왔던 일을 추진한 적도 없다. 검찰과 특검에서도 다 끝난 일이다. 내가 돈이나 회사를 빼앗으려고 했다면 최순실과 함께 수갑을 차고 있겠지….

차은택 감독 쪽은 국정원을 거론하면서 회사를 빼앗았다고 하던데?


난 원하는 자리도 없었고 돈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재단을 통째로 먹으려고 했다면 말단 직원 두 명만 심겠나. 그리고 회사를 왜 그만두나? 최순실이 재판에 나와서 얘기했다. 더스포츠엠으로 돈을 뺐다고. 더스포츠엠이 최순실 것 아닌가? 나는 재단에서 돈이 나가면 문제가 된다고 말린 사람이다.

‘고영태 잠적설’ 어떻게 생각하나?


잠적한 게 아니라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수사를 계속 돕고 있다. 본질을 흐리게 자꾸 몰아가는 것 아닌가. 내가 뭐 그리 중요한 사람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리 중요한가? 나는 최순실씨의 구성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국민들이 응원해주셔서 더 창피하게 느껴진다. 헌재라든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였다. 나라를 위해 나가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 대리인단들은 개인을 위해 일한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국가를 위한 것도 결코 아니다. 나는 운동만 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하다 보니 잘못된 것을 알았고, 잘못했다고 얘기한 것이다. 태극기를 단 가슴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이건 잘못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나온 거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랑 잘못된 것을 알고 난 후에는 포장마차나 해서 먹고살자고 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재판받고 허리가 아파서 온종일 누워 있었다. 재판정에서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했다. 하루 종일 집중하고 힘을 계속 주고 있다 보니 나중엔 허리가 아프더라.

재판받을 때 어떤 방청객 할머니가 최순실 변호사들에게 ‘양심 있냐, 돈이 그렇게 좋으냐’고 소리 질렀다.

찡하고 눈물 날 뻔했다. 고향 분들이 응원하는 편지를 읽었다. 막 고맙다가 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든다.

탄핵이 인용되고 나면 다른 궤적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난 검찰도 경찰도 아니고 수사권도 없다. 이제 헌재와 법원이 풀어야 할 일이다. 난 더 이상 할 게 없다. 끝나면 최대한 빨리 자리로 돌아가야지. 최대한 평범하게. 그냥 조용히 속죄하면서 살고 싶다.

얼굴이 너무 알려졌고, 사자 캐릭터(카카오톡 라이언) 닮아서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그냥 평범한 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도록 국민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때는 나쁜 놈이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사람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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