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실용서
갑작스런 불심검문… 대처법은?

알아야 한다. 세월호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휴대전화, 자동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당할 수 있는 시절이다. 정당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는 내내 수갑을 차는 상황도 벌어진다. 고소·고발이 흔해진 시대, 형사 절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법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제각각 분투할 수밖에 없다. 모르면 속수무책이다.

2009년 나온 〈쫄지 마, 형사절차!〉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경찰·검찰·법원행이 잦아진 촛불 시민을 위해 나온 책이었다. 당시 거리의 변호사를 자처하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펴냈다. 1만 부가 팔렸다. 책 홍보의 일등공신은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들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살고 있는 2015년, 〈쫄지 마 형사절차-수사편〉(이하 〈수사편〉)이 나왔다. 수사 절차를 심화한 개정판이다. 첫 번째 책을 펴낸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부는 세월호 집회에 차벽을 세우고 시민에게 캡사이신을 뿌리고 있다. 평범한 시민을 피의자·범죄자로 만드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두 번째 책을 불러냈다. 세 번째 책 〈쫄지 마 형사절차-재판편〉도 준비 중이다.
 

ⓒ시사IN 이명익6월19일 세월호 관련 단체인 ‘4·16 연대’에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수사편〉은 체포·구속, 압수·수색·감청, 경찰·검찰 조사 받을 때 등으로 나눠, 각 단계에서 피의자의 권리를 알려준다. 피의자는 말 그대로 수사기관의 의심을 사고 있는 사람이다. 범죄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범죄 입증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그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뭐라도 잘못했으니 당신이 여기 와 있는 게 아니냐’는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수사기관의 태도는 조사받는 이를 주눅 들게 만든다.

형사 절차가 그 나라 인권 척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책 집필에 참여한 송상교 변호사는 “수사 관계자들이 이번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총괄 감수한 황희석 변호사는 “더 이상 이런 책이 팔리지 않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책의 저자들이 보았다면 당장 소매를 걷어붙였을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다. 이 사건을 짚어보면 〈수사편〉이 지적하는 수사 절차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치현 변호사가 낸 준항고장과 홍승표 검사의 의견서에 따르면, 지난 5월26일 수원지방검찰청 2층 홍승표 검사실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박 아무개씨가 들어왔다. 구속 상태인 그는 구치소에서 곧바로 검찰로 왔기에 신원과 소재가 명확했다.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검사실에 들어온 박씨는 수갑을 찬 상태로 영상녹화실에 들어갔다.

조사가 시작되자 박치현 변호사는 홍 검사에게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였다. 이미 5월22일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이 아무개씨가 강수산나 검사에게 조사받는 내내 수갑을 찼다는 사실(이씨는 국가를 상대로 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을 알고 있어서  2005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준비해갔다. 수사기관의 조사 시 계구(수갑·포승줄 등 인신을 억제하는 기구) 사용은 위헌이라는 내용이었다. “도주·자해 등의 위험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인정신문(이름·주민등록번호 등 당사자를 확인하는 절차)을 한 다음에야 수갑을 풀어줄지 말지 판단하겠다는 검사의 답이 돌아왔다.

인정신문도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조사다. 조사 전에 풀어달라는 요구에 홍 검사는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풀어줄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나흘 전 피의자 신문 조사에 이어 공식적으로만 세 번째 본 사이에 신원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박 변호사는 수긍하기 힘들었다. 수갑을 풀어달라고 계속 항의했다. 도리어 홍 검사는 박 변호사가 수사를 방해한다며 수사관 두 명을 불러서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양팔을 결박당한 채 1층까지 끌려 나갔다. 전치 2주 상해를 입었다. 모두 영상 녹화되었다. 결국 박씨는 변호사 없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진술을 거부했다.

홍 검사는 박 변호사가 수사를 방해해 부득이하게 강제 퇴거시켰고, 진술거부권을 고지한 다음 박씨의 수갑을 풀어줬다고 밝혔다. 수갑을 해제하고 변호인에게 피의자 신문 참여를 고지했지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헌법상 권리인 진술거부권(헌법 제12조 2항: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과 변호인 조력권(헌법 제12조 4항:누구든지 체포·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한다.
 

ⓒ시사IN 이명익세월호 참사 1주년인 4월16일 경찰이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리고 있다.
박씨는 묵비권은 지켜냈다. 피의자 누구나 수사기관이 묻는 말에 답변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대답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물론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말은 아니다. 해명하다가 불리해질 수 있을 때는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적극 활용하라는 게 〈수사편〉의 조언이다. “피의자가 피의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수사기관이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라면 섣불리 조사에 응하는 게 유리할 게 없다.”

변호인 조력권을 불편해하는 수사기관

반면 박씨는 변호인 조력권(참여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피의자 신문에 변호인 참여가 제한된다. 정당한 사유는 대통령령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자세히 나온다. △승인 없이 부당하게 신문에 개입하거나 모욕적 말과 행동 등을 하는 경우 △피의자 대신 답변하거나 특정 답변, 진술 번복을 유도하는 경우 등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박 변호사의 주장이다. 대법원이 판시한 정당한 사유는 ‘변호인이 피의자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 기밀을 누설할 염려가 있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등이다. 구체적인 피해가 적시되지 않는다면 피의자의 이익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정당한 이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다툼이 벌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사편〉은 “변호인이 수사기관의 처분에 법적으로 다투고, 피의자도 진술을 거부하거나 조사실에서 퇴실하는 등 맞서는 것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현재 박치현 변호사는 국가기관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준항고를 한 상태다. 선례도 있다. 2008년 최명호 변호사는 피의자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는 수사기관에 항의하다 강제로 끌려 나갔다. 같은 해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변호인 참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장경욱 변호사도 변호인 참여권 제한에 항의해 준항고에서 이기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난해 최종으로 이겼다(〈시사IN〉 제375호 ‘방귀 뀐 검찰이 성내고 있군’ 기사 참조).

수사기관은 변호인 참여권을 불편해한다. 지난해 12월 경찰청은 ‘피의자 신문 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자유롭게 보장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현재 대한변협에서는 변호인 참여권 관련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잦은 변호인 참여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 관련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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