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청와대 가이드라인
  • 김은지 기자
  • 호수 501
  • 승인 2017.04.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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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검찰은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충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검찰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보상과 처벌은 명확했다.

2013년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청와대는 불편해했다. 청와대는 검찰이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것으로 보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과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법무부와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갈등을 겪었다. 윤석열 수사팀장이 수사 도중 좌천됐다. 수사팀에서 배제되었고 대구고검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법률가의 양심’을 운운하며 공직선거법 적용을 막던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후 국무총리로 영전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도 상징적인 수사다(사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순실씨의 전남편 정윤회씨를 비롯한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 등이 국정을 농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지라시’라며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문건 유출 부분만 수사했고,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시사IN 이명익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최 아무개 경위는 자살했다. 최씨의 한 유족은 〈시사IN〉과 한 전화통화에서 “결국 검찰 출신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우병우 민정비서관 그리고 김수남 중앙지검장 등의 합작으로 애꿎은 최 경위만 죽었다. 아직도 너무 원통하다.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건 유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은 1·2심에서 잇달아 무죄를 받았다. 검찰의 기소가 무리였던 셈이지만, 책임지는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 수사 이후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수석으로 영전했고,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이 되었다.

이러한 검찰과 청와대의 공생이 박근혜 정부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대통령 파면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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