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신동수. 2004년 MBC에 입사했다. 어렸을 때부터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해서, 일찌감치 학업을 등졌다. 고3 수능시험에서 백분율 95%의 성적표를 받았다. 하위 5%였다. 34년 평생 책이나 뉴스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행사의 사회 자리가 전부였다. 술·담배를 즐겨 하는 그를 두고 동료 연기자들은 ‘향락, 퇴폐’의 아이콘이라고 농담한다. 그런 그가 요즘엔 꼬박꼬박 뉴스를 챙겨 본다. BBK 사건 개요에도 빠삭하다. 정치 얘기에 눈을 번뜩인다. ‘나는 하수다’(나하수) 코너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패러디하면서부터다.

〈웃고 또 웃고〉 녹화 하루 전인 1월26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만난 ‘나하수’의 조현민(32), 고명환(40), 신동수(34), 유상엽(31) 씨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전날 밤, 설 연휴 내내 준비한 아이템이 엎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슬쩍 〈시사IN〉의 이번 주 기사 아이템을 물었다. 개그 소재를 기자에게 묻는 이유. 정치 풍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패러디한 ‘나하수’ 때문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시사IN〉 기자,  김용민 교수의 말투와 행동·옷차림을 흉내 내 인기를 얻고 있다.

시사가 트렌드이고 유행인 시대다. 〈웃고 또 웃고〉의 민철기 PD 역시 ‘나꼼수’를 즐겨 들었다. 어느 날 신동수를 보다가 가발을 씌우고 턱수염을 붙이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시사에 밝은 고명환도 호출했다. 한 회도 빠짐없이 ‘나꼼수’를 즐겨 듣던 그는 반색하며 후배 연기자 중 닮은꼴을 물색했다. 주진우 기자와 얼굴과 말투가 닮은 조현민이 있었다. 유상엽은 마침 닭가슴살 다이어트에 실패한 직후였다.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교수로 낙찰됐다. 첫 녹화 날, 분장한 신동수가 김어준 총수와 몰라보게 흡사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그 모습에 안심했다.

 

ⓒ시사IN 조남진MBC 〈웃고 또 웃고〉 ‘나는 하수다’ 멤버들. 위 왼쪽부터 주진우 기자 역의 조현민, 정봉주 전 의원 역의 고명환, 김어준 총수 역의 신동수, 김용민 교수 역의 유상엽 씨.

 


〈웃고 또 웃고〉는 매주 금요일 밤 12시25분 방송된다. 심야 시간이라 시청률은 3~4%대로 저조한 편이지만 ‘나는 하수다’ 코너의 경우 1, 2회 동영상이 유튜브 사이트에서 조회 수 60만여 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30일 첫 방영 이후 4회 만에 간판 코너로 자리 잡았다.

‘나하수’는 패러디의 묘미인 디테일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가카(MB) 헌정 방송’을 ‘MBC 헌정 방송’으로, 김어준의 책 〈닥치고 정치〉 광고를 〈닭치고 개그〉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봉주 전 의원의 상황을 ‘10년간 웃기기 금지’ 등으로 패러디했다. 기존 콘텐츠를 살짝 비트는 데 이어 정치인 인물 패러디를 더했다. 예의 올림머리 분장을 한 정성호가 ‘그네’를 타고 등장해 박근혜 의원의 유행어를 따라했다. 


“아무 고민 없이 살던 신동수가…”

조현민 역시 “부끄럽고요, 자제해주세요”라는 주진우 기자의 말투를 연구하느라 수도 없이 ‘나꼼수’를 들었다. 고명환은 평소 옷차림도 정봉주 전 의원처럼 입고 다닌다. 유상엽은 김용민 교수를 흉내 내는 도중 틈틈이 살을 찌우고 있다. 멤버 모두 소재를 찾느라 뉴스와 트위터를 가까이 한다. ‘나꼼수’의 존재도 모르던 신동수의 변화가 가장 놀라웠다. 민철기 PD도 증언한다. “정말 사회에 대한 고민 없이 살던 친구였는데, 바뀐 모습이 놀랍다.” 본인 이름 석 자와 주식 관련 검색만 하던 그가 요즘엔 시사 키워드를 검색한다.

시사를 소재로 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있다. 아이디어 회의가 엉뚱하게 토론으로 빠지기 일쑤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다가 찬반 토론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시작 전, 우려도 있었다. ‘나꼼수’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다. 과감히 타깃층을 잡기로 했다. ‘나꼼수’ 다운로드 횟수만 수백만 건. 흥행하리라는 확신이 섰다. 시사 개그만의 쾌감도 맛보았다. 고명환은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거기에 우리만의 해학과 촌철살인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묘미다”라고 말했다.

‘나하수’는 주류 지상파가 ‘변방의 해적방송’을 재현하는, 희한한 콘셉트이다. 민 PD는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요약했다. 팟캐스트 영향력이 기존 매체를 압도하고 있다. 선거철을 앞두고 각종 시사 현안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었다. 조현민은 수용자의 입장에서 이런 흐름을 들불에 비유했다. “수요가 들불처럼 확 일어난 것 같다. 귀를 막으면 보게 되고 눈을 막으면 듣게 되는 것처럼 막을 수가 없다.”

“정치적 식견. 우린 그런 거 없어.” ‘나하수’ 속 대사처럼 네 사람은 식견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겸손이다. 다만 지상파라, 정치적으로 한쪽 편에 치우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최근에는 반값 등록금, 학교 폭력 등 피부에 와닿는 소재로 범위를 확장했다.

‘나하수’ 멤버 네 명은 실제 ‘나꼼수’ 멤버를 만나보고 싶다. 본인의 존재를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의 목표는 일단 ‘나꼼수’와 비슷하다. 2013년 2월, 차기 대통령 취임식까지 지속하는 것. 맥주와 야식을 먹어도 좀처럼 몸이 불지 않는다는 유상엽도 목표 체중을 채우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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